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고향] 박용철·김현승 작품 지역·시대상 반영 ‘주목’ 한국 문화의 고향 전라도 |
| 2011년 04월 04일(월) 00:00 |
|
한국문학에서 광주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격조 높은 성리학적 기풍과 도학적인 수준을 겸비한 남도의 선비들은 무등산 자락에 둥지를 틀고 조선 중기 이후 문화의 큰 줄기를 이룬다. 이들은 가사(歌辭)문학이라는 하나의 문학장르를 창출했다. 여기에다 꼿꼿한 선비정신과 풍류가 한데 어우러진 남도의 정서는 재기 넘치는 다양한 문학작품으로 탄생했다. 조선시대의 이러한 빛나는 문학적 전통은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한국 근대문학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광주의 시인, 용아 박용철과 다형 김현승을 만나보자.
|
◇매일 아침을 기다린 사나이, 박용철
광주시 광산구 소촌동 솔머리마을. 여느 도심과 마찬가지로 주위는 온통 콘크리트 건물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골목 깊숙이 들어가 보면 단아한 초가가 한 채 반긴다. 광주시 기념물 13호로 지정된 용아 박용철의 생가다. “삐거~억” 소리가 나는 나무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면 본채를 곁에 두고 마당 한 켠에 화단이 정갈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화단 정면에 그의 대표작 ‘떠나가는 배’ 전문이 실린 시비가 답사객을 반긴다.
‘매일 아침을 기다리는 사나이’로 불린 용아 박용철은 식민지 시대를 산 젊은 시인이었다. 나라 잃은 젊은이들의 번민과 방랑을 읊조린 ‘떠나가는 배’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1904년 태어난 그는 일제 강점기의 지식인들이 그러했듯이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일본으로 건너가 문학을 공부한다. 하지만 대지진이 발생하고 곧이어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뿌리고 건물에 불을 지른다’는 헛소문을 빌미로 일본경찰이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하자, 결국 식민지 나라의 힘없는 청년임을 자각하고 귀국하고 말았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자신의 방에서 책만 읽으면서 세월을 보내다 20대 후반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한다.
대표작인 ‘떠나가는 배’를 통해 그는 식민지 지식인의 한을 토해낸다.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1930년대 일제의 탄압에 견디지 못하고 해외로 유랑의 길을 떠났던 우리 민족과 청년들의 비애와 비감이 다 담겨 있다.
불행한 시대를 살았지만 그는 한국문학사에서 그 유명한 강진의 김영랑 시인과 함께 순수시의 지평을 한 단계 넓힌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시문학 등 문학잡지 발간을 통해 문학이 우리사회에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한 시인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용아 박용철은 3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혼탁한 문학계에 경종 울린 김현승
‘고독의 시인’ 김현승의 시혼(詩魂)은 문향(文香)이 넘실대는 광주 양림동에 남아있다. 그는 어린시절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광주로 와 양림동에 터를 잡은 이후 이곳에서 그의 문학적 재능을 꽃피웠다. 광주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광주를 ‘고향’으로 부를 만큼 시인은 양림동에 애착을 가졌다.
청소년 시절부터 문재(文才)를 발휘한 그였지만 일제강점기 말에는 붓을 꺾고 침묵을 지키다가 8·15광복 후 다시 작품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했다. 조선대학교 문리대 교수로 있으면서 지역 문인들과 함께 문예지를 발간하는 등 향토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그의 권유로 시인 서정주도 광주로 와 사직동과 양림동 경계 부근에 터를 잡고 살았다. 서정주 시인은 양림동에서 무등산을 바라보며 시 ‘무등을 보며’를 지었고, 김현승 시인은 무등산에서 광주시가지를 내려다보며 ‘산줄기에 올라-K도시에 바치는’을 썼다.
김현승 시인의 시에는 특히 언덕, 나무, 까마귀, 이발소, 책방 등 양림마을의 경관이 자주 등장한다. 실제로 당시 언덕마을 양림동에는 다양한 수종으로 구성된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었고, 광주천에는 많은 까마귀들이 서식했다.
양림동 호남신학대 언덕에는 김현승의 시세계와 고귀한 정신을 기리는 시비가 세워져 있다. 횃불과 펜촉은 시대에 흔들리지 않고 고결한 정신을 유지했던 그의 태도와 시 세계를 상징한다.
다형에게 추천, 사사받아 한국 문단에 나온 여러 문인들 외에도 이수복, 서정주, 오화룡, 김재흔, 김준태, 곽재구를 비롯한 많은 시인들이 자취를 남겼기에 양림동은 ‘시인의 마을’이라고도 불린다. 특히 이들 시인들은 양림산을 ‘녹색의 장원’이라 부르며 양림동에 남다른 애착을 표현하기도 했다.
소설가 문순태, 박화성, 황석영, 극작가 조소혜 등 다양한 영역의 문인들도 양림동에 거주하며 그 흔적을 남겼다.
그로 인해 양림동은 예술가들이 사랑한 마을로 자리잡았던 것이다./특별취재반
기고/문학사에 큰 발자취 남긴 광주의 시인
노창수 광주문인협회장
|
문학 작품은 지역과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용아 박용철과 다형 김현승은 광주 대표 문학인으로 꼽힌다. 두 사람은 터울이 30-40년으로 어려운 시대 복판을 지나면서도 결코 문학의 끈을 놓치지 않은 공통점이 있다. 앞으로 광주시에서 2012년 개관을 목표로 추진되는 문학관 콘텐츠로 선정된 것도 뜻 깊은 일이다.
박용철(1904-1938)은 순수예술론의 선두였다. 1921년 도쿄 청산학원에 편입하면서 영랑과 친교로 문학에 입문했다. 그는 ‘시문학’(1930), ‘문예월간’(1931)을 사재로 발간할 만큼 기반 조성에 헌신적이었다. 서정시의 대표자 영랑을 키워내어 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중앙 문단에까지 중추적인 활동을 한 선각자적 위치에 있다.
그는 ‘신미 시단의 회고와 비판’(1931) 등의 평론을 발표해 비평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시적 변용에 대하여’(1938)라는 시론은 명문으로 교과서에 실려 있다. 그는 이 글에서 ‘물과 쌀과 누룩을 빚어 만든 술은 원형을 상실하는 숙성을 거쳐 맛이 빚어진다’라고 시 창작을 비유했다. 당시 목적 예술론에 맞서는 보호막이 되기도 했으며, 그의 이같은 시적 변용론은 시 창작 방향에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현승(1913-1975)은 ‘쓸쓸한 저녁이 올 때’를 동아일보(1934)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중견으로 자리를 굳힌 후, 그는 ‘옹호자의 노래’, ‘견고한 고독’, ‘절대 고독’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평론 ‘인생파와 모더니즘’(1956) 등 비평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우리말의 특질과 현대시의 과제’(1956), ‘다다이즘 고찰’(1962) 등의 평론을 통해 모더니즘 기교, 효과적 시어, 문학의 현실 참여 등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유년기를 광주에서 보내고 조선대 교수로 재직했던 다형은, 고 박홍원 시인을 비롯, 문병란, 진헌성, 손광은 시인 등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현대문학사의 중심에서 가난과 순수를 지키며 활동한 광주가 자랑할 만한 시인이다.
◇특별취재반
▲이경수 정치부장 ▲오성수 특집기획부장 ▲김재정 사회부 차장대우 ▲김기식 사진부 차장대우 ▲정다운 문화여성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