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순사건] “반성하지 않는 과거는 되풀이 된다” 여순사건 65주년 특별법 제정하자 |
| 2013년 12월 18일(수)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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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이 시작된 것은 사건이 발발한지 40년이 지난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시작됐다. 그 이전에 여순사건은 이승만과 군사독재에 의해 날조된 빨갱이들이 인민재판을 통해 수많은 민간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사건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깔려 있어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도 금기시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과 지역민의 명예회복을 목적으로 여수문화원과 여수청년회의소가 1988년 시작한 사건명 개칭운동은 1992년에 이르러 여천과 순천의 문화원들이 협력하면서 ‘지역사 바로잡기 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교과서와 정부 문서에 수록돼 있던 ‘여순반란사건’이라는 용어를 ‘14연대 반란사건’으로 개칭하라고 서명운동을 전개해 국가에 탄원했다. 군대의 반란을 껄끄럽게 여긴 정부는 1994년 ‘여수·순천 10·19사건’으로 명칭을 바꾸게 된다.
한편, 1980년대 후반에 민주화가 시작되면서 1990년에는 여수문화원이 발간한 ‘여수문화’와 순천의 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가 발간한 ‘지역과 전망’에 여순사건에 대한 증언과 자료가 수록되기 시작하게 된다. 이후 1998년 여수지역사회연구소가 여순사건 50주기에 ‘여순사건 실태조사보고서’(제1집) 발간을 계기로 여순사건에 관한 학술행사들이 개최됐으며, 4권의 자료집과 보고서 및 20여권의 학술연구자료집이 발간됐다. 이를 바탕으로 피해자와 경험자의 생생한 기억과 구술이 계속 기록되고 쌓여 본격적인 진상규명 운동의 중심이 된다.
정부차원의 진상규명은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여순사건에 대해 일부 조사를 수행했지만, 조사기간과 조사인력 등의 한계로 당초 결정한 직권조사가 아닌 ‘신청사건’위주로 조사가 진행됐다. 그 결과 유족회와 시민사회가 주장하는 피해 추정인원인 1만여명의 10% 수준인 1천여명에 불과해 극히 일부만 진상규명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사건조사의 편의를 위해 지역별(여수·순천·구례·고흥·보성 등), 유형별(해당 지역의 여순사건과 관련한 군경토벌사건, 국민보도연맹사건, 형무소재소자 희생사건, 군경에 의한 부역혐의 희생사건, 적대세력에 의한 피해사건 등)로 분류해 조사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에 여순사건에 대한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말하자면, 여순사건을 통사적인 관점에서 군인·경찰에 의한 민간인집단희생사건과 반군·좌익·빨치산에 의한 적대세력사건을 포괄해 총체적으로 조사해 진실규명을 함으로써 사건의 전체적인 피해상황을 파악하고 지역사회내의 갈등과 모순을 극복하고 화해를 이끌어 냈어야 하는 것이었다.
올해로 여순사건 65주년을 맞았다. 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지도 벌써 수년이 지났지만 여순사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사건으로 남아있다. 지난 진실화해위의 여순사건 결정보고서는 군인과 경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이뤄졌음을 적고 있다. 또한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권고를 했는데, 권고 사항은 5가지로 국가 사과와 위령제 지원,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역사기록의 정정과 수정, 평화인권교육 강화 등이다. 명예회복과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들인데, 정부는 사과와 위령제 지원은 이행했다고 말한다. 안전행정부 과거사 관련업무 지원단 실무자는 ‘여순사건에 관해 사건의 당사자는 국방부 소관으로 위령사업 지원도 했고 국가 사과도 이뤄진 걸로 보고됐다’고 한다.
그러나 피해자 유족들은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사과의 형태나 표시가 제주4·3처럼 대통령의 공식 사과가 아닌 위령제에 참석한 지역 경찰서장이나 군부대 지휘관의 유감 표시 정도로 그쳤기 때문이다. 위령제 지원도 당해년도에 한해 유족회별로 수백만원을 준 게 전부다.
