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유산] 사미인곡·속미인곡 품은 ‘마음의 고향’ 광주매일신문·KCTV광주방송·광주시 공동기획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
| 2013년 01월 10일(목)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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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1년 송강은 노수신에 대한 응지를 지은 것이 화근이 되어 관직에서 물러나 창평에 머물렀다. 그러나 4년후 다시 예조참판으로 중앙정계에 진출했고 곧이어 형조 예조판서를 거쳐 대사헌에 취임했으나 동인이 논척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다시 고향에 내려왔다. 이때 지실마을에서 머문 3년동안 송강은 한국 가사문학의 중요한 획을 긋는다. 이때 지은 가사가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이다.
1589년 무등산의 품에 안겨 문학에 빠져있는 송강에게 다시한번 기회가 왔다. 우의정으로 발탁된 것이다. 송강은 우의정으로 있으면서 ‘정여립 모반사건’을 접하고 수습하면서 동인들을 철저히 추방했으며 이 공과가 인정돼 좌의정으로 승진해 인성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러나 그때 동서의 당쟁은 극에 이르러 송강이 세자 책봉을 건의한 것이 빌미가 되어 선조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동인들의 모함으로 명천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진주와 강계로 옮겨졌다.
1592년 마침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의주로 피난을 떠났으며 의주에서 그동안의 당쟁으로 귀양가 있던 동·서의 인사들을 다시 등용하게 되었는데 송강은 경기·충청·전라 3도의 체찰사로 군무를 총찰하게 되었고 다음해에는 원병을 보내준 명나라에 사은사로 다녀왔다. 그러나 전란중에도 끊이지 않은 당쟁의 회오리 바람에 휘말려 남인들이 그를 공박 모함하자 벼슬을 그만두고 강화의 송정촌으로 물러나 울분과 빈곤함, 지병으로 고생하다가 생을 마쳤다. 그때 그의 나이 58세였다.
어릴 때 담양군 창평과 고서, 그리고 남면의 지실마을을 오가며 학문을 크게 이루어 벼슬길에 올랐던 송강은 벼슬길이 꺾일 때마다 무등산 기슭에 은둔했다. 벼슬생활 중 그가 마음의 고향이자 육신의 고향인 이곳에 돌아온 것은 모두 3차례였다. 그 첫번째는 1575년 40세 때. 강원도관찰사로 부름을 받을 때까지 이곳에서 지냈다. 두번째는 1581년 신의겸 탄핵사건의 여파에 휘말려 파직당했을 때이고 세번째는 1586년 송강과 가깝던 율곡 이이가 죽고 국론이 어지럽자 벼슬을 하직했던 때다.
개성이 뚜렷해서 당쟁에 유독 거세게 휘말리고 그래서 불우하다면 불우한 생을 살다간 송강은 서울에 있거나 타지에 있거나 무등산 기슭이 그립고 또 그리웠나보다. 국문학자들은 송강이 파란중첩된 당쟁의 와중에도 나랏일을 깨끗이 보고 그 역량을 높이 산 것은 무등산정신과 이 기슭에서 배인 의로움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탁월한 정치력은 그가 뛰어난 시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도 내린다. 호탕고매한 시상을 섬세하고 치밀한 기교에 담아서 매끈한 시를 창작해낸 능력과 정치력은 상통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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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 김인후에 대한 송강의 존경은 ‘회하가’와 제문 등에 잘 나타나 있으며 ‘사미인곡’ 등 송강의 가사도 김인후의 문학과 무관하지 않다. 김인후 문학은 그 기조가 시경과 두시(杜詩)의 정신이었다. 특히 김인후는 제자를 가르치다가 비분을 이기지 못하여 시를 지었다는 얘기를 감안하면 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송강이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흠모했던 스승임에랴.
석천 임억령에 대한 송강의 감상문은 없지만 주고 받은 시에서 경외심을 읽을 수 있다. 임억령이 담양부사로 온 것이 62세였으니 송강 나이 22세 때다. 이때부터 5년간 문과에 오를 때까지 스승으로 모신 임억령과의 사이를 알게 하는 시로는 식영정의 오동나무를 두고 화답한 ‘벽오경월’이 있다.
