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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공천제 폐지 공약’ 구두선인가

박상원 부국장 겸 정치부장

2014년 02월 17일(월) 19:20

여야 정치권의 이전투구에 국민들의 정치 무관심과 피로도가 짜증수준에 달하고 있다. 정치개혁을 한다며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이제야 여당은 약속을 지키려는데 위헌소지가 있고 부작용이 클 것이라며 지키는 것이 현실성이 없다고 약속을 번복한다. 야당은 여당이 지키지 않는데 혼자 지키자니 현실적인 불이익이 클 것으로 판단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국면에 처해있다.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얘기다. 여야 정치권은 지난해 대선에서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며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약속을 국민들 앞에 공언했다.

당시 정당공천제 폐지 약속은 여야 모두 기득권 버리기, 정치개혁의 시발점으로 삼았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나고 6·4지방선거가 3개월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약속이행은 슬그머니 뒷걸음질치고 있다. 이달 28일로 국회정치개혁특위 활동이 마무리될 때까지 정당공천제 폐지 협상이 마무리되리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새누리당의 약속 번복으로 사실상 정당공천 폐지는 물 건너갔다. 정치인들의 약속 번복은 그동안 수없이 반복돼왔다. 정당공천제 폐지 약속 번복도 정치권에서는 손바닥 뒤집듯 언제나 그렇듯이 일상적인 현상으로 생각할 것이다.

정치의 존재이유는 국민이다. 그 목소리를 담아내는 게 정당이다. 지난해 여야의 정당공천제 폐지 약속은 정당 공천으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 수준을 넘어 위기의 수준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약속 이행 시기가 다가오자 새누리당은 실익도 없고 ‘위선적 개혁’이라며 유지 입장을 고수하고, 민주당은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공약실천을 거듭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은 정치 불신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무공천 선언’도 고민하는 분위기다. 새누리당의 공천유지 추진에 난감해하면서도 전략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현대 정치는 정당정치로 정책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정당공천은 필수적이다. 문제는 지금의 정치현실에서 벌어지는 공천비리의 정도가 지방자치의 근본취지를 살리지 못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가장 실효성 있는 방안으로 정당공천 폐지가 등장했다. 현재 직면한 지방자치의 가장 큰 문제는 정당공천에 의한 지방정치의 중앙정치 예속화다. 국회의원이 지방정치인의 생사여탈권을 가짐으로써 지방정치인은 국회의원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했다. 또 정실공천 등 공천비리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고, 지역을 기반한 패권정당의 독점에 의해 지방자치의 다양성이 사라졌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은 각 지방정부가 정당공천의 허용 여부를 정하는데 초기에는 정당공천이 대세였으나 폐해가 심각해 공천을 배제하는 지방정부가 늘어났다. 지금은 전체 지방정부 가운데 4분의 3정도가 공천을 금지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정당공천을 허용하지만 정당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2011년의 경우 기초단체장 당선자의 99.8%, 기초의원 당선자의 72%가 무소속이었다. 지방자치에서 생활정치가 강조되면서 정당들이 자신의 당 후보를 공천하는 대신 능력 있는 무소속 후보를 골라 추천형식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의 정당공천 구조에서는 지역을 기반한 패권적 정당의 폐해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공천권을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지방정치인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풀뿌리 지방자치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국회의원 스스로 개혁 실천에 적극 나서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지방정치인은 지방자치의 취지를 살려 지역의 발전과 지역민의 복지를 증진하는데 헌신해야 한다. 정당공천 폐지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정당공천으로 인한 폐해가 너무 크므로 실효성 있는 방안을 찾는 게 급선무다.

지난해 여야는 정당공천으로 인한 지방정치의 폐해가 너무 심각했기에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일단 약속을 했으면 시행을 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보완을 해 좋은 제도로 만들어 가야 한다. 약속을 해놓고 이런 저런 핑계로 추진을 않는다면 신뢰와 존경은 사라지고 미움과 불신만 남게 된다.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사전에 충분히 검토를 하고 예상할 수 있는 문제를 확인하고 공약을 했어야 한다. ‘아니면 말고’식의 구태의연한 정치행태는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