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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갈이론’의 불편한 진실

박상원 정치부장

2012년 01월 31일(화) 00:00

세상의 관심이 온통 4·11총선에 쏠려있다. 정치권은 이번주부터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선거의 핵심인 공천 심사에 돌입한다. 여야는 이번 총선에서 국민이 참여하는 개방형 국민참여경선과 모바일 투표 등 기존의 경선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혁신적인 공천심사를 공언하고 있다.
정당쇄신의 키워드가 공정한 공천임을 새기고 있는 듯하다. 이는 민심이 정치권의 혁명적인 변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 선거에서 국민이 보여줬듯 기존의 정치권 행태로는 결코 민심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했음이 분명하다.
한나라당은 공천원칙으로 ‘현역 지역구의원 하위 25% 공천배제’와 국민경선제 도입, 민주통합당은 ‘오픈프라이머리(완전개방형 국민경선제)’의 큰 틀을 제시했다. 여야 모두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국민경선을 통해 개혁공천과 인적쇄신을 천명했다. 역대 최대 폭의 현역의원 물갈이가 예상되고 있다. 그 어느때보다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으며 지역정치권도 크게 요동치고 있다. 지역기반이 탄탄한 현역의원도 예전과 달리 예비후보로 등록하는 등 물갈이론의 홍수에 적극 대응하는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공천권은 정당 보스 개인에서 당 기구, 당원, 일반국민으로 내려갈수록 정당민주화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국민참여경선은 시민역량강화를 통한 정당 민주화의 길을 택한 것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국민참여경선도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 정체성의 문제다. 국민참여경선은 이념적 정체성에 물타기 효과를 가져와 정책경쟁을 가로 막을 수 있다. 당심과 민심의 분리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민심과 당심을 모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
또 지역구민을 쉽게 동원할 수 있는 현역의원에게 유리할 수 있다. 정치신인에게는 넘지 못할 큰 벽이다. 정치적 물갈이의 역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대안이 될 수 있는 비례대표 공천에도 시민참여를 제도화하는게 바람직하다.
각 정당의 전략공천 과정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당원 또는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역적 특수성의 반영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농촌지역과 도시지역 선거는 전혀 딴판이다. 농촌지역은 발품을 팔며 지지를 호소하는 것 이상의 선거운동은 없다.
민심은 기존 정치권의 혁명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수출은 증가한다고 하지만 서민의 삶은 양극화로 더 고단해지고 있다. 장기적인 경제침체와 청년실업의 심각성은 젊은이의 희망을 앗아가고 있다.
이는 정치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고 기존 정치인에게는 더 이상 희망과 비전을 찾을 수 없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현역의원 물갈이론이 탄력을 받는 이유다. 광주·전남의 희망과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해 나갈 책임이 지역 정치인의 역할인데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은게 사실이다.
포스트 DJ이후 현재 광주·전남의 정치적 위상은 어떤가. 김대중과 노무현 시대를 지나 정권을 MB에게 빼앗긴 후 지역정치의 중심은 더욱 힘을 잃은게 사실이다.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대권주자 가운데 지역 출신은 없다. 지역적 한계로 전국적인 큰 인물로 성장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패배감이 온존하고 있다. 공천이 당선이라는 일당독점의 흐름에 안주하면서 큰 정치인을 키워내려는 치열한 고민과 열정이 없었다. 그 결과 지역을 대표할만한 정치인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한명숙 대표는 공천혁명을 반드시 이뤄내 의회권력 교체를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공천의 핵심은 물갈이, 인적청산이다. 공천기준은 객관적이고 엄정하게 적용해야 한다. 시스템이 아무리 잘 갖춰져도 운영을 제대로 못하면 자칫 무늬만 쇄신에 그칠 수 있다. 단순한 물갈이 폭으로 쇄신을 따질 수 는 없다. 구태 정치인을 걸러내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인재를 등장시키는 내실있는 쇄신이 중요하다. 지난 17, 18대 총선에서도 물갈이론이 등장했고 30-40%의 현역의원이 교체됐다. 하지만 정치판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공천심사의 중심에는 ‘사람을 바꿔야 한다’는 테마가 늘 살아있어야 한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개혁과 쇄신은 공허한 주장에 불과하다. 국민에게 구체적인 실체를 보여줘야 한다.
이번 공천에서 구태정치를 털어낼 참신한 인물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총선의 성패가 달렸다. 제대로 된 후보들이 국민참여경선에 나와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