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순사건] ‘밤에는 빨치산, 낮에는 경찰 세상’ 적대세력간 혈투
|
| 2013년 10월 23일(수) 00:00 |
|
1948년 10월19일 발발한 여순사건은 순식간에 전남 동부지역으로 확산됐다. 10월20일, 제14연대 반군은 오전 여수, 오후에는 순천을 장악했으며, 북쪽으로는 구례, 곡성, 남원, 서쪽으로는 벌교, 보성, 화순, 동쪽으로는 광양, 하동 방면으로 전선을 확대해 나갔다. 반군이 점령했던 지역에서는 반군과 지방좌익에 의해 경찰, 공무원, 지역 유지 등 우익인사들이 희생당하는 적대세력사건이 발생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여수·순천 등 전남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남 지역에서 집계된 적대세력사건 피해자수가 가장 많았다. 반군 점령 지역이 수복된 뒤 반군과 좌익은 지리산 등지로 입산하여 빨치산 활동을 전개했고, 이 시기 전남 동부지역뿐 아니라 영암, 장성, 장흥 그리고 경남 거창, 산청, 함양, 합천 등지에서도 주변 산악지대를 근거로 활동하는 빨치산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피해사건이 발생했다. 따라서 여순사건 관련 반군과 빨치산에 의한 피학살은 다음과 같다.
◇반군에 의한 학살
1948년 10월19일, 제주4·3사건 진압 파병을 반대하는 여수 제14연대 소속 군인 2천여명이 봉기를 일으키며 여순사건이 시작됐고, 반군 주력부대는 다음날인 10월20일, 여수 시내에 진입했다. 반군과 이에 합세한 좌익들은 여수의 주요 기관과 건물을 접수했으며, 인민위원회를 조직해 오후 3시 여수읍 중앙로타리에서 군중을 동원해서 ‘인민대회’를 개최했다. 같은 날 반군은 순천으로 북상, 여 수·순천 시내를 완전히 점령한데 이어 여수와 순천의 좌익들은 반군과 함께 경찰·공무원·청년단원 등 우익인사들을 적발하고 숙청하기 시작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이나 우익인사에 대한 인민재판을 실시하기도 했다. 10월27일자 영국 외무성문서에는 미 외교관 보고를 인용해 순천에서 300명의 경찰과 비공산주의자 시민들이 반군에게 학살됐다고 기록돼 있으며 진압군측은 400여명의 경찰관이 사살당한 것으로 추산했다.
그 뒤 반군은 전남 구례·곡성·남원과 벌교·보성·화순, 그리고 경남 하동 방향으로 진격했다. 반군이 벌교읍 소화다리를 거쳐 벌교읍내로 들어오자 경찰들은 도주했으며, 반군은 1948년 10월22일 벌교 읍내를 장악했다. 그 뒤 인민위원회가 결성됐으며, 반군과 좌익들은 벌교 우체국 앞에서 인민재판을 열고 미처 피신하지 못한 경찰과 우익인사, 청년단원을 사살했다.
반군의 일부는 벌교에 남고 일부는 서쪽 보성읍으로, 나머지는 남쪽 고흥읍으로 진출해 군청과 경찰서를 점령하고 좌익들은 인민위원회를 조직했다. 보성과 고흥에서도 경찰서 앞, 보성군 조성역 광장, 고흥군 대서면 대서초등학교 등지에서 경찰과 우익인사들을 살해되는 등 반군과 좌익에 의한 피해사건이 발생했다.
한편 1948년 10월23일, 김지회와 홍순석이 이끄는 제14연대 반군 약 2천명은 순천 삽재와 백운산을 넘어 구례로 들어온 다음 구례군 간전면과 토지면 문수리를 거쳐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 중 500여명은 10월24일 구례읍을 점령하고 우익인사를 처단했다. 구례 주민들은 반군이 입산할 때 숙식을 제공하거나 보급품을 산으로 운반하기도 했다. 또한 구례에서 활동하던 좌익인사 등 구례 주민 일부가 김지회 부대와 함께 입산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압군의 반격으로 1948년 10월23일 순천을 탈환하고 오후에는 시가지 소탕전을 완료했다. 진압군은 10월24일 벌교, 10월25일 고흥과 광양, 10월26일 구례, 10월27일에는 여수를 차례로 탈환하였다. 짧은 점령 기간 때문에 반군이 점령했던 지역의 인민위원회는 구체적인 정책을 펴지 못했고, 지역의 경찰이나 우익인사들을 색출하고 숙청하는 데 주력했다. 이런 ‘반동세력’ 색출과 숙청은 곧이어 진압군이 들어오면서 피의 악순환을 초래했다. 벌교 소화다리의 경우, 반군과 좌익들은 경찰에 협조하던 우익인사와 우익단체원들을 소화다리에서 사살했다. 그 뒤 진압군이 들어오자 다시 수많은 민간인들이 반군 협조 혐의, 좌익 혐의를 받아 소화다리에서 집단 사살됐다.
