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고향] “민중이 고루 잘 사는 복지사회 구현” 큰 외침 한국 문화의 고향 전라도 제2부 왜 의향인가 <18>고봉 기대승 조선성리학 최고이론가…서예에도 능해 개혁적 사유와 경세론·언로 중요성 강조 /특별취재반

2011년 05월 23일(월) 00:00

광주 광산구 임곡동에서 태어난 고봉 기대승은 조선시대 성리학을 발전시킨 대표적인 호남 출신 성리학자다. 스승인 퇴계 이황과 주고 받은 편지인 퇴고사칠논변은 조선시대 퇴계학파와 율곡학파,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를 형성하는 단초가 됐다.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사상은 성리학(유교)이다.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조선 건국 세력은 불교 중심의 고려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지배체제를 확고히 하기 위해 성리학을 택한다. 흔히 알려진 퇴계 이황, 율곡 이이와 함께 조선시대 성리학을 발전시키고 황금시대를 연 사람이 바로 광주 광산구 임곡동(옛 나주) 신룡리 출신인 고봉 기대승(1527-1572)이다. 조선 중종 시절 경상도를 대표하는 성리학자가 퇴계 이황이라면, 전라도에는 고봉 기대승이 있었다. 당대에는 두 사람의 학식에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스승인 퇴계와의 퇴고사칠논변(退高四七論辨)은 조선조 유학사에서 전범으로 꼽힌다. 이를 통해 퇴계학파와 율곡학파, 영남학파와 기호학파가 형성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광주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월봉서원은 고봉 기대승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곳이다. 빙월당과 숭덕사, 동재, 서재, 장판각, 묘정비 등을 갖추고 있으며 최근 완공된 체험관등지에서는 21세기 선비정신, 월봉서원 템플스테이, 월봉서원 느림투어, 월봉서원 드라마 판타지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고봉의 사상을 알리고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다문박식(多聞博識) 명성
기대승은 1549년(명종 4년)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58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고 사관이 됐다. 1563년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주서(注書)를 거쳐, 사정(司正)으로 있을 때 신진사류의 영수로 지목돼 훈구파(勳舊派)에 의해 삭직됐다가 1567년에 복직, 원접사(遠接使)의 종산관을 맡았다.
이 해 선조가 즉위하자 집의(執義)가 되고, 이어 전한(典翰)이 돼 조광조, 이언적에 대한 추증(追贈)을 건의했다. 이듬해 우부승지로서 시독관을 겸직하다가 1570년 대사성 때 영의정 이준경과의 불화로 해직당했다. 후에 대사성에 복직됐지만 이듬해 부제학이 돼 사퇴했다. 1572년 다시 대사간을 지내다 병으로 그만두고 귀행하는 도중 고부에서 객사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특출해 문학에 이름을 떨쳤다. 독학으로 고금에 통달해 31세 때 주자대전(朱子大全)을 발췌해 주자문록을 편찬할 만큼 주자학에 정진했다.
32세에 이황의 제자가 됐으며 이항, 김인후 등 호남의 석유(碩儒)들을 찾아가 토론하는 동안 선학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학설을 제시한 바가 많았다.
특히 스승인 이황과 12년 동안 서한을 주고받으며 8년 동안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논란을 편 편지는 유명하다. 이것은 유학사상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사칠이기론의 변론 후 이황은 그의 학식을 존중해 대등한 입장에서 대했다. 논변의 왕복 서한은 현재 ‘양 선생 사칠이기왕복설(兩先生四七理氣往復說)’ 2권에 남아 있다.
그는 서예에도 능했다. 1590년(선조 23년)에는 생전에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주문(奏文)을 쓴 공으로 광국공신 3등에 추록됐고 덕원군·이조판서에 추증됐다. 또 광주 월봉서원(月峰書院)에 배향됐다. 고봉의 저서로는 고봉집 15책과 논사록, 주자문록, 왕복서간집 등이 있다.

