미술관과 전통다과점'다담'의 만남

2008년 10월 09일(목) 00:00

　
　루벤스전이다, 광주비엔날레다 해서 광주시립미술관이 어느 때보다도 복작거린다. 바로크시대의 거장답게 루벤스는 관람객들을 끌어들인다. 루벤스와 비엔날레작품 앞에서 한껏 감성의 날을 세운 관람객들, 그 흥취를 쉬이 가라앉히지 못하고 차 한잔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미술관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그러다가 조우하는 공간, 강덕순씨가 운영하는 전통다과점 다담(茶啖)이다.
　창문으로 중외공원의 울창한 숲이 쏟아져 들어온다. 숲 속 한 가운데서 앉아 마시는 차한잔의 여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으리란 소박한 마음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인테리어가 범상치 않다.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내부가 가히 미술관이라는 품격높은 공간과 어울리다 못해 앞서가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언뜻보면 모든 것이 나무인 듯 싶다. 그러나 꼼꼼히 뜯어보면 목재처럼 보이는 인테리어 재료 상당수가 쇠임을 알 수 있다. 나무와 쇠의 조화라고나 할까. 요즘엔 사찰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문살이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다. 그것을 둘러싼 것도 나무가 아닌 쇠란다. 현대와 전통과의 조화로까지 연결된다. 그 뿐인가, 하얀색 벽과 대리석 바닥, 나무 탁자와 솟대, 다기 탑과 구리 장식 등 오밀조밀한 소품 등이 미술관 찻집으로 전혀 손색없다. 우선 외양에서 기선을 제압 당하고 살짝 주눅 든 상태에서 무엇을 마실까, 먹을까 고개들어 차림표를 살핀다. 어라, 외양의 차별성은 다담의 소프트웨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인테리어는 다담의 알갱이를 포장하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녹차, 말차, 국화차 등 전통차와 더불어 녹차라테, 녹차고구마라테, 아이스녹차라테 등 개발음료 등이 눈에 들어온다. 거기에 꾸지뽕 양갱, 호두정과, 쑥개떡, 노랑콩 다식, 단호박설기, 녹차설기, 오색매작과, 곶감 호두말이, 송화다식 등 이름도 생소한 다과와 떡이 진열돼 있는데 하나같이 차마 입으로 먹기에 송구스런 예쁜 모양이다. 한떨기 수줍은 꽃잎이 있는가 하면 예쁜 색깔로 단장한 떡도 있다. 모두가 한입에 쏙 먹을 수 있게 앙증맞은 크기다.
　전국 유일의 전통 다과점이란다. 주인장, 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러나 그 자부심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몸 고생으로 만든 것이다. 조금 쉬울 수도 있는 것을 '멍청이수법' 때문에 어렵게 가는 것이라며 강씨는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담의 모든 다과와 떡은 천연재료와 우리 것만을 사용한다. 그렇게나 때깔 좋은 색상도 천연으로 낸다. 그래서 사계절 내내 산과 들을 헤맨다. 때맞춰 자연에 널린 것들을 채취하기 위해서다.
　이곳 다담은 장동 로터리의 1호점에 이어 2호점이다. 다과와 떡이 광주의 문화상품이라는 자부심으로 광주시립미술관에 또 다른 둥지를 틀었다. 그랬다. 다담에서 맛본 떡과 다과는 단순히 미술관에 들렀다가 소일하는 군것질이 아니라 우리의 후식문화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다담이 시립미술관을 만나 격조가 더 높아졌는지 아니면 시립미술관이 다담 덕을 보고 있는지 조금 헷갈린다. 확실한 것은 양자가 만나 윈윈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준 것을 기억했다가 하나씩 재현하고 그것을 토대로 하나씩 개발해 신상품으로 내놓는 주인장 강씨의 행보가 아름답다. 시립미술관을 들른 외지인이 시립미술관의 전시작품 못지 않게 다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기존에 가진 것, 그것을 조금만 다듬으면 멋진 문화가 되고 팔 수 있는 상품이 된다는 것을 다담은 실증해보이고 있다. 문화상품, 또는 문화산업이라 해서 거창한 것을 꾸려낼 필요가 없다. 다담을 보라. 우리의 일상이 충분히 문화상품으로 포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시립미술관에서 본연의 때깔을 발현하고 있는 다담을 통해 그동안 눈길을 주지 않았던 일상 속에서 문화의 비전을 새로 세워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