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유산] 자신에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도학자·우국지사 광주매일신문·KCTV광주방송·광주시 공동기획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
| 2013년 03월 08일(금)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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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하게 숲속에 오래 머무니 온갖 생각 없어지고/ 소나무 문 드나드는 세상 사람 점점 드물어라/ 산승이 어떤 일아나 자주 와서 묻는 말/ 편안하고 재미가 어떠한가 이더라/ 누가 곡식 안 먹는 서석산 스님과 같을까/ 광대뼈는 튀어나와도 두 눈은 빛나기만 하다/ 만약 마음까지 냉회처럼 되었다면/불교도와 상종하는 것을 네가 능히 따르겠는가’
오늘날 우리는 회재 박광옥의 삶을 잊지 않기 위해 ‘회재로’라는 도로명을 지어 불러주고 있다. 주월동 동아병원 건너편(대남로 연결지)-원광대 한방병원-세하동 농산물공판장 지나 전평제(눌재로 연결)까지를 우리는 회재로라고 부른다. 현재 선생을 기리는 사당인 운리사는 광주시 남구 풍암동(운리)에 있다. 최근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그 풍암지구다. 광주시내 금남로에서 가자면 20분 거리다. 이 사람 역시 16세기 조선의 광풍에 휘말려 갖은 고생을 하다가 나라 걱정을 하며 생을 마친 이다. 명종과 선조시대를 산 회재는 성리학과 예학으로 이름을 날리고 임진왜란이 나자 분연히 일어나 국가를 구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켜 군량을 수집하는 한편, 백성들의 정신적 결속과 관민의 단결을 도모함으로써 의병활동을 굳건히 뒷받침한 도학자요 우국지사였다.
▲회재 박광옥(懷齋 朴光玉)
회재는 광주시 광산구 매월동 태생이다. 그의 행장을 적은 ‘회재집’을 보면 어려서부터 범상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곱살 때 아버지 상을 당했는데 어른처럼 통곡하며 3년상을 치렀다고 한다. 형 광현은 성격이 엄격하여 아우를 가르치는데 총력을 다했는데 1546년 사마시에 합격하던 해에 형이 세상을 뜨자 가통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1570년 회재에게도 벼슬의 문이 열렸다. 조정에서 학행있는 선비를 선발할 때 대신들이 교관에 천거했다. 서울에 올라가 사직동에 살면서 근무하고 남은 시간은 조용히 혼자 사유하며 지냈다. 이후 나라에서 실시하는 문무과 별시에 합격해 곧 운봉현감에 부임했고 춘추관 기사관으로 승진해 비교적 순탄한 벼슬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순탄대로를 달리던 회재의 벼슬살이에 제동이 걸렸다. 1580년 성절사 자격으로 중국을 다녀와 특평에 발령돼 언적 입장에서 관리들의 잘못을 조사하여 권신들에게 많은 미움을 받게 됐다. 이듬해 직강으로 교체되었다가 영광군수를 끝으로 파직이 되었다. 그러나 조정에선 다시 성균관으로 발령을 냈지만 질병 때문에 부임하지 않았다고 한다.
1586년 영광군수 시절, 관내의 유식한 선비들과 행정의 중요한 것들을 논하고 학교 세우는 일에 힘써 오늘날에도 큰 귀감이 되고 있다. 별것 아닌 서류를 작성하는 일에도 원칙과 차례를 두어 실천했으며 그가 재직 중 세운 향교는 성균관 제도를 한결같이 따랐으므로 향교의 크기가 호남에서 제일이었다고 한다. 특히 지역 관리로 있을 때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지역의 공동체 회복이었다.
회재는 벼슬에 물러나 광주 풍암동에 살면서 시를 한 수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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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잡하고 소란스런 과거시험 장소에서/ 햇볕을 쪼이면서 합격했다 뽐내었지/ 거처한 산은 쓸쓸하고 학의 울음 들리는데/ 어느 명장이 화살을 버려두고 탄식하는가…(하략) 일장춘몽 같은 한 많은 벼슬자리를 버리고 정자 위에 편히 쉬면서/ 시냇물 벗삼아 시를 짓는 선비의 일상이 한가롭고 정겹게 배어있다.’
