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고향] 개화기 유적 등 골목 사이사이 보물 한보따리 한국 문화의 고향 전라도 |
| 2011년 03월 28일(월)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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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전통의 향기를 물씬 내뿜으면서도 또 현대적인 느낌이 풍기는 곳, 광주시 남구 양림동. 과거와 현재가 함께 살아 숨쉬는 이곳은 이 지역 최초의 기독교 전래지이며, 개화기 근대유적지이다. 광주의 근대 의료, 교육을 비롯해 교회 예배가 최초로 이 곳에서 이뤄졌으며,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 예술을 논하기도 했다. 양림동 골목 사이사이에서 보물찾기를 하듯 찾은 숨겨진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본다.
◇동서양 양식 혼합된 근대건축물
양림동은 외형에서부터 광주의 여느 마을과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곳곳에 동서양 양식이 혼합된 근대건축물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1904년에 세워진 배유지사택은 지붕과 기와는 전통 한옥식, 내부 구조시설은 서양식으로 이뤄져 있다. 오기원 기념각 역시 지붕은 한옥식이되, 창문과 층계, 내부시설 등은 서양식 구조를 띈다.
우월순 제중병원장은 광주에 최초로 양옥집을 건립한 인물이다. 당시 지역에는 벽돌기술자가 없었기 때문에 우월순은 일본, 중국 등에서 현장 인력을 데려다 자신의 사택을 지었다. 저마다 다른 빛깔의 회색 벽돌이 인상적인 이 집은 중간에 한 줄의 벽돌이 빙 둘러져 있어 네덜란드식 주택으로 손꼽힌다. 우월순은 자신의 사택을 건축하던 중 수피아홀의 감리를 맡았다. 수피아홀 역시 네덜란드식 벽돌쌓기로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지어졌다. 현재의 건축 전문가들이 “제대로 된 공법과 재료 만든 집”이라고 평가하는 건축물이다.
1930년대를 전후해 이 지역에는 붉은 벽돌 건축물들이 하나 둘 씩 늘어간다. 1927년 서로득 선교사가 건축한 윈스보로우홀, 1935-1937년경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수피아 옛 강당 등이 대표적이다.
양림동의 건축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최승효 가옥과 이장우 가옥이다.
최승효 가옥(옛 최상현 가옥)은 독립운동가 최상현이 1920년 정면 8칸, 측면 4칸 팔작지붕의 큰 한옥으로 건축한 집이다. 외부에서 보면 평범한 순수 한옥집 같지만, 자세히 보면 반지하층과 1층 총 2층으로 된 퓨전 한옥 식이다.
이장우 가옥(옛 정병호 가옥)은 1899년 정병호가 건축, 1965년 이장우가 사들인 집으로, 불쑥 튀어나온 툇마루와 정원이 일본식 건축 양식을 연상케 한다.
◇‘문화의 씨’ 품고 온 선교사들
양림산(선교동산)에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22명이 묻혀 있다. 선교를 목적으로 먼 이국땅을 밟은 이들은 양림동에 터를 잡고 마을 주민들에게 종교 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전파했다.
악기와 물감, 카메라 등을 들고 온 이들은 사진예술과 회화, 무용, 음악, 연극, 오페라 등을 양림동 주민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중국 혁명음악의 대부로 손꼽히는 음악가 정율성 역시 교회에서 악기를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림교회 옆에 위치한 오기원기념각은 광주 전남 지역의 기독교 영성에 영향을 준 성경학교는 물론, 문화 예술회관, 교육시설 등으로 활용돼 광주 신문화의 전당이 된 곳이다. 이 곳에서 광주 최초의 오페라(성극)이 공연됐고, 성악 공연, 문화강연, 전시회 등이 펼쳐졌다.
