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 숲길따라 떠난 색다른 봄여행…잔잔한 유혹에 빠지다 키우리산악회와 함께 떠난 진도 첨찰산

2014년 04월 15일(화) 19:30

첨찰산 정상에서 바라본 남해.

소풍가는 어린애 마냥 토요일이 기다려진다. 산에 가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스포츠가 다 있겠지만 등산 보다 나에게 많은 것을 주는 스포츠는 없는 것 같다. 특히 키우리산악회 회원들과의 산행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데 최고중의 최고다.

지난 12일 울돌목에 있는 진도대교를 지나 섬으로 들어서자 회원들이 창밖을 내다보며 탄성을 내지른다. 연두빛으로 물들어가는 산에 점점이 뿌려져 있는 산 벚나무 꽃과 밭에 있는 유채꽃이 환상의 조화를 이루면서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44명의 회원들을 싣고 버스는 생동하는 봄을 안고, 두 시간 여를 달려 목적지인 진도 첨찰산(485m) 쌍계사 입구에 도착했다.

기념사진과 간단한 체조로 몸을 풀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기도 써야하는데 A코스를 탈까 고민을 하다 며칠 전부터 몸이 다소 안 좋은 터라 결국 5.4㎞의 B코스(운림산방-아리랑비-첨찰산 정상-삼선암약수터-쌍계사)를 선택했다. 처음 산행을 시작할 때는 무리가 되더라도 A코스를 기어코 고집했지만 산행한지 10여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그날 몸 상태와 체력에 맞게 코스를 선택한다.

첨찰산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회원들.

산행 지 입구에 있는 조선후기 남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이 살면서 그림을 그렸던 운림산방을 둘러본후 조금 가자, 왼쪽에 진도아리랑비가 있다. 남도의 대표적인 민요인 아리랑. ‘아리아리랑 서리 서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비에 있는 노랫말만 봐도 절로 흥얼거려진다.

아리랑 비를 지나 천연기념물 제 107호로 지정되어 있는 첨찰산 상록수림으로 본격적으로 접어든다. 그리 가파르지 않아 산행하기에 딱 좋다.

친구들보다 뒤늦게 피어난 게 수줍은 듯 동백 잎 사이에 얼굴을 숨기고 방긋 웃고 있는 한 두 송이의 동백꽃이 오히려 여운을 주면서 우리를 반긴다.

동박새가 짝을 찾는 듯 지저귀고, 하늘을 완전히 덮고 터널을 이루고 있는 동백숲길이 태고 적 원시림을 연상케 한다. 첨찰산에는 섬 산행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하나의 풍경이 있다. 바로 계곡이다. 조그마한 폭포가 어우러진 풍경이 꼭 누군가 집안에 정원을 만들어 놓은 듯 하고, 심산유곡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수줍은 듯 고운 자태를 드러낸 동백 숲길 등산로.

B코스를 선택한 13명의 회원들은 유유자적이다. 본격적으로 산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 “쉬었다 갑시다”라고 한다. 다른 때와 달리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오이로 갈증을 해소하자 박기상부회장께서 따뜻한 복어 지느러미 술 한 잔을 건넨다. 처음에는 사양을 하다 딱 한 잔 하고나니 몸이 다소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평소 야생화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 산에는 또 어떤 야생화가 나를 반겨줄까 하는 기대감에 마음이 설렌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신비스런 연한 하늘색과 연보라 빛을 띠고 있는 현호색, 보라색과 하얀색의 제비꽃이 동백 숲 밑에 열지어서서 손을 흔들어 반겨준다.

“오늘처럼 행복한 산행은 처음이다. 산행 거리도 적당하고 시간도 넉넉하니 가다가 힘들면 쉬고, 발아래 예쁘게 피어있는 온갖 야생화와 눈도 맞추고, 고개 들어 동백 숲 사이로 하늘을 보니 여기가 곧 낙원인 것 같다.”고 회원 중 한 분이 말씀하신다.

진도기상대와 정상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길에 이르자 때 늦게 꽃을 피우고 있는 매화 한그루가 하얀 미소를 머금고 반겨준다.

산행길에 눈이 마주친 야생화들. 봄은 그렇게 우리곁으로 살며시 다가왔다.

먼저 도착한 일행 몇 분은 벌써 자리를 깔고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고, 이영길 회장님 부부는 해풍 맞은 쑥을 정성스레 캐고 있다.

친구와 함께 A코스 회원들 마중도 갈 겸 기상대를 가보기로 했다. 일층 홍보관을 잠시 둘러보고 전망대로 향했다. 아름다운 다도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더니 참 우리나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등산을 할 때마다 든다.

흔히 남한에는 천연자원이 없다고 하는데 산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천연자원이 아닐까?

드디어 즐거운 점심시간이다. 정상 밑 헬기장에 회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싸온 도시락을 꺼내들고 식사를 한다.

온갖 봄나물에 밑반찬이 한 가득이다. 여느 진수성찬 부럽지 않다.

후식으로 가져 온 딸기와 포도를 보자 얼마 전 TV에서 본 거꾸로 식사법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장면이 생각났다. 장난삼아 나무젓가락에 포도와 딸기를 꿰어 과일꼬치를 만들어 “과일 꼬치 사세요. 한 개에 단 돈 천원”했더니 회원들은 박장대소를 하고, 조학행 명예교수님께서 선뜻 천원을 주신다. 이 복돈으로 로또복권을 사서 당첨되면 절반을 키우리에 기부하겠다고 말했더니 다들 웃는다.

헬기장에서 정상까지는 약 200여m 남짓. 식사 후라 그런지 다소 버겁다. 첨찰산을 봉화산이라 불렀다는 반증이나 하 듯 정상에 자연석으로 만든 봉화대가 있다. 정상에서 둘러보는 다도해의 풍경이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느낌이다.

이제 하산 길이다. 처음에는 다소 가파르지만 이내 완만한 동백 숲길이 이어진다.

계곡 물소리, 새소리를 벗 삼아 회원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자 어느 새 쌍계사가 보인다. 입구에 있는 꽤 넓은 유채꽃 밭에서 다들 사진 찍기에 바쁘다.

간재미회에 하산주 한 잔으로 행복했던 산행을 마무리하고 광주로 향했다. 지금은 동백꽃이 거의 졌지만 내년 동백꽃이 활짝 폈을 때 다시 한 번 꼭 오고 싶다.

오주섭 광주역장례식장(주) 대표이사

/글=오주섭 (광주역장례식장 대표이사

/사진=이광호 (광주매일신문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