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59주년의 傷痕들' |
| 2009년 06월 25일(목)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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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북한연구소와 북한학회가 '6·25를 돌아보고 내일을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이 낸 '참고자료'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에 따르면 한국전쟁이 한국인의 가치체계에 끼친 영향중 가장 심각하고 비극적인 것은 정치체제에서 개인 의식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갈라놓는 '분단체제의 내면화'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체제에서 개인 의식과 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갈라 놓았고, 이는 준 전시적 대치상태로 인해 확대 재생산됐다. 전쟁에서 비롯된 상호 적대감이나 증오감은 동족이라는 민족의식을 넘어설 정도다. 이런 의식구조는 합리적 사고를 방해했고, 반민족적·반민주적 가치지향을 심화시켰으며, 살아남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해야 했던 전쟁의 경험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관행'을 정착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요컨데 6·25 이후 한국정치와 사회는 전쟁의 내재화, 즉 전쟁이 우리 정치와 사회의 운영원리로 정착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국전쟁이 우리 정신세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자료들을 읽어보면 결론은 이 '참고자료'와 대개 비슷하다. '보수와 진보의 정신분석'이란 책을 쓴 김용신도 "한국전쟁은 절차를 무시하는 퇴행성과 흑백논리의 무의식을 부추겼다"고 분석한다. 이 목적중심의 사고와 흑백논리의 무의식은 감성이 풍부한 한국인의 성격과 합해져 상승효과를 낸다고 보는 그는 "한국사람은 논리를 떠나 일단 자기편이 이겨야 한다는 감성이 먼저 작동한다. 정치·사회적 갈등을 항상 극한 상황으로 몰고가며, 언제나 양편으로 갈린 두 세력은 말과는 달리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오늘이 바로 6·25 59주년 기념일이다. 반세기가 훨씬 지났지만 전쟁이 남긴 사회심리적 상처는 이처럼 치유는 커녕 더 깊어지고 곪아간다. '막말 현상'이나 좌와 우의 극단에서 질러대는 날선 목소리들도 다름아닌 그 상흔의 범주다. 막말과 '극의 병리학'이 남기게 될 후유증은 심각하다. 그중 최악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과연 진실은 무엇인지 조차 헷갈리게 만드는 일이다. 이러다간 전쟁 당시처럼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세력을 체제의 '적'이나 대한민국의 '적'으로 간주해 처단하는 부끄러운 역사가 또 반복될지도 모를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정점에 달한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은 김용신의 지적처럼 타협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점차 분명해지는 것은 있다. 끝없는 대립과 갈등의 와중에 희생되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생존권 문제를 포함한 인권과 자유와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분명한 것은 또 있다. 민심은 서울광장에 켜진 촛불이나 시국선언한 교수의 숫자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좌와 우의 극단에서는 결코 제대로 볼 수 없는 진실은 침묵하는 다수의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에 진전을 볼 때마다 혹독한 댓가를 치러야 했다. 유시민은 이를 '후불제민주주의'라 표현한다. 민주주의는 절차를 무시하거나 흑백논리로 무장해서는 얻을 수도 지킬 수도 없다. 더구나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데 있어 또다시 가혹한 댓가를 '후불'하지 않으려면 침묵하는 다수와의 소통은 필수다. 혹시 노린다면 '막판 대역전'은 그래야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