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의 산수뮤지컬과 자스민 광주 이경수 부국장 겸 정치부장

2011년 07월 12일(화) 00:00

기자는 최근 중국 장가계를 다녀왔다. 하늘을 찌를 듯이 웅장한 기암괴석을 자랑하는 장가계는 중국의 대표적인 관광지이기에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사시사철 몰려드는 한국인 때문에 먹고 살고 있다는 그곳은 여전히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명소마다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자연이 빚어낸 웅장한 풍광은 이틀이 지나자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게 그것 같고 또 이게 이것 같았다. 하지만 단 하나, 돌아온 뒤에도 뇌리에 각인된 것이 있는데, 바로 ‘천문호선(天門狐仙)’이라는 산수뮤지컬이다.
야외를 무대 삼아 음악이 있는 대형극을 선보이는 중국의 산수뮤지컬 감상이 처음은 아니다. 중국의 대표적인 관광도시인 항주에서, 그리고 중국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상전벽해한 주해에서 이미 300-400명이 등장하는 야외무대를 맛 본 터이다. 당시에는 늦은 저녁 시원한 자연바람을 쐬면서 야외에서 공연을 즐기는 색다른 멋에 취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 감동의 진폭이 예전과 달랐다. 등장인물만 500명이 넘는데다, 무대 자체가 절경을 자랑하는 장가계의 천문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과 계곡을 그대로 살려 무대로 활용하고 여기에다 레이저 빛과 조명으로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극은 우리네 설화 견우직녀에다 백년 묵은 여우의 이야기 등을 버무린 그렇고 그런 내용이었지만 1시간 30여분 내내 역동적으로 진행되는 공연에 푹 빠져 들었다. 웅장하면서도 기묘한 바위들이 조명을 통해 되살아 날 때마다 관람석을 꽉 채운 관객들은 탄성을 토해냈다. 스크린이나 실내 무대에서 연출되는 공연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스케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공연이 막을 내리고 천문산을 비추던 조명의 불빛이 꺼졌지만 감동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대형버스로 가득 찬 혼잡한 주차장을 겨우 빠져나왔지만 곧장 숙소로 가기엔 아쉬움이 남았다. 자연스레 문화수도 광주의 공연문화 현실이 떠올랐다.
흔히 광주를 예향이라고 말한다. 서편제로 일컬어지는 소리와 남종화로 대표되는 그림에다 생활 속에 배어 있는 예술혼으로 남도는 자타가 인정하는 예향이다. 하지만 광주가 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대표 공연작품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광주시가 자신 있게 공연작품을 내 놨다. 문화수도를 표방하면서도 딱히 자랑할 만한 대작이 없다는 난감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광주문화재단이 의욕적으로 만든 ‘자스민 광주’가 바로 그 것이다.
그러나 ‘자스민 광주’가 막상 모습을 드러내자 여기저기서 지적이 잇따랐다. 먼저 튀니지 혁명에서 그 이름을 따 왔다는 ‘자스민 광주’가 중동·아프리카의 자스민 혁명과 5월 광주의 연관관계를 효과적으로 풀어내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실, 기자는 광주문화재단에서 광주를 대표하는 브랜드 공연작품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을 때부터 우려를 떨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그 의도가 작위적이었기 때문이다. 알려져 있는 것처럼 ‘자스민 광주’의 탄생은 ‘광주를 대표할 만한 브랜드 공연을 만들어라’는 한 개인의 지시에 의해 시작됐다. 여기에다 이왕 작품을 만든다면 세계적인 축제에 내놓겠다는 욕심이 뒤따랐다. 더구나 그 제작기간이 불과 4개월 남짓이다. 5억원이라는 제법 큰 제작비를 들여 짧은 시간 안에 뚝딱 광주를 대표하는 공연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예술작품을 어디에 내 놓겠다는 목적의식을 갖고서….
어디 감동을 주는 예술작품이 그렇게 맘 먹는다고 하루아침에 탄생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예술의 고향이라고 자처하는 광주에 여태껏 내 세울만한 공연물 하나 없는가.
사시사철 관람객들로 꽉꽉 차는 장가계 천문산 야외공연장을 뒤로 하면서, 배경이나 컨텐츠는 분명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광주의 공연물을 기대하는 맘이 무겁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