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총리들의 대권도전 수난사 /서울취재본부 국장 jskim@kjdaily.com |
| 2010년 09월 01일(수) 00:00 |
한국적 정치현실 속에서 국무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한 번 보자.
정권의 성격이 확연히 다른 박정희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서 각각 총리를 지낸 김종필(11대, 31대)은 철저하게 ‘2인자’의 모습을 견지, 오랫동안 정치력을 유지했다. 호사가들이 ‘십장생’이 아니라 ‘십일장생’이라며 그를 비꼰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김종필을 비롯한 역대 정부의 국무총리는 자천타천으로 차기 대권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이회창(25대), 이홍구(28대), 이수성(29대)이, 노무현 정부에서는 고건(35대), 이해찬(36대), 한명숙(37대) 총리가 대권 후보로 거명됐다.
이명박 정부의 정운찬(40대)과 이번에 낙마한 김태호 후보자도 한나라당 내 차기 대권구도와 맞물려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들 총리 출신 가운데 실제로 ‘대권’ 도전에 나선 인물은 이회창이 유일하며 나머지 인사들은 당내 경선에서 대부분 낙마하거나, 일부는 대권의 꿈을 중도에 접어야 했다.
한국 국무총리의 ‘수난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권과 관련한 어떤 공통된 ‘법칙’이 읽힌다.
‘퇴임 후’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한국의 대통령들은 국무총리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후계구도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대부분 실패하고 말았다. 이회창만 유일하게 대권경쟁까지 간 것은 YS의 ‘품 안’에 있지 않고 대통령과 대립하는 이미지를 심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이홍구 이수성을 통해 신한국당 내에 이른바 ‘9룡’ 체제를 만들어 이회창의 독주를 막으려 했다. 총리로 총리를 제어하는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민련과의 공동정권이라는 특성상 총리를 통해 후계구도를 짜지는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노무현을 해양수산부장관으로 앉혀 성공한 케이스로 분류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권·대권 분리 정신을 고수하면서 자신의 후계구도에 간섭하지 않았다. 그러나 총리를 지낸 고건, 이해찬, 한명숙이 자천타천으로 대권경쟁에 나섰으며 고건은 중도하차하고 이해찬과 한명숙은 대통합민주신당 당내 경선에 나섰다가 정동영에게 고배를 마셨다.
경험에서 드러나듯, 대부분의 총리 출신 대권후보자들은 온실 속 화초처럼 대통령에 의해 길러진 케이스로 모두 대권 경쟁에서 낙마했다. 대통령이 알게 모르게 측면 지원한 총리 출신 대권주자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
우리 대통령들은 대부분 임기 후반기 민심이반이란 암초를 만나, 최악의 상황에서 임기를 마쳤다. 즉, 욕을 바가지로 먹는 대통령이 키워주는 ‘2인자’는 국민적 시각에서 볼 때 대통령의 ‘아바타’로 인식돼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총리직을 고사하는 것은 물론 대통령과 툭하면 ‘충돌’하고 있는 박근혜 의원이나, 총리 출신은 아니지만 대통령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할 말은 하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의 모습을 보면서 한나라당내 대권 주자들 사이에서 적용되고 있는 어떤 ‘법칙’이 주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서울취재본부 국장 jskim@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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