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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선거, 착한 선택

박준수 편집국장

2012년 09월 25일(화) 00:00

연말에 치러질 제18대 대선 레이스에 ‘다크호스’가 뛰어들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재직해온 안철수 후보이다. 그동안 그의 출마설은 꾸준히 언론 등에서 언급돼왔으나 지난 9월19일 공식 출마 선언을 함으로써 박근혜-문재인-안철수 3각 구도가 형성됐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의사출신인 안 후보는 그동안 IT사업가와 교수 등 전문가로서 정치와는 동떨어진 영역에서 활동해왔다.

정치경험이 거의 없다시피한 그가 높은 지지를 받으며 일거에 대선 한 중심에 선 것은 한국 정치사에 획기적인 일이다. 국민들이 그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과 불만에서 기인한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NGO 활동가인 박원순 변호사가 무소속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에 대한 유권자들의 욕구가 분출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안철수 신드롬’이 지렛대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안 후보의 등장으로 여·야 정당 간 정권 쟁탈전은 새로운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상대 후보의 약점을 들춰내거나 의혹을 폭로하는 네거티브(negative) 선거전이 수그러들고 정책 대결로 바뀌고 있다.

후보에 대한 검증잣대도 국정수행 능력과 역사인식, 도덕성, 청렴성 등 고차원적인 덕목으로 대체되고 있다. 역사인식 문제로 논란에 휩싸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24일 고심 끝에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것도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한마디로 ‘착한 선거’ 분위기가 자리잡아 가고 있다. 안철수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지는 미지수이지만, 그가 출마선언에서 강조한 ‘기존정당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요구는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기존정당이 깨우쳐야 할 교훈은 지금 국민들의 관심사는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아니라 ‘누가 국민의 삶을 살찌우는 착한 정치를 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문민정부 이래 역대 대선을 보면 그 때마다 시대적인 국민적 열망이 있었고 그에 합당한 인물이 선택받는 공식이 확인되었다.

문민정부는 민주화, 국민의정부는 외환위기극복, 참여정부는 친서민, MB정부는 경제난극복이 과제였으며, 결국 그 화두에 화답하는 인물이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 18대 대선의 화두는 무엇인가?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후보 모두 ‘변화와 혁신’을 내세우지만 국민의 마음은 ‘착한정치’에 필(feel)이 꽂힌다. ‘착한정치’란 다름 아닌 ‘국민을 위한 善한 정치’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조직력이나 흑색선전, 지역주의 등 기존 정치공학적인 방식으로는 풀 수 없는 새로운 해법이 요구된다.

안철수 신드롬이 일시적인 거품으로 맴돌지 않고 현실정치에 뛰어들어서도 견고한 지지세를 유지하는 것도 ‘착한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아우라를 가진 안철수의 등판으로 민주당의 텃밭인 광주·전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흥미로운 시선으로 이번 대선을 바라보고 있다. 특히 그의 부인 김미경 서울대 의대교수가 전남 순천출신이며 처가 부모가 지금도 여수에 거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본보가 창사 21주년 특집으로 오피니언 리더 50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 비교해 지지도(安 32%, 文 40%)에서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안 후보가 민주당 텃밭에서 충분히 선전할 수 있는 개연성을 엿볼 수 있다. 특히 호남 유력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영호남을 아우르는 연결고리를 갖는 그의 가족배경은 프리미엄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안 후보는 앞으로 수많은 검증과정을 거쳐야 하는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안 후보는 정치 무경험에 대한 불확실성과 산업은행의 안랩 투자과정 뇌물제공 의혹, 재벌회장 구명운동 탄원서 등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적지 않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착한 이미지’를 넘어 국정을 감당할 수 있는 확실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한편, 후보들의 착한선거와 더불어 국민들 또한 ‘착한선택’을 하는 새로운 의식변화가 요구된다. 과거와 같은 연고주의와 포퓰리즘에 의한 선택 대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인물을 뽑는 결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