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입말, 그윽한 글말 문/화/난/장 이 현 아동문학가

2014년 04월 03일(목) 18:55

“너는 참, 좋겠다!”

자라면서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너는 참, 좋겠다!’였다.

화나면 화난다고, 싫으면 싫다고, 좋으면 좋다고. 마음껏 표현하며 하고 싶은 말도 다하고 사니 얼마나 좋겠냐는 거였다.



할아버지 말씀에 해가 지도록 엄마 아빠를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아니라고만 하지 말고 생각을 좀 해 봐라. 형제들 중에 너처럼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니고, 하고 싶은 말도 다 하면서 사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없지? 그러니까, 너만 엄마 아빠가 다른 거야. 너, 한 번도 못 봤냐? 전번에도 보니까 너를 똑 닮은 사람들이 저쪽에 있는 다리 밑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던데….” 처음에는 할아버지 말씀에 콧방귀만 뀌었었다. 하지만 자꾸만 생각을 하다 보니 할아버지 말씀이 모두 다 옳은 것 같았다. 책가방에 짐을 챙겨 메고는 엄마를 찾기 위해 하루가출을 했었다. 결국엔 가족들 손에 이끌려 집에 돌아와 엉엉 우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그때의 기분은 오랜 기간 가슴에 남았었다. 밥상머리에 앉아 신나게 떠들다가도 할아버지 말씀이 생각나 재빨리 입을 꼭 다물기도 했었다.



직장에서도 나는 할 말 다하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건의나 제안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면 언제나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곤 했었다.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자꾸만 아무 의견이나 내보라며 시간을 내주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참아야 했다. 일상에서 느끼고 생각되어진 것들의 십분의 일, 아니 이십분의 일만 표현을 해도 할 말 다하고 사는 사람이 되니 가슴만 더 답답해질 뿐이었다. 내가 나 답지 않아야 했다. 나도 모르게 생각되고 상상되고 느껴지는 느낌들을 애써 감추며 외면해야 할 때마다 힘이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찾게 된 글쓰기는 ‘황홀함’이었다.

나의 생각과 느낌들을 하나도 참지 않고 모두 다 쏟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고개까지 끄덕여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말 그대로,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래서 요즘엔 입말보다는 글말이 더 좋다.

입으로 말 할 때는 수정하기도 어렵지만 글로 말 할 때는 마음대로 지웠다 다시 쓸 수 있으니 걱정이 없다. 가끔은 울컥한 생각에 과하게 글을 쓰다가도 쓰다 보면 어느 새 마음이 풀려 순화된 글을 쓸 수 있으니 마음까지 평온해진다. 내가 온전히 나 일 수 있어 행복하다. 나도 모르게 상상되고 생각되고 느껴지는 느낌들을 애써 감추지 않아도 되니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소망한다. 새롭게 시작된 4월엔 모두 함께 감사한 삶이되기를. 우리 안에 꼭꼭 숨어 있는 것들을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