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은 관행통(痛)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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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02월 13일(수)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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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뉴스 쪽으로 그가 말감을 돌렸다. 1월의 가운데쯤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서였다. 그는 시사개그맨 같은 수사(修辭)로 우리들에게 위로 같은 폭소를 선사했다. “뉴스를 통 안 보는데 언제부터 보면 좋을까? 누가 좀 가르쳐줘봐.” 얼마 전 다시 만났을 때 TV근황을 건드려봤다. 대선통(大選痛)이 관행통(慣行痛)으로 바뀌었을 뿐, TV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건 여전했다. 인사청문회 때 애용 빈도가 높은 “관행이었다”,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에 대한 청문회 생중계도, 낙마한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에 대한 뉴스도 거개 피해갔다고 했다. 면죄부를 받을 요량으로 “관행이었다”고 둘러대는 그 입속에서 꽃뱀이 튀어나오는 것 같아 TV가 징그러워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불시청은 얼마간 지속될 것 같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청문회가 줄줄이 사탕이지 않은가.
관행통은 그만의 것이 아니다. 생각이 짧은 내가 굳이 긴말할 것까지는 없고, 인터넷에 들어가 ‘관행’을 검색해보면 그 통증의 크기를 금방 잴 수 있다. 거기 정제된 부아가 부걱부걱 괴어오르고 있음을 본다. 부아는 민심의 원형이다. 그 부아가 국민통(國民痛)으로 진화한 건 오래 전의 일이다.
사나흘 전,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는 국민의 관행통을 또다시 놀라게 했다. 한 중앙 일간지 인터뷰에서 “내가 통장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바람에 기획재정부가 최근 특정업무경비 지침을 개선하게 되었다”는 둥 감동적인 궤변을 늘어놓아, “이만하면 낯 두껍기가 국보급이다”는 찬사를 누리꾼들로부터 받았다. 그는 3억2천만원의 특정업무경비를 자기 통장에 집어넣어 사적으로 썼다가 청문회 때 들통 나자 공직자의 공통보호망인 관행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이 땅의 공직사회가 은밀하게 창안해낸 ‘나쁜 관행’은 그들만의 룰(Rule)로, 구성원의 암묵적 동의 아래 조직적으로 작동되고 있어 여간해서는 꼬리를 밟히지 않는다. 그 품종 또한 ‘관행공화국’이란 이름표를 달아줘도 무방할 만큼 많다.
나쁜 관행이 죄가 된다는 걸 모르는 공직자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나라를 좀 먹게 하고 국민한테 해를 끼친다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그들은 묵묵히, 관행적으로 그 길을 간다. 너도 하고 나도 하고 어제도 하고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할 것이라는 종교 같은 믿음이 그 길의 동반자다. 그들의 이런 공동정범정신과 함께, 관행이란 죄를 사용해 소출을 내지 않으면 자신만 손해 본다는 경제적 신념이 관행으로부터의 도피를 막고 있을 게다.
관행 깨기 풍경은 언제나 아름답다. 박근혜 당선인이 맨 먼저 그린 ‘우산도(圖)’도 그러하다. 당선인이 직접 우산을 받쳐 들고 가는 모습이 TV에 비치면서 국민들 눈에도 ‘좋은 새 관행’으로 비쳤다. 시장·군수도 잘 안 하는 ‘직접 우산 쓰기’ 아닌가. 이후에도 당선인의 관행 깨기 행보는 2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점령군 이미지 제거, 3탄 ‘낙하산 인사’ 끊기 발언으로 이어진다. 1월 7일, 인수위 첫 주재 회의에서 전 공직자를 겨냥해 쏘아 올린 ‘잘못된 관행의 단절’이란 이름의 4탄은 ‘나쁜 관행과의 전쟁’ 선전포고로 들린다. 당선인은 설날 인사를 통해 다시 이 4탄을 확인선포했다. “잘못된 관행들을 바꿔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나쁜 소리를 듣는 것들이 대개 그러하듯, 나쁜 관행 또한 대체로 숨어산다. 딥 스로트(Deep Throat)가 아니면 그 몸통을 파악하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나쁜 관행이 ‘손톱 밑 가시’라면 보이지 않는 그것은 ‘염통의 고름’에 해당할 거다. 가시는 몰라도, 꼭꼭 숨어 있는 고름을 무슨 재주로 추적한단 말인가. 기왕에 당선인이 칼을 뺐으니 관행 깨기를 ‘박근혜 정부’의 주요 치적감으로 삼으면 어떨는지…. 이를테면 대통령 직속기구로 ‘나쁜관행퇴치위원회’를 만들어 얕게는 손톱 밑, 깊게는 염통에까지 들어가 가시든 고름이든 모조리 발굴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도록 절대권한을 주자는 것이다. 또 조선조의 암행어사처럼 위원들의 신분을 보장해준다면 효과 만점일 거란 생각이다. ‘불통’과 ‘밀실’의 관행 등을 허물어야 하는 당선인도 이 위원회의 성역이 아니어야 함은 물론이다. 국민은 청문회에서 더 이상 “관행이었다”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