이렇게 여순사건 발발 후 제14연대 반군이 진입하는 과정과 반군의 점령 하에서 여수·순천·보성·고흥 등지에서 반군과 좌익에 의한 피해사건이 발생했다. 여수와 순천 지역에서는 자택 마당에 있다가 열차로 이동하던 반군의 총에 맞아 부상을 입은 경우처럼 민간인이 우연히 반군이 쏜 총에 맞아 부상당하거나 희생당하는 사건이나 경찰과 가깝게 지낸다는 이유로 좌익에 의해 끌려가 희생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보성, 고흥 지역에서는 반군이 진입해 인민위원회를 구성하고 인민재판 등을 통해 경찰, 공무원, 청년단원 등 우익인사를 총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빨치산에 의한 학살
여수·순천과 인근 지역이 군경에 의해 탈환된 뒤 제14연대 반군과 좌익들은 산악지대로 들어가 무장투쟁을 계속 전개했다. 순천에서는 조계산, 용계산 등지, 보성군에서는 율어, 겸백, 복내, 문덕 등의 산악 지역, 고흥군에서는 보성의 벌교지역과 율어지역으로 이어지는 영남, 점암, 남양, 대서 등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구례와 광양의 백운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입산한 반군과 좌익들은 덕유산·백운산·회문산·입암산 일대에 분산 은거하며 지리산 일대에 유격 근거지를 구축하고 구례·곡성·남원·광양·하동·함양 등지에서 관공서 습격을 하는 등 유격대로 재편돼 활동했다.
이렇게 입산한 반군과 좌익에 의한 빨치산 활동이 활발해지자 군경의 빨치산 토벌 작전도 각지에서 전개됐다. 빨치산은 밤에 활동지역과 가까운 마을로 내려와 식량과 의복 등을 요구하고, 청년들을 강제로 끌고 가기도 했다. 한편 낮에는 군인이나 경찰이 들어와 좌익 협조자를 색출하고, 주민들은 빨치산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 지서 경비에 나서기도 했으며 빨치산 토벌작전에 동원되기도 했다.
이에 지리산 등 빨치산이 활동하는 산악지대 인근 주민들은 밤이면 빨치산에게 식량과 물자를 제공하고, 낮이면 군경에게 협력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즉 ‘밤에는 빨치산, 낮에는 경찰 세상’, ‘밤에는 인민공화국, 낮에는 대한민국’인 상황에서 민간인들은 빨치산과 군경 양쪽으로부터 협조를 강요당했고, 협조를 거절할 경우 양쪽으로부터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민간인들은 빨치산이 출현해 식량 등을 요구하거나 협조를 요청했을 때 이를 거절하면 빨치산에게 피해를 당했고, 강압에 의해 또는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빨치산에게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했을 경우에는 그와 같은 정상을 참작하지 않은 채 무조건 빨치산에게 협조했다며 ‘빨갱이’로 모는 군경에게 희생당했다.
이 시기 순천·구례·광양·보성·고흥 등 전남지역 일대에서도 식량 제공 요구를 거부하다가 빨치산에게 희생당하거나, 빨치산에게 짐꾼으로 끌려간 뒤 행방불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경찰·공무원·우익인사나 그들의 가족들과 빨치산 습격을 대비해 경비를 서던 주민들이 빨치산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거창·산청·함양·합천 등 경남지역에서도 지리산과 주변 산악지대를 근거로 활동했던 좌익과 빨치산에 의한 피해 사건이 주로 발생했다. 희생자들은 좌익과 빨치산의 협조 요구를 거절하거나 군경에게 이들의 근거지를 신고하였다는 이유로 희생당했다. 희생자 대부분이 부농이거나 마을 이장 또는 대한청년단 등의 우익단체 간부들이었고, 정보 누설자라는 오해를 받아 무고하게 희생당한 농민도 있었다. 당시 상황에서는 이렇게 인권은 고사하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야말로 이도 저도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그런 세상을, 참으로 난리가 따로 없는 한 많은 세상을 살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