그런가 하면 미래세대에게 여순사건을 가르치는 교과서 수정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교과서에서는 여순사건의 가해자가 누구인지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이는 결국 정부의 의지 부족으로 권고사항은 의무사항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각 정부부처에서 무시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군대의 반란과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국민을 적법한 절차없이 학살한 여순사건,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도 없이 피해자들은 여전히 가슴 속 응어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는 여순사건이 명예회복이나 배상도 없이 잊혀져가는 데에는 자치단체들의 잘못도 크다 하겠다. 주민들의 문제이지만 뒷짐만 진 자치단체들이 그것이다. 지난 10월20일, 전국새마을 지도자대회가 열린 순천팔마체육관에서는 대통령이 참석했고, 전남도와 순천시는 각각 2억8천500만원씩을 지원했다. 같은 날 팔마체육관에서는 여순사건 순천지역위령제가 조촐하게 열렸다. 이날 순천시는 위령제 지원금으로 1천만원을 내놨다. 그래도 순천은 사정이 나은 편으로, 다른 자치단체의 위령사업 지원 수준은 이보다 훨씬 못 하다. 기념·기록사업에도 손을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사건 당시 민간인 200여명이 숨진 것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여수지역은 이같은 사실을 알 수 있는 위령탑이나 기념관은 시내 어디에도 없다. 통과 여부가 불투명한 국회의 특별법만 쳐다보는 상황이다.
여순사건 추정 사망자는 전남에서만 7천여명이다. 전남도의회에서 여순사건 특위가 가동중이기는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국가가 적법한 절차도 없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의 범죄를 인정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해서 도와 시·군 조례를 통해 자치단체가 해야 되는 부분은 실시해야 되는 것이다. 위령제 지원은 물론 위령공간, 역사교육공간 등에 대해 지방정부가 의지를 갖고 실행해야 하는데 뒷짐만 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단체에서는 이제 전남 시·군 의원과 도의원, 자치단체장 선거 때 여순사건 지원 공약을 본격적으로 받아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여순사건 유족들은 진실이 규명되었으니 이제 국가가 무언가 해주기를 기다리다 지쳐서 현재는 국가를 상대로 개별적, 집단적인 손해배상소송을 진행 중이다.
여순사건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유는 잘못된 과거사를 어떻게 청산하느냐 하는 문제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제다.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의 투투 대주교는 “망각에서 재생산돼 불의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는 안정될 수 없다”고 이야기 했다. 즉 “반성하지 않는 과거는 되풀이된다”는 말의 의미는 지난 우리 역사와 오늘의 사회모습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청산은 현재 우리 사회의 구조와 모습을 돌아보며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현대사에서 국가폭력은 끊임없이 재현돼 왔었다. 제주4·3에서 여순사건, 한국전쟁 민간인집단학살, 베트남 양민학살, 광주 5·18민중항쟁의 가공스런 국가폭력은 강도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여순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하려는 이유는 진실화해위원회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활동하면서 여순사건에 대해 직권조사하기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청자 중심의 조사밖에 하지 못해 예상되는 피해규모의 1/5에도 미치는 못하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채 위원회 활동이 종료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에 희생자와 유족들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추가 진상조사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못한 수많은 유족들도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어 특별법 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역사적 배경이 가장 유사한 제주4·3사건의 경우, 1999년 12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제정됐으며 이후에도 2차의 법 개정과 함께 11년 동안 7차에 걸쳐 추가조사가 이뤄졌다. 2000년 8월부터 제주4·3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복위원회를 통해 희생자 및 유족을 심의·결정하고 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여순사건과 같은 통곡의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과거의 창을 비추어 내일을 준비해 나가는 전환점에 서야 한다. 우리는 또 한 번 역사로부터 귀중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국가폭력과 같은 잘못된 과거사는 결코 잊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긴 흐름에서 잠시 호흡하면서 진실이 늦춰질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여순사건이라는 지난 65년의 세월 동안 비극의 역사를 한 평생 감내해 온 여순사건 유족들의 숨죽인 통한과 설움 그리고 강요된 침묵으로 기다려 온 유족들과 이제는 지역공동체 시민사회 모두가 지역의 아픔으로 함께 인식하는 기억의 공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과 바다는 저기에 저렇게 이미 있으되 보는 사람, 가는 사람, 이용하는 사람에 따라 누구에게나 똑같이 다가오지는 않는다. 5천년의 유구한 역사와 금수강산을 자랑하는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사람이 사람에 의해 사람을 억압하는 일이 결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아니 되겠다. 운명을 같이하는 민족공동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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