‘가을 산이 싸늘한 달을 토해내니/한밤중에야 뜨락 오동나무에 걸렸네/봉황새는 어느때나 오려는가/지금 이 때사 다시 오기 어려운 것을- 임억령
선생은 신선의 풍채를 지녔는데/오동나무 가지엔 달이 걸렸네/백발이 가을달빛 아래 성성하니/쇠한 모습 장부가 아니었네’ -정철
임억령의 시는 가을달빛의 싸늘함과 함께 황혼기에 접어든 자신의 초조함이 서려있다. 고대하는 태평세월은 가망이 없고 나이만 늙어가는 속절없는 자신에의 애처러움. 그러나 제자는 이 심상을 이어받아 문득 상대를 고고한 신선으로 우러러 받들고 노스승의 만수무강을 빌어주며 저변에 ‘선생의 꿈이 부디 이루어지이다’는 염원도 깔았다. 절절한 사제의 정이다.
송강의 또 한 스승 고봉 기대승은 김인후와 함께 호남이 낳은 대학자다. 송강은 이 스승의 고고한 선비정신을 경모해 이런 제문을 바친다.
‘소생이 선생을 사모한지 오래였으나 오늘에 이르러 그리워 마지않는 것은 선비들이 더럽혀가는 것을 능히 누가 깨끗하게 하며 세도의 천박해 감을 누가 능히 순화시키겠습니까. 순화시키고 깨끗하게 할 분은 우리 선생이었는데 가신 후 세상에 다시 그런 사람 없으니 외로이 서 있는 사당집엔 유풍만 그럴사이 남았습니다.’
선비와 사회가 타락해가고 세도가 천박해가는 것을 개탄하는 빛이 역력한 제문이다. 그러나 더욱 마음 아파해 하는 것은 이것을 바로 잡고 정도를 펴 새로운 기강을 확립해 주기 고대했던 스승의 죽음이었다. 스승 기대승이라면 능히 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정철의 평소 신념인듯한데 애석하게도 이루지 못하고 일찍 간 스승이 못내 안타까운 듯. 기대승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얼마나 도타웠는가를 알게 하는 일면이다.
이밖에도 당대의 이름난 학자, 문사 중에도 교분이 두터웠던 율곡 이이, 백광훈, 박순, 김성원, 고경명 등도 정철 문학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송강보다 14년 연상인 박순은 가까운 광산사람으로 송강을 종사관으로 천거해 득의의 기회를 마련해준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은혜로운 박순 외에 송강이 좋아하는 또 한사람은 김성원. 송강의 처외당숙인 김성원과의 교분은 특히 두터웠는데 ‘성산별곡’은 그 김성원의 풍류를 찬양해 지은 것 아닌가. 뿐인가. 친했던 백광훈이 죽자 ‘기사의 빼어남과 맑음은 그대의 기개이고 시가의 청신함과 필법의 오묘함은 그대의 재주였다. 술단지 앞에서 글을 논할 땐 칼날처럼 간담을 서늘하게 했지’라고 애도해 고결한 인품과 시재를 기렸다. 서로 아끼고 존중하며 정을 나누는 인간미. 아름다운 우정의 표상 아닌가. 송강이 뒷날 ‘관동별곡’을 지은 것도 백광훈에게 백광홍의 ‘관서별곡’을 얻어본데서 비롯된 것이라 하니 그 기묘한 인연에 가탄하지 않을 수 없다.
송강문학은 자신의 탁월한 재주 위에 이들과의 깊은 교유와 사유의 나눔이 크게 작용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역사와 풍토, 스승과 정신, 노력과 사랑의 복합체인 송강의 시는 ‘걸작’ ‘획기적’ ‘최고봉’이란 찬사가 늘 따라다닌다. 무등산이 낳은 송강의 시가는 지금까지도 고금을 넘어 국문학계 뿐 아니라 일반 식자층까지도 추앙의 대상이 되어왔고 시가문학의 우상적 존재가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요즘 정치 개혁 운운하며 국회의원들이 말하고 있는 ‘아름다운 정치’를 이미 송강은 그때 시도했다. 시를 쓴 작가가 정치적 솜씨를 발휘해 재상까지 올랐고, 시와 정치의 조화라는 기적을 만든 이가 송강이니 이미 500년 전에 새로운 정치인상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설까. 전라도 출신 시인들이 앞장서 민중문학의 기틀을 마련하고 저항시, 민중시, 참여시를 통해 정치를 비판하고 민주화를 희구했다. 1970-80년대 군사독재시절을 지나면서 유독 이 지역의 시인들이 문학의 사회참여 역할을 확대시켰고 게중에는 문학을 하다가 정치인으로 변신을 한 사람도 적잖았다. 예술과 정치를 철저히 분리시키는 다른 지역 문화와는 또다른 현상인 것이다. 생활이 예술이요 예술이 곧 정신이며 그 정신이 곧 행정이요 정치였던 모두가 다 동전의 앞뒤와 같이 한몸이었던 남도만의 특질을 송강은 오롯이 보여준 사람이었다.
/글=남성숙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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