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乙이 공존·상생하는 시대를… 박연오 경제부장

2011년 05월 24일(화) 00:00

아담이 밭을 갈고 이브가 길쌈을 할 때도 이기(利己)가 존재했을까.
자동차 엔진의 핵심 부품인 피스톤링을 완성차업체에 공급하는 유성기업 노조의 파업으로 기아차 광주공장의 생산 차질은 물로, 국내 완성차 업체 생산라인이 전면 중단위기에 놓였다.
유성기업 노사는 주간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 도입을 놓고 갈등을 빚다 노조의 파업과 회사의 직장폐쇄로 생산이 중단됐다. 이 영향으로 자동차 회사의 주식은 큰 타격을 입었다. 23일 오후 1시38분 현재 현대차는 전날보다 4.15%p가, 기아차는 4.14%p 떨어진 가격에 거래됐다.
장이 시작한 지 한 불과 3시간여 만에 현대차 시가총액은 2조5 천억원 가량이, 기아차 시가총액은 1조 1천억원 정도가 날아간 셈이다. 현대모비스와 현대위아 등 자동차 부품주들도 2-4%대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기아차 광주공장은 유성기업 사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이번 주 중 스포티지R과 봉고트럭 생산라인의 중단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러나 정작 직장폐쇄로 생산을 중단한 유성기업의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날 유성기업은 장을 마감 결과 전일 대비 무려 14.86%(395원)가 오른 3천15원이라는 상한가에 거래가 마무리 돼 주위를 놀라게 했다. 거래량도 전날 5만1460주에 비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353만2천622주였다. 유성기업의 파업 소식이 국내 자동차 산업에 핵심 부품을 거의 도맡다시피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린 것이다.
실제로 현대차와 기아차 엔진 핵심부품인 피스톤링 수요의 70%를 공급하는 부품업체다. 이 같은 현상을 놓고 국내 증권업계의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유성기업이 현대차 등에 핵심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로 부각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끈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 국내 엔진 피스톤링 생산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점이 무기로 작용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대기업이 협력사인 중소기업에게, 중소기업은 직원들에게 뒤통수를 맞으며 ‘甲乙이 뒤바뀐 꼴’이다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대기업을 甲, 중소기업을 乙로 지칭하며 甲이 자금력과 조직력을 앞세워 乙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공존’과 ‘상생’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甲乙 관계’는 보통 납품계약의 우월적 지위에 있는 甲이 일방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계약을 체결하는 관행이다. 그 일례로, 원자재 가격 인상 및 환율 변동으로 원가 상승요인이 발생할 때 대기업은 전적으로 중소기업에 전가하며 납품단가를 낮추곤 한다.
상호 협의 하에 납품 단가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甲이 일방적으로 단가를 정해 乙에게 통보하는 형태다. 그럼에도 약자인 乙로서는 그 마저도 거래가 끊이지나 않을까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불평 한 마디 못하고 수용하곤 한다.
그 뿐만 아니다. 결제방법, 납품기한, 하자처리와 같은 세부적인 문제까지 일방적으로 甲에게 유리하게 계약이 체결되는 형국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乙의 탄식은 깊어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 광주·전남본부가 지역 대기업 1차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한 경영애로 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여실히 드러난다. 협력업체들은 경영애로 해소를 위해 기대하는 정책과제로 82.1%라는 압도적인 업체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분위기 조성’을 들었다.
정부에서도 더 이상 이를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납품계약에 대한 규제책이 속속 내 놓고 있다.
친기업 성향(business friendly)임을 자처하는 현 정부는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대-중소기업 상생을 요구했다. 甲乙 관계를 더 이상 시장자율에만 맡길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어서 대-중소기업 스스로 의식 전환을 해야 한다. 대기업도 당초 출발점은 중소기업 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乙도 열심히 하면 甲이 될 수 있는 사회 그 것이 바로 ‘상생 사회’이자 ‘공정 사회’인 것이다.
유성기업은 전체 직원 755명, 연 매출 2천299억원으로 1인당 평균 임금이 7천만원인 대기업 수준에 근접한 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