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고향] 불의에 맞선 꼿꼿한 정신 민주·인권·평화의 초석 한국 문화의 고향 전라도 |
| 2011년 05월 02일(월)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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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광주의 브랜드는 무엇인가? 광주의 정체성은 무엇이고, 무엇을 지향하는가? 이 같은 물음에 많은 광주사람들은 민주·인권·평화라고 대답한다. 민주화의 도시, 인권의 도시, 평화를 지향하는 도시가 광주이며 브랜드이고, 광주의 이미지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이 대답이 맞는가? 역사적 사실로 비춰 봤을 때 이는 확실하다. 예부터 광주는 정의(正義)와 충절(忠節)의 고장이라 일컬어져 왔다. 이는 광주가 걸어온 역사의 발자취가 이를 여실히 입증한다. 국가와 민족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목숨 걸고 일어나 이를 극복해 왔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한말의 일제강점에 맞서 분연히 의병을 일으켰고, 광주학생독립운동과 5·18민중항쟁 등 민족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기꺼이 피를 흘렸다. 이는 당연히 많은 희생과 고난이 뒤따랐지만 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같은 정의로운 저항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광주·전남, 우리 전라도가 걸어온 역사의 길을 살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먼저, 호남 땅 전체를 근거지로 백제가 융성할 때도 이 지역은 백제안에 들지 못하고 변방으로 여겨졌다. 이어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도 전라도 지역은 신라의 지배계층으로부터 소외됐으며, 고려에 이르러서는 차령 이남인은 쓰지 말라는 태조의 유훈에 따라 이 곳 사람들은 중앙정권에 참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조선시대로 건너와서도 초기의 집권은 영남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호남은 정권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유배지나 낙향지가 된 것이다.
여기에다 기후가 온화하고 기름진 농토가 많았던 이 지역은 경제적으로 발전이 앞섰던 반면 국가의 기강이 문란했을 때는 탐관오리들의 집중적인 수탈 대상이 되면서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이러한 소외와 홀대가 천년을 넘게 이어졌지만 전라도 사람들은 의연하게 극복하면서 강인한 정신과 창조성을 발휘해 독특한 문화와 정신을 만들어 냈다. 그 중에서 전라도인의 기질을 배태한 가장 대표적인 역사적 배경 중 하나가 사림정신(士林精神)이다. 사림이란 문자 그대로 숲 속의 나무처럼 선비들이 많았고 그들이 독특한 저항적 전라도 정신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사림은 절의(節義)를 바탕으로 존재한다. 탄생 배경 자체가 충(忠)과 의(義)를 기본으로 한다. 조선이 개국하자 고려의 충신들이 조선왕조에 참여하지 않고 고려왕실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산골짜기로 은신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면서 중앙의 명예를 버리고 시골로 내려와 자신의 지조를 지키며 학문을 닦았다. 이런 외곬 선비들은 재야에서 학문의 맥을 형성하며 수많은 인재를 키워냈다. 이들은 충절과 저항과 실천력을 갖춘 지식인들로 자라났다.
따라서, 조선조의 선비문화가 확립돼 가던 중종·인종·명종·선조 때에 이르러 전라도는 ‘인물의 보고(寶庫)’가 된다. 이 시기의 대학자만 대충 꼽아보면, 최부(1454-1504)·송흠(1459-1547)·박상(1474-1530)·양팽손(1480-1545)·최산두(1483-1536)·송순(1493-1583)·임억령(1496-1568)·양산보(1503-1557)·김인후(1510-1560)·유희춘(1513-1577)·기대승(1527-1572)·정개청(1529-1590)·고경명(1533-1592)·정철(1536-1596)·임제(1549-1587) 등 즐비하다. 이들의 이름만으로도 심대한 지역적 학문기반을 실감할 수 있다.
더욱이 이들의 정신이 빛나는 것은 낙향한 선비로서만 삶을 마감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절의정신으로 똘똘뭉친 전라도의 사림선비들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붓을 던지고 창을 들고 나섰다. 환갑을 넘기고도 의병의 선두에 선 고경명을 비롯, 김천일·김덕령 등 의병장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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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주저하지 않고 일어선 호남선비들의 의기(義氣)는 이후에도 쭉 이어졌다. 일제의 침략으로 국가의 존립이 풍전등화에 놓인 한말 때도 의병활동은 임진왜란때와 마찬가지로 전라도 사람들이 주도했다.
1908년 전라도 의병들은 일본군경과 교전회수 및 교전의병수에서 전국대비 25%와 24.7%를, 1909년에는 47.2%와 60%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 시기 전라도 의병은 타 지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치열하게 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기삼연·기우만·고광순 등을 꼽을 수 있다. 일제는 전남을 ‘의병의 소굴’이라고 여겼으며, ‘호남의병들은 신출귀몰하여 군대와 경찰의 두통거리’라고 부를 정도로 골머리를 앓았다.
홍영기 순천대 교수(사학과)는 “한말 호남의병의 정신적 근원은 멀리는 임진왜란 당시의 호남의병의 역할에 대한 자긍심에서 찾을 수 있다”면서 “1908-1909년 사이에 전개된 호남의병의 강력한 반일투쟁은 일제의 식민지화를 지연시키는데 기여했다. 일제는 1909년 후반 무렵 조선을 강점하여 했으나 호남의병의 투쟁이 장기화됨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그 의미를 평가했다.
3·1운동(1919년), 6·10만세운동(1926년)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으로 꼽히는 광주학생운동(1929년)도 우리 고장이 의향으로 불릴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학생운동’은 1929년 10월30일 나주역에서 한·일 학생간의 충돌에서 촉발된 뒤 11월3일 광주에서 확산돼 이듬해 3월까지 전국에서 전개됐다. 전국 194개 학교에서 5만4천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할 정도로 반일투쟁이 거세게 펼쳐졌다. 광주학생운동은 3·1운동 이후 일어난 반일학생투쟁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민족운동이었으며 일제식민지통치를 정면으로 부정한 일대 사건이었다.
이처럼 민족이 수난을 당할 때마다 불사조처럼 일어나 대의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해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낸 호남사람들은 현대에 들어서도 그 정신을 잃지 않았다.
1980년 5월엔 총·칼로 무장한 군사독재 정권에 죽음으로 맞서 우리 사회에 민주화의 초석을 깔았다. 열흘의 항쟁기간 동안 경찰이 철수한 치안공백 상황속에서도 광주시민들은 범죄 한 건 저지르지 않는 놀라운 질서의식을 표출했으며 더 나아가 서로가 서로를 위해 피를 나누고 음식을 나누는 대동세상을 만들어냈다. 의로움과 정의감이 앞서지 않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역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5·18로 광주는 민주의 중심이 되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는 원동력이 됐다.
이제 광주매일신문은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추동력 삼아 꼿꼿한 선비정신과 의로운 의병활동의 주역들을 한 사람씩 되살리는 작업을 시작한다. /특별취재반
◇특별취재반
▲이경수 정치부장 ▲오성수 특집기획부장 ▲김재정 사회부 차장대우 ▲김기식 사진부 차장대우 ▲정다운 문화여성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