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처뿐인 삶, 그래도 내 자신을 사랑하라 해와인문기획 시네필로 최송아(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
| 2014년 04월 08일(화) 1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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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부터 지금의 모습이었을까? 인간은 본래 네 개의 팔과 네 개의 다리, 두 개의 얼굴, 그리고 등이 맞붙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하늘을 위협할 만큼 강한 힘을 가졌기에 제우스신에 의해 두 쪽으로 잘리는 형벌을 받는다. 그 후로 인간은 자신의 반쪽을 찾아 한 몸이 되려고 갈망한다. ‘향연’(플라톤)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밝힌 사랑의 기원이다. 그에 의하면 사랑은 인간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려는 열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운명적 연인’, ‘내 반쪽’이라고 말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헤드윅은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던 날 동독에서 사내로 태어난다.
미국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던 헤드윅은 미군인 로빈슨과 결혼한 뒤 남편의 나라로 떠난다. 그 당시 허가받지 못했던 동성 간의 결혼을 위하여 그는 성전환 수술을 하게 된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포기하는 대가를 치렀을 뿐만 아니라 이름조차 어머니의 것인 헤드윅으로 바꾸어야만 했다. 수술은 실패했고 일인치의 성기가 혹처럼 남는다.
그 해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로빈슨도 그를 떠난다. 미국으로 탈출했다는 기쁨은 무의미해졌다. 사랑해준 사람을 잃은 헤드윅은 깊은 상실에 빠진다.
다시 ‘향연’을 보자. 사랑의 신 에로스를 주제로 진행한 술자리에서 사람들은 에로스가 아름다움에 관여하는 가장 오래된 신이므로 마땅히 찬미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색다른 논의를 펼친다. 그에 의하면 에로스는 풍요의 신 포로스와 빈곤의 신 페니아 사이에서 이중적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 페니아를 닮아 가난하고 무지하며 추하지만 동시에 포로스처럼 풍요롭고 지혜로우며 아름답기를 욕망한다. 결핍을 느끼면서 끝없이 빈곳을 채우려는 과정에서 에로스는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이제 에로스는 수동적으로 찬미 받는 무기력한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사랑을 욕구하는 능동적인 주체가 된다.
헤드윅은 독일 나치즘과 소련 공산주의, 그리고 미국의 퇴폐적 문화산업이 낳은 폭력과 억압의 시대를 살았다. 그는 생존을 위해 복종과 숭배를 택한다. 이처럼 굴욕적 삶을 살았던 그가 처음으로 관계의 주체가 된 것은 다시 사랑을 하면서부터다.
헤드윅은 베이비시터로 일하던 중 그 집 둘째 아들인 토미와 사랑에 빠진다. 그 후 헤드윅은 토미와 록밴드를 결성해 작곡과 공연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왜 주체의 억압에서 벗어난 객체는 다른 객체를 억압하는 주인 행세를 하려들까? 어머니와 로빈슨이 그의 이름을 바꾼 것처럼 헤드윅은 토미에게 그노시스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그의 정체성을 흔들어 자신의 일부로 편입시키려 든다. 노예였던 그가 주인이 된 것이다.
토미는 헤드윅이 여성이 아님을 알고 도망친 후 그와 함께 불렀던 노래로 스타가 된다. 상처받은 헤드윅은 새로 록밴드 활동을 시작하지만 계속 토미를 스토킹한다. 저작권 싸움, 토미의 회피, 록밴드 멤버와의 불화로 파국을 치닫던 어느 날 헤드윅은 토미의 손을 놓는다. 토미는 헤드윅에게 ‘Wicked Little Town(Tommy Gnosis Ver.)’이라는 노래를 선물한다. ‘마법도 운명도 없듯이 당신이 찾아야 할 반쪽은 없어. 그래도 당신은 특별한 존재야!’라는 노랫말이 헤드윅을 울린다.
욕망은 결핍을 전제한다.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우선 결핍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헤드윅은 이제 남성도 여성도 될 수 없는 결핍된 존재가 아니라 남성-여성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특별한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객체였던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객체사이의 권력 관계를 청산할 때 비로소 진정한 해방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헤드윅은 새로운 노래를 부른다.
“당신은 이미 자신이 하나로서 완전함을 알고 있다”(‘Midnight Radio’). 사랑의 자유는 이처럼 연인의 흔적을 내 몸에 새기며 떠나보낼 수 있을 때 찾아오나 보다.
/최송아(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최송아(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