◇근대 교육·의료의 중심, 기독교
사직도서관 앞에 우뚝 선 선교기념비는 1904년 12월 25일 미국 남장로교 광주선교부가 지역민과 함께 첫 예배를 드린 곳(배유지 선교사 임시 사택)을 기리고자 건립됐다. 바로 이 곳이 광주·전남의 복음기지로, 근대 교육과 의료의 출발점이자, 일제하 광주·전남에 근대정신과 문화의 통로, 희생과 봉사 공동체운동의 시원지였다. 선교사들은 복음 전파와 실천, 한센병자, 결핵병자, 빈민, 고아, 과부 등을 위한 사랑의 공동체 실현, 일제의 수탈에 시달리던 농촌살리기 운동 등을 펼쳤고, 한글 보급 등 계몽운동, 독립운동, 5·18 증언에도 일조했다.
이 지역에 근대식 의료가 시작된 것은 1905년 배유지 선교사 임시사택에서 비롯된 ‘제중병원’(현 광주기독병원)의 설립과 맥을 같이 한다. 이와 함께 배유지목사 임시사택에서 시작된 광주여학교는 수피아여학교로 바뀌어 지역 여성교육의 요람이 됐다.
그런가하면, 현 전남대 의대의 전신인 광주의전은 1944년 최흥종 선생의 모금에 힘입어 수피아 옛 강당에서 개교했다.
◇양림동 알리는 ‘근대 역사문화 탐방’
볼거리 많은 양림동을 구석구석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광주시 남구청이 주관하는 ‘광주 근대 역사문화 탐방’이 바로 그것이다. 시간의 축적이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오는 양림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으로, 문화해설사를 통해 양림동을 상세하고 재미있게 듣고 체험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2008년 시작돼 해마다 그 참가자 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시민과 함께하는 주말과정, 초등생을 대상으로 한 1일 체험학습, 중·고등학생에 타겟을 맞춘 내고장 문화유산답사 등으로 진행된다.
인터뷰 / “양림동은 희생·나눔·섬김문화의 중심”
‘양림동 만들기’ 이끌어온 송인동 호남신학대 교수
“양림동 일대를 거점으로 빈민구제운동과 공동체 정신을 실천한 선교사와 주민들이 보여준 상생과 나눔, 희생은 대동정신과 맥을 같이 합니다. 특히 이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좌우 이념 대립없이 교류한 것이 특징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광주 남구 양림동으로 이사 온 이후 쭉 이곳에 뿌리를 내려온 송인동 호남신학대(영어영문학)교수는 10년 넘게 양림동을 연구하고, 양림동 알리기에 앞장서왔다.
지난 2005년 광주문화예술진흥위원회가 공모한 ‘광주이야기’에서 ‘버들마을이 부르는 광주사모곡’으로 대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지난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일환으로 진행된 스트리트 전시 ‘어울림’ 중 ‘양림동 근대역사 문화골목 탐방’을 담당, 광주의 근대문화 발상지를 알리고 시민이 참여하는 문화자치 프로그램을 꾸렸다.
송 교수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남다른 정(情)과, 양림동 마을 주민들의 관심이 양림동 만의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며 “양림동 정신의 근본은 생명존중 사상이다. 이 사상이 호남의 호혜정신과 맞물려 희생·나눔·섬김으로 발현됐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흩어져 있고 파편화된 양림동 역사의 기록들을 맞추는 작업들을 진행하며, 주민들이 주체가 돼 역사를 잇고 공동체가 어우러지는 마을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3·1 만세운동을 모의했던 장소인 남궁혁 박사의 집은 그에 관한 문헌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철거됐다”며 “강제 철거 위기에 놓인 수피아 옛 강당도 가까스로 지켜냈다. ‘개발’이라는 이유로 양림동의 역사가 하나 둘 사라져가는 일들이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특별취재반
◇특별취재반
▲이경수 정치부장 ▲오성수 특집기획부장 ▲김재정 사회부 차장대우 ▲김기식 사진부 차장대우 ▲정다운 문화여성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