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고향] “국가 누란위기 막아라” 초개같이 목숨 버렸다 한국 문화의 고향 전라도 /특별취재반 |
| 2011년 08월 24일(수)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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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누란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전라도의 의로운 정신은 더욱 빛을 발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장으로 달려갔다. 사태를 초래한 위정자들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죽창’을 들고 앞장섰다. 일본이 조선을 유린한 임진왜란 때는 고경명·김덕령으로 대표되는 의병장은 물론이고 이름 없는 수십만의 민초들이 의병이란 이름으로 전국의 산야에 피를 뿌리며 국토를 지켜냈다. 일본이 한반도를 집어삼키려는 야욕을 노골화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한말에도 마찬가지였다. 1908년 전라도의 의병들은 일본군경과 교전회수 및 교전의병수에서 전국대비 25%와 24.7%를 차지했다. 1909년엔 47.2%와 60%가 전라도 의병들의 몫이었다. 한말 의병활동은 전라도를 빼 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의병항쟁의 중심지로 우뚝 서다
한말 호남의병은 1895년경부터 1915년을 전후한 시기까지 약 20년간 투쟁했다. 이들은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된 1905년 무렵 가장 치열하게 싸웠다. 당시 전국의 크고 작은 산과 너른 들판은 일본 군경과 맞서 싸우는 의병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일제의 국권침탈이 진행되면서 의병활동도 불이 붙었다. 1905년 11월 일본에 의해 을사늑약이 강제로 조인되면서 외교권을 박탈당하게 되자 의병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호남에서는 기삼연, 기우만, 고광순 등이 선두에 섰다. 이들은 모두 일본의 조선 침략이 시작된 1896년 초를 전후해 의병에 참여했던 인물들이다.
1907년을 기점으로 전라도의 의병 투쟁은 최고조에 달한다. 특히 기삼연과 고광순의 활약은 눈부셨다. 이들은 전라도 최초의 의병부대인 장성의병에 참여한 이래 줄곧 의병대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중에서 기삼연의 활동은 두드러진다. 그는 1907년 호남창의회맹소라는 의병부대를 만들고 이끌었다. 여기엔 지난 10여년간 일편단심으로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선 그의 지조와 학식을 흠모하는 전라도 청년들이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호남창의회맹소는 전라도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의병항쟁의 중심이 됐다.
기삼연이 이끄는 호남창의회맹소는 일본인 군경의 목에 현상금을 걸 정도로 적극적으로 항쟁했다. 더 나아가 일진회 등 친일파 제거와 납세거부투쟁 등 생활 속에서 일제에 대항했다. 이들의 반일투쟁이 맹위를 떨치자 일제는 일제군경을 총 동원해 1907년 1월부터 2월까지 대대적인 진압작전을 전개했다. 이로 인헤 전라도에서 활약하던 의병 200여명이 전사했다. 의병장 기삼연도 순창에서 붙잡혀 광주로 끌려와 총살당하고 말았다.
담양 창평 출신 고광순도 호남의병의 불씨를 끈질기게 이어간 인물이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호남을 지킨 고경명 의병장의 후손인 그는 의병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힘을 보탰다. 1906년 6월 당대의 선비 최익현이 전북 태인에서 봉기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갔으며 11월은 구례에서, 1907년 2월에는 남원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고광순은 60대 노구의 몸으로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 10여년간 고군분투했다. 일제조차 그를 ‘호남의병의 선구자’라고 불렀다. 특히 그는 첩첩산중인 지리산 피아골을 근거지로 삼고 의병들을 훈련시키면서 장기항전에 대비했다. 훈련을 통해 일본군과 정면으로 대결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것이다. 하지만 지리산이 의병들의 거점으로 자리잡자 일제가 가만둘 리 없었다. 1907년 10월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은 기습작전을 펼쳤다. 의병장 고광순과 30여명의 의병들은 지리산 자락에다 피를 흘리며 스러져 갔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1908년 이후에도 전라도는 기삼연과 고광순의 의병정신을 이으려는 새로운 의병장이 곳곳에서 나오면서 의병항쟁의 중심지가 됐다.
당시 새로 등장한 의병장으로는 김준·김율 형제, 양진여·상기 부자, 김동신, 전해산, 심남일, 안규홍, 이석용, 문태서, 임창모, 조경환, 황두일, 황준성, 김영엽, 박도경, 영윤숙, 이기손 등이 있다. 형제 또는 부자가 의병장으로 나서서 목숨을 바쳤으며 또한 지식이 풍부한 유생 뿐만 아니라 머슴출신(안규홍)까지 나라를 구하고자 나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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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의병들은 잘해야 겨우 화승총에 의존해 싸웠으나 시간이 갈수록 무기를 개조하고 신무기를 확보하면서 전투력을 강화해 나갔다. 재주 있는 장인들은 연발총을 제조해 공급하기도 하고 또 전투를 통해 일본군으로부터 빼앗은 신무기로 무장하면서 당당하게 싸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또한 전술적으로도 변화를 꾀했다. 초기엔 정면공격이 주요 전술이었지만 이후 유리한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유격전술로 바뀌었다.
이처럼 무기와 전술이 진일보한 호남의 의병은 내륙에서 점차 지리산 등 산악지대와 서남해안의 섬지역 이르기까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세력을 떨치게 됐다. 전라도 전체가 의병의 불길에 휩싸이자 일제는 호남의병들을 ‘신출귀몰해 군대와 경찰의 두통거리’라거나 ‘폭도의 소굴로서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결국 일제는 호남의병을 없애기 위한 최후의 수단을 강구하게 된다. 1909년 9월 이른바 ‘남한폭도토벌작전’을 전개하게 된 것이다.
호적조사를 실시할 정도로 철저하게 시작된 이 의병학살음모는 전무후무한 대규모의 군사작전이었다. 일제는 이미 주둔중인 군대와 경찰을 제외하고도 2개 연대를 더 출동시키고 도서의병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경비선 수십척을 동원했다.
‘남한폭도대토벌작전’ 기간에 자행된 일제의 만행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황현은 ‘매천야록’에 “일병들이 길을 나누어 호남의병을 수색했다. 그들은 그물치듯 사방을 포위했으며, 촌락마다 샅샅이 수색하고 가가호로 조사하여 조금이라도 의심이 나면 즉시 죽였다…”라고 기록했다.
일제의 대규모 군사작전으로 호남의병 500여명이 전사했으며 체포되거나 자수한 의병의 숫자는 무려 3천명이나 됐다.
이같은 일제의 철저한 ‘남한폭도토벌작전’에 의해 큰 피해를 입으면서 호남의병은 그 세력이 크게 약화됐다.
하지만 항일정신으로 무장된 살아남은 의병들은 비밀결사운동을 주도하기도 하고 또 만주나 중국 등지로 탈출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3·1운동 당시 만세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 혼과 정신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홍영기 순천대 교수(사학과)는 ‘한말의 호남의병’에 대해 “한말의병의 정신적 근원은 멀리는 임진왜란 당시의 호남의병의 역할에 대한 자긍심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호남의병을 주도한 인물들의 대부분이 왜란에 참여한 의병의 후손이란 점에서 입증된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또 “1908년-1909년 사이에 전개된 호남의병의 강력한 반일투쟁은 일제의 식민지화정책을 지연시키는데 기여했다. 일제는 1909년 후반 무렵 조선을 강점하려 했으나 호남의병의 투쟁이 장기화됨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일제는 대규모 군대를 투입해 호남의병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이후에야 조선을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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