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중산층인가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
| 2013년 08월 15일(목) 00:00 |
|
우리나라에선 누가 중산층인가. 정부가 내세운 중산층은 연소득 1천800만-5천500만원 범위다. 이런 기준으로 정부가 마련한 세법개정안을 보면 연소득 3천450만원 이상 근로자가 중산층 이상에 해당한다. 현재 총 급여가 3천450만원을 넘는 근로자는 지난해 기준으로 1천554만명 상위 28%에 속한다.
그러나 국민이 생각하는 중산층 기준은 더 높다. 한 민간연구소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4%가 연간 총소득 7천만원은 돼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이 이렇게 생각하도록 한 근거는 앞 정부가 제공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중산층 기준을 과세표준액 8천800만원으로 잡았다. 연소득으로 치면 1억 2천만원이다. 4·1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때는 연소득 6천만원까지를 중산층으로 봤다. 서민을 위한 재형저축의 가입자격이 연소득 5천만원 이하이고,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 지원자격도 부부소득 합산 7천만원 이하다.
다른 나라의 경우 중산층의 기준은 국제비교가 가능한 OECD 중산층 기준을 쓴다. 개인이 아닌 전체 가구소득의 중간점에서 50-150% 범위 내에 있는 가구를 중산층으로 정의한다. 통계청에서도 이 같은 기준을 사용해 매년 가계동향조사 소득분배지표를 발표한다. 식구가 4명, 총가구소득이 5천만원이라고 가정하면 가구원수 4명에 루트를 씌워 가구원 1명당 2천500만원으로 계산한다. 가구당 같은 5천만원을 번다고 해도 1명일 경우와 4-5인 가족일 경우 삶의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소득이라고 해도 고소득층, 저소득층이 갈릴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한 때 세계경제를 주름잡던 양대 축인 미국과 일본도 지금 중산층이 없다고 난리다. 미국은 2008년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인한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일본 역시 1990년대 말 버블경제가 무너진 뒤 10년 넘게 장기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들 두 국가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나타나는 동일현상은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중산층의 4천500만명 이상이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빈곤층이라는 얘기다.
미국 일본과 함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는 어떤가. 정부는 우리 국민중 67.7%가 중산층이며 연소득 3천450만원이 기준이라며 선진국보다 높게 잡았다. 매우 비현실적인 수치다. 국민이 화낼만한 기준이다.
결국 정부는 당정회의를 통해 세금부담의 기준선을 연간 근로소득 5천500만원으로 상향조정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 갈수록 생활하기 힘든데 정부는 중산층의 기준조차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으니 국민생활의 고충을 알리 없다. 정부는 고소득자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서민과 중산층에 나눠 주겠다고 했지만 중산층의 기준을 너무 낮게 잡은 바람에 서민에게 세금을 걷어 서민에게 나눠주겠다는 것 밖에 안됐다.
지금 대한민국 중산층은 대출 원리금, 건강보험료 등 경직성 경비와 교육비 등을 빼고 나면 5000만원을 벌어도 쓸 수 있는 돈, 즉 가처분소득은 많이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중산층에 속할지라도 ‘무늬만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실제로 무늬만 중산층이다. 그래서 1년에 16만원 정도 세금을 더 내라고 한들 그 돈 자체가 큰 부담이 되는 저소득 서민층과 다름없다. 정부는 이 정도로 각박한 중간계층의 궁핍을 알기나 하는지···.
최근에 세계적 컨설팅 회사 매킨지가, 한국 경제가 성장 동력을 되찾으려면 중산층을 복원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놓은 적이 있다. 매킨지는 ‘한국 경제, 새 판을 짜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적자 중산층 비율은 55%에 이른다는 주장을 내놨다. 기존 성장 모델이 동력을 잃은 건 수출 대기업이 성장한 것과 달리 중산층 소득은 정체하고 지출은 늘어나는 ‘덫’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중산층을 복원하지 못하면 경제 불평등이 심해지고 결국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져 경기 침체라는 무서운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섬뜩한 조언을 했다.
한국의 중산층 55%가 적자가계를 운영하고 있는데, 중산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중산층이라며 세금을 올리려 하니 반발을 산 것이다. 정부는 ‘빈대의 간’ 빼 먹을 궁리를 할 것이 아니라 혈세 낭비를 없애고 중산층 살릴 방안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주필·이사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