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인의 권리’ 하드웨어로 키우자 연극인 박윤모 객석에 말을 걸다 |
| 2014년 03월 11일(화) 19:47 |
염주종합체육관에 마련된 4천8백석이 정말로 가득 찼다. 대형뮤지컬에 비해서 고가의 관람료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열기가 뜨거울 줄 몰랐다. 처음 일 디보 광주공연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월드 투어 가운데 내한 공연은 서울과 광주 딱 두 곳에서만 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인구 1천백만의 서울과 비교했을 때 인구 148만이 조금 넘는 광주에서 과연 볼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반신반의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 디보의 세계적 명성은 대단하지만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대중성은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핑거라이트를 하나씩 손에 들고 환호하는 모습을 보며 모든 의심이 싹 사라졌다. 그동안 얼마나 광주시민들이 다양한 장르와 수준 높은 공연에 목말라 있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잠실올림픽체육관에서 열린 서울공연(6천 500석)과 염주종합체육관의 광주공연(4천 800석)을 비교했을 때 절대 서울과 뒤지지 않는 관객 수였다. 아니, 인구나 소득 대비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물론 타 지역에서 찾아온 일 디보의 열성팬들도 섞여있지만 공연을 즐기는 광주 관객들의 매너와 수준 또한 최고라며 일 디보 스태프들이 엄지손을 들어주었다. 역시 문화수도 광주 시민들이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캣츠’ 등 유명 뮤지컬 명곡들로 구성된 감동의 무대에 흠뻑 젖어들었다.
그런데 아름다운 선율과 매혹적인 목소리에 빠져드는 걸 방해하는 게 있었다. 2층 객석에 앉아있었는데 너무 과한 음향과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였다. 개인적으로 음향에 불편함을 느꼈던 이유는 가수들이 워낙 성량이 풍부하기도 하겠지만 체육관 공연장이라는 한계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고품질의 음향을 공연장이 담아 내주지 못했다고나 할까. 또한 고가의 관람료에 비해 좌석 및 편의시설 등의 공연장 인프라가 빈약한 것이 아쉬움이었다. 물론 광주에 3천석 이상의 대형 공연장이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감내해야할 부분이지만 말이다. 보통 대형 공연이 지방 투어를 할 경우 아티스트 개런티와 기타 부대비용을 감안하여 적어도 3천석 이상은 되어야 손익분기점을 넘긴다고 한다. 수준 높은 공연을 유치하려고 해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에 높은 개런티를 감수하고 시도할 기획사는 없을 것이다. 공연 횟수를 늘리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지방투어의 경우 오래 머물지 않거니와 횟수가 늘어난 만큼 그에 따른 부대비용도 높아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현재 광주에는 대형공연이 가능한 공연장으로는 광주문화예술회관(1천700석)과 지난해 개관한 김대중 컨벤션센터 2관 다목적홀(3천석) 등 단 두 곳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관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한편으로 국립 아시아문화의 전당에 들어설 아시아예술극장에 기대해보지만, 아시아예술극장 대극장(2천석)은 기존 공연보다는 아시아 문화를 바탕으로 한 공연예술의 작품 창작 과정이 공개되고, 시연·유통·판매까지 이어지는 상설제작시장(Factory Shop)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세계 공연시장에 유통 가능성이 큰 유망 프로그램을 발굴·육성하는 의도로 보면 용도가 조금 다르다 할 수 있다.
활발한 공연예술 활동은 공연단체(창작)·공연시설(유통)·자치단체(예산 지원)라는 세 주체가 제대로 굴러갈 때 가능한 법. 광주의 수준은 어떠할까? 지난 해 말 2013공연예술실태조사가 발표됐다. 광역시도별 공연예산 사용처 통계를 보면 광주시의 공연예술 활동 지원 예산이 전국에서 1위로 가장 높았다. 공연시설 운영 및 건립 예산은 타 시도에 비해 낮았지만, 공연예술 예산의 55.4%를 공연예술 활동 및 축제 지원 예산으로 집행하는 점에서 광주시가 월등했다.
공연장 공연 실적 또한 응답 공연장(1천99개)을 기준으로 평균 공연 건수 39.7건보다 높은 61.7건으로 광주시가 1위를 했다. 그만큼 공연 예술 활동에 많은 지원이 있어 많은 공연이 열리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에 공연장 수가 워낙 적다보니 공연건수가 높을 수 밖 에 없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시민들의 문화수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는 만큼 대형공연장이 아니더라도 공연에 최적화 된 공연장이 필요하다. 무작정 공연장을 짓자는 뜻은 아니다. 기존에 묵혀둔 공간에 대한 활용도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인근 빈 건물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해 잘 활용한다면 도시재생은 물론 공연예술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해본다. 다양한 장르의 수준 높은 공연을 즐길 권리, 시민들이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광주시립극단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