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들 이번엔 속지말아야 박연오 경제부장

2012년 02월 28일(화) 00:00

4·11총선을 앞두고 모든 언론들이 상당의 지면과 시간을 선거관련 기사에 할애를 하고 있다.

당사만 하더라도 편집·제작회의 절반 이상이 정치부에 집중될 정도다.

유권자들은 총선관련 문자메시지와 이메일이 봇물을 이루자 공해라며 짜증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총선 예비후보들이 “누가 누구인지 알 수도 없거니와 알려고 해도 알 기회가 없다”고들 한다. 그래도 유권자들은 누군가를 지역대표자로 뽑아 국회에 보내야 한다.

그 인물이 그 인물 같아 선뜻 결정짓기가 쉽지 않겠지만 다소라도 더 나은 인물을 선택해야만 한다.

법을 무시하며 위법 저지르기를 여반장(如反掌)으로 여기는 인사들에게 입법행위의 권한을 맡길 순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을 한 해에 연속해서 치르기 때문에 선거이벤트성 선거공약이 더욱 난무할 것으로 보여 자칫 정책갈등마저 야기되기 쉽다.

그러므로 출마후보들도 달라져야 하겠지만 최종의 선택자인 유권자들이 판단을 더욱 신중히 해야 한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후보들은 하나같이 실천 가능성과 책임은 나중이다. 미사여구로 잘 다듬어지고 꾸며진 갖가지 유혹으로 유권자의 눈과 마음을 사로 잡으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 흔히 “대통령 못해먹겠다”거나 “장관 그만 두겠다”는 말은 들었어도 “국회의원 못해먹겠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바로 권한만 있고 책임이 뒤따르지 않아서 일 것이다.

해공 신익희 선생의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가 등장한 이래 이 땅에서 “바꿔” 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선거는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정작 바뀐 것은 아마도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무엇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 벌써부터 서로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청치인의 말은 믿을 수 없다”는 통설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최근 법률소비자연맹이 18대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선거공약의 구체성과 충실도를 조사한 결과만 보더라도 여실히 드러난다.

연맹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의원들의 공약 충실도 점수는 100점 만점에 36.3점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공약의 실현방법, 추진일정, 예산명시 등이 없는 부실공약이 다수라는 설명이다.

충실성 척도 기준 중 가장 저조한 점수를 받은 분야는 예산 제시분야로 25점 만점에 3.5점에 불과했다. 공약추진 일정은 4.1점일 정도로 형편이 없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충남 국회의원의 공약 충실도 점수가 55.3점으로 가장 높았고, 광주가 52.88점으로 다음을 차지해 그나마 위안이다.

공직선거법에는 공약의 조건으로 공약의 필요성과 구체적 이행 방법, 재원조달 방안, 추진 기한 등을 명시토록 돼 있다. 이 4가지 조건이 충족돼야만 공약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법률소비자연맹은 공약의 충실도 평가기준을 각 공약이 선거법에 명시된 공약의 4가지 조건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분석했다.

결국 18대 국회의원의 대다수가 국민 또는 지역구 주민들을 속인 꼴이다. 가짜는 세상을 호도하고 사람들을 속이는 방식으로 진실을 사장시킨다. 반면, 엉성하기 그지없는 진짜는 그럴듯한 가짜보다 오히려 가짜로 의심받기 쉬운 법이다.

아마 진짜가 영락없이 가짜처럼 보이는 것은 진짜처럼 분장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그럴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진짜처럼 속이지 않은 진짜는 현실에서 가짜처럼 여겨지기 십상이다. 진짜처럼 모습을 변조한 조화가 생화보다 더 진짜 꽃처럼 인식되는 것도 여기에 있다.

화장한 얼굴이 맨 얼굴보다 예쁘고, 소설이나 영화가 현실보다 더 실감나게 느껴지는 까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실 세계에서는 진짜가 가짜에 압도당하고 진실이 위선에 제압당하곤 한다.

거짓과 왜곡이 가득한 ‘나의 투쟁’을 저술한 히틀러는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더 잘 속는다”고 했던가.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오는 공약보다 더 큰 공약은 없음”을 주지시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