그러나 조선은 국내의 어지러움을 틈타 왜적이 침입해 임진왜란이라는 초유의 위기를 맞았다. 회재는 왜적이 이미 상주에 도착했다는 정보를 듣고 목사에게 근왕병을 일으켜 북으로 달려가 험악한 요새지를 차단하고 서울을 호위하라고 말하고 내려와 각 고을에 통문을 보내 의병을 운집했다. 그런 와중에 조정에서는 복직하라는 어명이 있어서 승문원 판교로 올랐다가 나주목사로 내려왔다. 국가의 운명이 위급한 상태라 신하로서 의리상 사양할 수 없어 어렵사리 부임했으나 겨우 껍질 벗긴 곡식밥 먹고 쟁반에 두가지 고기가 놓여 있으면 음식을 먹을 때마다 울면서 ‘임금은 어디 계시며 이때가 어느 때냐’고 말했다고 한다. 지방수령의 세력으로 재차 의병을 규합해 이전에 가졌던 뜻을 이루려고 계획하기도 했지만 병세가 위독해져 뜻을 이루지 못했다. 병가를 내고 집에 돌아와 1593년 세상을 떴다. 오래 전부터 의병을 골라 출발시키느라 피곤한 시간이 많았고, 이로 인해 옛 병이 재발되어 점차 깊어져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으니 국사를 보다가 순직한 것이다. 회재의 자손으로는 딸 넷이 있었다. 아들이 없어 가업을 잇지 못함을 애석해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회재의 어머니는 ‘강인한 어머니 산 무등산’ 같은 강인한 어머니상을 보여주었다. 회재는 어머니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회재의 어머니는 성격이 엄격했다. 아버지가 없는 집안을 통솔하는 데 법도를 따랐고, 자손을 가르치는 데 정도(正道)가 있었으며 입밖에 꾸짖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당연 집안 식솔들이 두려워하며 사랑하였고 모든 일이 온당하게 돌아갔다. 이런 어머니가 39세에 돌아가시자 예의를 다해 장례를 모신 뒤 시묘살이로 매일 통곡을 끊지 않았다. 회재는 어머니상을 치르는 동안 죽을 먹고 밥을 먹지 않았다. 몸이 쇠약해져 병이 들어 거의 구제하지 못할 정도까지 이르니, 고을 목사인 최응룡이 약을 가지고 달려와 집안으로 들게 했다. 그는 집에서도 가장 누추한 방에 거처하면서 근신하다가 여러 달 만에 비로소 힘을 되찾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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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재는 된사람으로 평가를 받는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했으니 된사람이란 평을 당연히 받았을 법하다. 행동하고 멈춤에 법도와 절제가 분명했던 그는 벼슬살이 중에도 영화와 진급에 기뻐하지 않고 오직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겸손하려 애썼다. 또한 근검 절약하여 군수를 지내면서도 음식과 잠자리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간혹 옆사람들이 풍부하고 사치스럽게 할 것을 권고해도 음식을 탐하는 관리가 되지 않겠다고 못박아 말했다.
타고난 재능이 순수하고 도덕을 잘 닦은 군자, 옛 서적에 뜻을 두고 밖으로 드러내기를 일삼지 않았던 선비, 마음 속의 잘못을 감추려 하지도 않고 말씀과 침묵, 움직임과 멈춤이 저절로 법도에 맞았으며 검소하고 근면해 관리의 이상형으로 평을 받았던 인물이다. 벼슬할 때에도 영화와 진급을 기뻐하지 않고 오직 마음이 편안하고 겸손하려 했으며, 일평생 출세를 위해 귀하고 현달한 분의 문앞을 찾아가지 않고 날마다 제자들과 더불어 성리학을 토론했다.
당대의 선비들이 본 회재는 이렇다. ‘바라보면 한량없이 온화하다. 몸 움직임이 무거웠다. 큰 일을 당하면 시비를 분별하는 데 용감하고 정직했다. 벗을 선택함에 단정했다.’
광주 풍암동에 있는 회재의 묘비 뒤에 새겨진 묘비명이 눈에 띈다.
‘…선생은 심덕이 매우 후하기 때문에 온화하면서도 근엄하여 남들로 하여금 사랑을 느끼게 하면서도 두려움을 갖게 했다.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일찍이 남의 과오를 말씀하시지 않았으며, 남의 착함을 들추어내기를 좋아하였는가 하면 옳지 않은 물건은 남에게 가져오게 하지도 않았고 또한 남에게 주지도 않았다. 선생께서 돌아가신 뒤 9년 후 호남지방 학자들이 사당을 세워 해마다 모시는 제사가 끊이지 않았다. 선생의 집안은 삼대가 광주에 거주하였으니, 할아버지 붕은 벼슬이 한림이고 아버지 곤의 벼슬은 사예이며 선생은 호남의 소중한 인물이 되었기에 유명한 씨족이라 부른다.’
박광옥은 훌륭한 관료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핍박을 받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잘못된 정치와 사회를 바로잡으려는 고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고집이 아니라 민중편에 서서 민중의 안일과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며 내뿜은 의로운 정언(正言)을 했기 때문이다. /글=남성숙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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