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고향] 천년 역사 이어온 전라도 맛의 대명사 한국 문화의 고향 전라도 제3부 왜 미향인가 <27>영광굴비 천혜의 바람·천일염에 독특한 염장법이 빚은 명품 굴비 한 마리면 밥 2그릇도 뚝딱 ‘밥도둑’ 명성 자자 /특별취재반

2011년 10월 25일(화) 00:00

명품 굴비는 좋은 바람과 적당한 기온, 그리고 간을 딱 맞춘 염장법에 의해 탄생한다. 영광 굴비는 천혜의 해풍에다 서해안의 질 좋은 천일염만을 사용해서 조기를 말리기 때문에 전국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굴비의 고장 영광 법성포에 가면 굴비 말리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밥도둑’이란 말이 있다. 밥 한 그릇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뚝딱 해 치우고 또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는데서 비롯됐다. 바로 짭쪼름하면서도 감칠맛이 오랫동안 남는 ‘굴비’를 두고 한 말이다. 찬물에 밥 한 그릇 말아 놓고 잘 말린 굴비를 손으로 북북 찢은 다음 참기름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은 가히 일품이다. 어찌나 쉽게 밥그릇 바닥이 하늘을 보든지, 이를 ‘밥도둑’이라 일컬었다. 이 굴비의 고장이 바로 전라도 영광이다.
굴비는 처음부터 영광에서 그 이름을 얻었다. 한자로 屈非(굴비)는 ‘굴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명칭은 고려 인종 때 왕위를 찬탈하려고 반란을 일으킨 이자겸의 고사에서 비롯됐다. 이곳 법성포로 유배 온 이자겸이 밥상에 올라온 조기 맛에 반해 임금에게 진상하면서 혹시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오해 살까 봐 이 생선을 ‘굴비(屈非)’라고 적어 보냈다고 한다. 비록 ‘귀양살이 신세이긴 하나, 결코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그때부터 영광굴비는 임금님 수랏상에 진상되고 궁궐에서부터 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에 알려지게 됐다.
이처럼 굴비는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전라도를 대표하는 맛의 대명사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맛의 비결은 전통 염장법
굴비를 만드는 재료가 되는 조기는 한자로 ‘助氣’라고 표현한다. 조기가 기운을 돕는다는 뜻에서 이렇게 불린다. 조기는 특히 입맛을 돋우어 줄 뿐만 아니라 어린이의 발육과 환자나 노인들의 원기 회복에 좋으며, 소화 작용을 도와주는 식품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옛 사람들은 조기와 쌀로 죽을 쑤어 어린이나 환자, 또는 노인들의 영양식으로 많이 이용했다.
이처럼 조기를 말린 것이라 할 수 있는 굴비 중에서 유독 영광 법성포산을 으뜸으로 치는 것은 그 맛의 깊이가 오묘하고 독특하기 때문이다.
추자도 등 다른 지역에서도 굴비를 만들지만 영광굴비가 월등히 뛰어난 까닭은 서해안의 바람과 고품질 천일염, 그리고 천년을 이어온 장인의 염장법에 그 이유가 있다.
먼저 염장법이 독특하다. 1년 넘게 보관해 간수가 쑥 빠진 천일염으로 조기를 잰다. 천일염은 서해안 최고의 갯벌로 꼽히는 염산면과 백수읍에서 생산한 질 좋은 소금만 사용한다. 이 염장법은 손이 많이 가고 조기의 크기에 따라 간하는 시간을 조절하는 일이 까다롭다. 법성포에서는 이를 ‘섶장’이라 부르는데, 외지인에게는 그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통상 소금물에다 조기를 담갔다가 말리는 타 지역의 굴비를 법성포 사람들은 ‘물굴비’라 하며 굴비로 치지 않는다.
또한 굴비는 잘 말리는 것이 관건인데, 법성포 지역의 기후 조건이 ‘딱’이다. 평균 기온 10.5℃, 습도 75.5%, 초당 풍속 4.8m인 법성포의 기상상태는 굴비를 건조시키는데 알맞은 여건이다. 봄부터 여름 사이 법성포의 습도와 일조량은 굴비 말리는 데 적절하다는 것이다. 특히 질 좋은 굴비를 만드는데는 바람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 무렵 법성포는 바다 쪽에서 북서풍이 불어 굴비 말리는 데 더없이 좋은 작용을 한다.
이처럼 천혜의 조건을 활용해 탄생한 영광굴비는 그 독특한 맛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수요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덕분에 굴비로 먹고 사는 영광지역민들의 숫자로 늘어나고 있다.
영광에서 굴비를 생산하고 있는 업체 수는 약 530 곳이 넘는다. 법성면에 430여개소가 있으며 영광읍을 비롯한 기타 지역에 100여 곳이 굴비를 생산 또는 판매하고 있다.
영광에서 생산되는 굴비는 연간 2만여톤에 달한다. 생산액은 3천800억원 정도로 추산(2008년 기준)된다. 영광지역에서 단일품목으로 가장 시장규모가 큰 효자상품이다. 게다가 국내 굴비 생산량의 약 80%를 점유하고 있다.

고추장굴비

◇‘수산물브랜드대전’서 대상
누가 뭐래도 굴비의 고장은 영광이다.
최근 농촌진흥청이 전국 151개 농촌 시·군에 대한 인지도와 매력도를 한국갤럽연구소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지역명을 들었을 때 가장 많이 상기되는 농식품’ 부문에서 영광굴비는 81.4%로 1위를 차지했다. 국민 100명 가운데 81명이 ‘영광’이란 이름을 들으면 ‘굴비’를 떠올린다는 의미다.
또한 영광굴비는 농림수산식품부와 한국어촌어항협회가 공동 주관한 ‘2010 수산물브랜드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하면서 전국 최고의 명품으로 인정받았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을 대상으로 학계와 연구기관, 생산자·소비자단체 등 전문가들이 브랜드 인지도와 현장실사, 서비스 점수 등을 종합 평가해 수상작을 뽑는 수산물브랜드대전에서 그 진가를 확인한 셈이다.
이처럼 명성을 확인한 영광군은 천년의 역사를 가진 영광굴비를 명품브랜드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서 제일 원칙은 체계적인 품질관리와 철저한 원산지 표시로 신뢰성을 다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영광군은 굴비를 단순히 가공 판매해 소득을 올리는 단계에서 벗어나 관광상품으로 활용하는 전략도 펼치고 있다.
영광의 대표적인 축제인 법성포단오제와 굴비마라톤대회 등 각종 행사에 굴비체험프로그램이 빠지지 않는다. 덕분에 최근 영광을 찾는 관광객들의 80% 이상이 법성포에서 굴비를 사 가거나 식사를 즐기고 떠나는 것으로 영광군은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영광굴비가 전국 최고라는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과제도 남아있다. 가장 큰 장애물이 중국산 조기의 영광굴비 둔갑 논란이다. 해마다 중국산 조기로 영광굴비를 가공 판매하는 업자들이 적발되면서 영광굴비의 신뢰성을 한순간에 떨어뜨리고 있다. 생산업자들의 도덕성 부재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럴 때마다 영광굴비 판매량이 뚝 떨어져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
법성포에서는 중국산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고 공언하고 있으나, 이 문제를 해결치 않고는 굴비의 명품화는 멀기만 하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별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