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부시의 "I'm sorry"가 부럽다

2008년 12월 04일(목) 00:00

　김영순 논설위원
　
　활을 잘 쏘는 사람 3명이 있었다. 누가 더 잘 쏘는가를 겨루기 위해 대회를 열었다. 저 멀리 나무 아래 사람을 세우고 사과를 머리 위에 놓게 했다. 그 사과를 맞히는 게 게임의 규칙이었다. 먼저 첫 궁수가 활을 집었다. 그리고 멋지게 사과를 맞혔다. 이 사람은 어깨를 들썩이며 자랑스럽게 "아임 로빈 후드"를 외쳤다. 로빈후드 만큼 활을 잘 쏜다는 뜻이다. 두 번째 궁수가 나섰다. 역시 사과를 명중시킨 뒤 "아임 윌리엄 텔"이라고 소리쳤다. 이번엔 세 번째 궁수가 활을 쏘았다. 아뿔싸, 사과가 아닌 사람의 머리를 명중시켰다. 순간 이를 지켜보던 군중이 이럴 수 있느냐며 술렁였다. 이 때 세번째 궁수가 군중을 향해 소리쳤다. 과연 뭐라고 외쳤을까. 다름 아닌 "아임 소리"(I'm sorry)였다나.
　웃음이 픽 나오는 어이없는 이 이야기는 한 때 인터넷에 떠돌아다닌 유머 한토막이다. 사람을 죽여놓고 미안하다니, 도저히 안 될 말이다.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웃자고 했던 유머가 현실에서도 일어났다. 세 번째 궁사에 해당하는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미국 부시대통령이다. 그가 최근 "I'm sorry"를 토해냈다. 재임 8년을 회고하고 결산하는 미국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다. 그는 "경제위기가 발생해 미안한 마음(sorry)이다. 내 임기 중에 경제가 추락한데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고 경제위기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또 그는 공화당의 대선 참패에 대해 "일부는 나 때문에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투표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의 실정이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된데 큰 원동력이 됐음을 시인한 발언이다. 대선 땐 경제도 살리고 잘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근데 임기 초 이라크와의 전쟁, 모기지 론의 토대 구축 등 현재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경제 위기의 싹을 뿌려놓은 당사자다. 그래놓고 미안하다는 말로 얼버무리다니. 사과 대신 사람을 맞혀 죽여놓고도 겸언쩍게 미안하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마저도 없는 한국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금융위기와 유례없는 경제불황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고 하질 않는다. 아니 미안하다는 시인 조차 하질 않는다. 지나간 정부건 현 정부건 잘못한 게 없다는 태도다.
　얼마 전 이명박대통령이 청년실업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눈높이를 낮추고 모험과 도전정신으로 부딪히면 해소할 수 있다며 청년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발언을 했다. 조금 생뚱맞다. 20,30대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백수로 보내는 게 개인들의 역량 부족 때문일까. 물론 개인적 노력으로 실업을 극복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 숫자가 몇이나 될까 싶다. 개인의 모험과 도전정신이 먹혀들 그런 낙낙한 때가 아니란 것을 모른단 말인가.
　이 정부는 현재 상황이 별 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기고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어도 느긋하다. 경제적 약자들이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쳐도 강 건너 불 구경 식이다. 아니, 세계경제가 몰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쩌란 말이냐고 오히려 당당하다. 1년 전 국민이 이런 모습을 기대하고 표를 주었을까. 결코 아니다. 경제대통령임을 자부했던 1년 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름에 국민은 또 한번 발을 찍는다. 위기에 대해 내 책임이 아니라며 먼 산보기하라고 찍어준 것은 결코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국민이 한나라당에 몰표를 주었는지를 반성하는 기미가 없다. 코미디같은 부시의 어이없는 행태가 존경스럽다.
　경제가 파탄이 나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도 없고 책임지는 이도 없는 이 나라에서 국민으로 살아가는게 너무 퍽퍽하다. 도대체 뭘 믿고 살아야 하는지 겁난다. '생계 걱정거리만이라도 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이 나라 경제적 약자들의 소망임을 나랏님이 알아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