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순사건] 진정성 있는 기억·기록만이 용서·화해 지름길 여순사건 65주년 특별법 제정하자 |
| 2013년 12월 04일(수)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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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역사는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역사는 재구성된 기억이고, 국가와 과거를 이용하는데 관심 있는 집단들은 때때로 숭고한 목적보다 자신의 의제를 합법화하거나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를 사용하고 조작한다. 기억과 역사의 중요성은 리델 하트가 논해왔듯이, 그것이 일종의 ‘경고 신호’라는데 있다. 다시 말해서 “역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는 않지만,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다. 인류가 범하기 쉽고 반복하기 쉬운 매우 평범한 오류들을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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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작가에게 듣는다
전남동부지역은 빼어난 문인을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개인사나 작품의 소재로 지역의 문인들도 현대사의 비극이었던 여순사건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순천을 배경으로 한 소설 ‘무진기행’으로 유명한 김승옥 작가는 순천이 고향으로 그는 8살 때 여순사건을 겪었다. 당시 광양시청에 근무하던 아버지가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돌아가셨지만 그 사실을 안건, 그로부터 스물두 해를 지난 서른이 넘어서였다. 어렸을 적에 어머님께서는 “아버지는 일본에 계신다”고 얘기해오셨다 한다. 그래서 서른이 넘어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빨갱이 자식이란 사실만으로도 차별과 냉대를 받아야 했던 서러운 세월이어서,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까지 숨긴 채 자식을 여순사건과 무관하게 키웠지만, 반공사회에서 자라난 아들은 생존본능처럼 부자지간에도 이데올로기로 편을 갈랐다. 아버지는 공산당, 아들 김승옥은 자본주의로 말이다. 그래서 작가 김승옥은 아직도 여순사건이 금기로 생각이 든다고 한다.
한 문학 평론가가 ‘태백산맥’이라는 한국 문학이 작품으로 탄생하기까지 해방 40년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 태백산맥은 여순사건으로 시작한다. 또 한사람의 작가, 조정래는 빨치산과 전쟁, 분단으로 이어진 여순사건을 ‘작은 6·25’라고 부른다. 여순사건을 단순히 여수, 순천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국한시키면 안 된다. 분단된 상황에서 일어난 거대한 사건인데, 여순사건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의 조정래 작가는 그래서 그 해결도 우리가 짊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는 또한 말한다. 역사의 긴 안목에서 이념이란 잣대로 나눈 대립과 대결은 민족 앞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평화통일을 하려면 지난 과거의 서로 저지른 잘잘못, 그리고 비극과 아픔을 서로 감싸 안고 이해하고 다독거리는 그런 국가적,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여순사건은 이렇듯 문인들에게나 독자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금기 또는 풀어야 할 숙제로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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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구림마을 화해의 의미
여순사건은 피해자든 가해자든 사건을 바로 보는 것을 애써 외면해 왔던 게 사실이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여순사건과 같은 역사적 아픔을 간직한 곳이 많은데, 서로에 대한 미움과 증오를 용서하고 화해한 영암 구림마을이 있다. 월출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영암 구림마을. 한옥마을로도 유명하지만 주민들은 400년 넘게 이어온 ‘대동계’에 대한 자부심이 더 크다. 하지만 이곳도 한국전쟁을 전후한 좌우의 대립은 극렬했었다. 이 작은 마을에 희생자만 300여명, 화목했던 이웃은 부모를 죽인 원수로 변했다.
‘낮에 경찰들이 오면 경찰들이 사람을 죽이고 또 저녁에 죽은 사람들이 밀고를 해서 죽이고 죽임을 당한 것이죠.’ 현삼식 유족의 말이다. 모두가 피해자란 사실을 안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다. 주민들은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당시를 기록하기로 의지를 모았다. 관 주도의 기록과는 달리 주민들 스스로 당시의 상황을 보태고 뺌이 없이 기록하는 과정에서 해묵은 갈등이 많이 누그러졌다 한다. 그리고 시작한 게 합동 위령제다. 합동위령제 8년째, 지금은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위령탑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 발전이나 지역주민들이 그 앙금을 풀어버리고 오순도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걸 풀어야 된다. 최재상 구림리 합동위령제 추진위원장은 이 사건은 표출해서 문제를 풀어야 된다는 차원에서 추진을 했다고 한다. 왜, 같이 살기 위해서 구림마을이 과거의 갈등보다 미래의 화해를 선택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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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2·28사건의 교훈
대만 2·28사건은 1947년 중국 군인들이 대만에서 정부 항의 시위를 벌인 민간인 수만명을 학살한 사건으로, 대만정부는 총통이 바뀔 때마다 사과를 하고 신청기한까지 계속 늘려가며 피해 배상을 하고 있다. 중국 본토에서 넘어온 국민당 정부의 폭압 정치에 맞선 대만 원주민들의 항쟁. 1947년 2월28일, 대규모 시위로 번져 2·28 사건이라고 부른다. 대만 본토 출신인 본성인에 대한 차별이 사건의 원인이었다. 당시 정부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원주민 2만-3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1995년, 50년 만의 정권 교체로 집권한 민진당 정부는 2·28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를 했다. 사건이 발발한 지 50년 가까이 된 시점이었다. 특별법 발의가 좌절되더라도 이를 끊임없이 공론화했던 민간단체와 국회의 역할이 컸던 것이다. 사과의 방식도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대만의 총통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2·28사건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하고 있다. 1995년 리덩휘 총통부터 치면 공식사과가 벌써 3번째이다.
2·28 사건은 대만 근현대사 중 가장 심각한 인권 사건이고 공동의 기억이기 때문에 역대의 총통이 정당에 관계없이 국가원수로서 사과 성명을 발표해오고 있다. 기념관을 만들고, 2월28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고, 지금까지 2천200여명에게 71억 대만 달러, 우리 돈으로 2천800억원 가량의 배상금도 지급했다. 배상금 신청이 마감됐지만 국회는 기간을 연장해 미신청자를 구제하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2004년에 배상업무가 끝났지만 여러 피해자가 신청을 못했다는 여론이 있어서 올해 5월 국회에서 법을 수정해 다시 배상업무 신청을 받고 있다 한다. 지난 2007년 대만 정부는 또 보상을 배상이란 말로 바꿈으로써 국가의 잘못임을 분명히 했다.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와 배상. 대만의 2·28이 우리의 국가폭력과 집단학살의 과거사를 풀어가는 방식과 매우 다른 점이 이것이다. 기억과 진실은 진정성이 있을 때에 비로소 모두를 용서하고 화해하게 하는 것이다. 국가의 존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오지 않았지만 지금부터라도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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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지역사회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