광주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월봉서원은 고봉 기대승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곳이다. 빙월당과 숭덕사, 동재, 서재, 장판각, 묘정비 등을 갖추고 있으며 최근 완공된 체험관등지에서는 21세기 선비정신, 월봉서원 템플스테이, 월봉서원 느림투어, 월봉서원 드라마 판타지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고봉의 사상을 알리고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인간 중심의 성리학 방향 계기 마련
성리학은 궁극적으로 인간 본성의 이치를 깨달아 인간 본연의 삶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성리학에서 이기론을 논하고 사단칠정의 논리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성리학의 본령일 수는 없다. 이는 ‘인간 되어짐’의 한 방편일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인간 존재에 대한 이론적 탐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기대승이 ‘조선 성리학의 이론가’로 평가받는 것은 엄격했던 그의 학적 경로와 회로가 곧바로 인간 이해의 핵심에 닿아 있음을 말한다.
이 때문에 고봉의 성리학은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한국 성리학의 방향을 인간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이어 이언적, 이황으로 연결되는 주리적(主理的) 학풍과 서경덕을 중심으로 한 주기적(主氣的) 학풍의 병립 상황을 상호 지양한 종합적인 관점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퇴계와 서신으로 오고간 사칠논쟁을 통해 향후 기호학파와 영남학파라는 학적 분파와 연결되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특히 ‘퇴고사칠논변’의 주요 주제인 사단칠정에 대한 이론적, 철학적 탐구는 중국 성리학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국 성리학의 자아리자 특성이라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탄탄한 이론적 탐색 위에 세워진 고봉의 개혁적 사유와 경세론은 오늘날에도 재고돼야 할 정도로 의미가 크다. 정치의 대원칙을 세우고(立志), 훌륭한 인재를 구하며(求賢), 책임(責任)을 맡기는 것을 기조로 하는 그의 개혁론은 치자의 도덕성 함양을 필요조건으로 국민 교화와 의리·이익을 조화시키는 점진적 방향성을 띤다. 무엇보다 경연을 통해 왕에게 ‘언로의 중요성’을 일깨운 직학(直學) 기대승의 언설은 훗날 선조의 명으로 엮인 ‘논사록’에 담겨 전해지고 있다.

◇월봉서원, 어린이 인문학 관심 제고
광주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월봉서원은 고봉 기대승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1575년(선조 8년) 광산군 비아면 산월리에 망천사를 창건, 위패를 보신 뒤 1646년(인조 24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1654년(효종 5년) 사액서원이 됐다.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41년 빙월당을 새로 짓고 1978년 사당과 장판각, 내삼문, 외삼문의 거립에 착수해 1981년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고봉 기대승의 학덕을 기리고 추모하는 향사제를 월봉사원 내 사당인 숭덕사에서 열고 있다. 월봉서원에는 빙월당(광주시 기념물 제9호)과 숭덕사, 동재(명성재), 서재(존성재), 장판각, 묘정비, 정안문 등이 있다. 월봉서원은 과거 고봉이 그러했듯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광주 광산구의 월봉서원 프로그램이 문화재청의 2011년도 문화재 활용 공모에서 우수사업에 선정돼 청소년들에게 수백년 전 고봉의 사상을 전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월봉서원 프로그램은 지난달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21세기 선비정신’을 시작으로 ‘월봉서원 템플스테이’, ‘월봉서원 느림투어’, ‘월봉서원 드라마 판타지아’, ‘살롱 드 월봉’ 등 총 14개가 마련돼 있다.
월봉서원 관계자는 “고봉 기대승의 고민과 외침의 결정체는 민중이고 민중이 고루 잘 사는 복지사회 구현이었다”며 “월봉서원 내 생태관 등지에서 제공되는 각종 청소년 프로그램을 통해 고봉의 사상이 현재에도 오롯이 녹아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특별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