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역사교과서·FTA의 진실 박상원 정치부장

2011년 11월 29일(화) 00:00

지난 25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가 10년을 맞았다. 인권위는 1997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설립이 공론화 돼 2001년 11월 독립기구로 출범했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 인권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데 분명 기여했다. 그러나 MB정권들어 모든 이의 인권을 보호하고 향상시키겠다던 인권위가 출범 당시의 정신은 사라지고 인권을 후퇴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날 인권단체연석회의, 국가인권위제자리찾기공동행동 등 인권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는 권력기관을 감시하는 인권옹호기구가 아니라 권력기관에 면죄부를 주는 권력옹호기구가 되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MBC PD수첩 검찰 수사에 대한 인권위 의견 제출안 부결(2009년), 민간인 사찰(국무총리실, 기무사, 철도공사) 진정 각하(2010년),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인권보호 관련 의견 표명 부결(2011년) 등은 그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인권위가 이럴진대 다른 국가기관의 인권 인식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연계선상에서 이달초 중학교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서 교육과학기술부의 역사인식과 인권의 수준이 여실히 드러났다. 한국현대사에서 민주주의 발전에 획기적 사건으로 기록된 5·18민주화운동을 삭제키로 한 것이다. 이는 살아있는 역사의 진실을 질식사 시키려는 의도로 천박한 역사인식,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되돌리려는 의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세계 기록물로서의 가치마저 없애려는 저의도 엿보인다.
지난주 서울에서 전남대 5·18연구소와 한국민주주의 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새교과서 개악’에 대한 토론회에서 지적된 ‘자유민주주의론’은 박정희 정권 당시 민주공화당의 당헌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임이 밝혀졌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이는 국민의 자유보다는 권력자와 대재벌의 자유를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반민주적이다. 쟁점이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선진자본국가의 FTA 실행과정이 그 모습이다. 4·19, 5·18, 6월항쟁의 역사를 교과서에서 삭제하고 이를 자유민주주의로 포장하려는 기만임에 틀림없다. 뒤늦게 정부가 검정기준에 반영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임시방편이 아닌가하는 진실성이 의심된다.
현재 핫 이슈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일방처리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다. 미국과의 FTA 비준동의안이 자유 없이 일방적으로 통과됐다. 자유를 저당 잡아놓고 자유 협정을 체결하는 모순이 벌어졌다. 의원총회를 여는 척 하다가 갑작스럽게 본회의장을 점거, 방청석을 봉쇄하고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야당의 반대가 거세다치더라도 의회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폭거로 규정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협정의 졸속처리후 뒤따르는 피해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는 농민과 중소상인들이다.
일부 대기업의 대미수출여건은 좋아질지 모르지만 공공서비스 위축과 양극화 심화가 불보듯하다. 협정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독소조항은 서민생활의 안정을 위한 정책자율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당장에 농어업과 중소상인, 중소기업의 피해가 큰 걱정이다. 정부가 농어업분야에 10년간 22조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으나 실상은 눈속임이 많다.
농어업 피해는 농산물의 감소를 넘어 식량안보의 기반을 흔들수 있다. 미국의회는 지난 4년반동안 두차례의 재협상을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협상내용을 고쳤다. 반면 우리국회는 피해대책은커녕 번역문 오류조차 제대로 점검하지 못했다.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탄생한 인권위, 역사적 진실을 기록해야 하는 역사교과서, 자유무역을 표방하며 자유를 저당잡힌 FTA 일방처리, 이 모든 현장에 국민을 위한 인권은 없었다. 역사의 진실과 국민을 두려워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을 무시하는 집단은 결코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이 역사의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