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가슴으로 부모님 찾아뵙자 박연오 경제부장

2011년 08월 30일(화) 00:00

아침 출근길이면 힘겹게 손수레를 끄는 할머니를 자주 목도(目睹)하곤 한다. 작달막한 체구와 남루한 옷, 검게 탄 얼굴에 골이 깊은 주름에서 노파가 살아온 삶의 역정과 힘든 현 처지가 역력하다. 얼핏 80세는 넘어 보였다.
할머니는 수레를 옆에 세우고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했다. 청소차가 오기 전에 내다 팔 만한 물건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할머니, 이제 그만 뒤지세요”라면서 골판지 뭉텅이를 건넸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곁눈질로 수레를 훔쳐보니 신문 조각·광고지·구겨진 헌 책 등이 흐트러져 있었다. 플라스틱 병과 라면상자도 상당수 들어있는 것을 보니 “이것들을 모으기 위해 구멍가게 앞을 얼마나 서성거렸을까”라는 안타까움이 앞섰다.
아주머니가 “수레에 담긴 것들을 모두 팔면 얼마다 받아요”라고 묻자 “오천원도 받고 삼천원도 받는다”고 했다.
필자는 할머니가 가는 곳을 안다. 동네 구석에서 ‘K자원’이란 조그마한 간판을 걸고 재활용이 가능한 잡동사니들을 사들이는 곳이다. 이곳에다 할머니는 수레에 실린 물건을 넘길 것이다.
노파를 보자 문득 고령화가 떠올랐다. 혹자는 노인들이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지 않아서 오늘날의 노인문제가 발생됐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작금의 노인들은 젊은 시절 전쟁과 가난으로 역사의 격동기에서 노후를 대비할 틈이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정에서 노인들은 설 땅을 잃은 지 오래다. 물론 모든 노인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효성 있는 자식을 둔 덕에 안락하게 노후를 보내는 노인도 있다. 그러나 그 수는 미미하다.
노인이란 단순히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대접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전 생을 통해 가족과 사회, 국가를 위해 희생한 때문에 죽기 전까지는 가족과 사회, 그리고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현실은 그 반대이거나 상식적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핵가족화로 인해 가족 내에서도 설 자리를 잃은 노인문제를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자식들의 부모 봉양은 사실상 단절되는 추세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퇴직금이나 연금 등을 받아 경제력이 있는 노인들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노인들은 하루하루가 빈곤, 불안과의 싸움이다
옛날 같으면 나이 80의 고령은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아니면 자리보전하고 누워 있을 나이다. 하지만 요즘은 아무리 주위를 둘러 봐도 ‘환갑잔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금의 60세는 청춘으로 회자되는 현실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에 고령화사회로 진입했다. 2018년에는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14.3%에 도달, 고령사회로 진입하는데 이어 2026년에는 노인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85세 이상 후기 노령인구가 크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2000년부터 2050년 사이에 65세이상 노인은 4배가 증가할 것으로 추계되지만 85세이상 노인은 18배나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인구고령화는 우리사회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노인을 공경하는 미풍양속을 가지고 있다. 더 이상 노인은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존재가 아니라 동일한 인격체로서 존중 받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발판도 모두 현 노인층들의 공로다.
얼마 있으면 민족의 대 이동이 시작되는 추석이다. 갈수록 명절이 풍속을 좇아서 고향을 찾는 자동차 행렬 못지않게 관광 행렬이 줄을 잇는 추세다. 조상의 성묘나 제례의식은 뒷전이고 관광지의 호텔이나 콘도에서 차례를 지내는 일상도 다반사다.
인간은 모두 나이를 먹고 늙는다. 올 추석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가슴으로 찾아뵙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