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서, 신의 권리인가 인간의 몫인가 해와인문기획 시네필로 최송아·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
| 2014년 04월 23일(수) 1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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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것처럼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저주받은 운명을 한탄하며 두 눈을 찌르고 왕위에서 물러난다. 그 후 두 아들이 번갈아서 테베를 통치하는데, 형 에테오클레스는 권력을 독점하고자 동생 폴뤼네이케스를 나라 밖으로 추방한다. 이에 반발해 동생은 반역을 일으키는데, 전투에서 두 형제는 모두 전사하고 만다. 그로 인해 왕이 된 크레온은 폴뤼네이케스의 시체를 벌판에 버려두고 수습하는 자에게 엄벌에 처하겠다고 선포한다. 하지만 폴뤼네이케스의 여동생 안티고네는 오빠의 장례를 치르고 사형 당한다.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명령이 ‘인간의 법’에 불과하다면 가족의 장례를 치르는 것은 ‘하늘의 법’에 속하는 것이므로, 그에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았다. 크레온에게 폴뤼네이케스는 국가 전복을 꾀한 반란자였지만, 안티고네에게는 역적이기 전에 피를 나눈 가족이었다. 이처럼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 인륜을 대표하는 크레온과 천륜을 대변하는 ‘안티고네’는 날카롭게 대립한다. 안티고네는 인간사의 비극이 하늘의 운명과 인간 의지 사이의 갈등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밀양’은 안티고네의 비극을 뒤집어 보여준다. 신애는 남편이 사고로 죽자 어린 아들과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내려간다. 낯선 생활에 익숙해질 때쯤 아들이 유괴되고 시체로 발견된다. 신애는 살을 깎는 아픔을 종교에 의지하며 견뎌낸다. 그렇게 아들의 죽음도 신의 섭리로 받아들일 만큼 담담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신애는 운전을 하다 살인자의 딸이 동네 양아치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신경이 쓰였던 그녀는 운전에 집중하지 못하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을 칠 뻔 한다. “사람 죽여 놓고 미안하다고 말만하면 다입니까?” 사람들은 그녀의 사과를 외면한다. 순간이지만 신애는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다. 역전된 관점은 새로운 것을 깨닫게 한다. ‘살인자는 나의 가정을 파탄 냈지만 그만큼 그의 가정도 파경에 이르렀다, 죄와 벌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용서뿐이다.’ 신애는 교도소로 살인자를 찾아가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신의 말씀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신애의 결심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살인자는 이미 신의 사랑을 체험했고, 신으로부터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한다. 피해자로서 가질 수 있는 단 하나의 권리인 ‘용서’를 신이 박탈한 것이다. 신애는 자신의 결심을 우습게 만들어버린 ‘하늘의 법’을 이해할 수 없다. 그녀는 다시 한 번 깊은 절망에 빠진다.
신(神)을 사랑하는(愛) 신애(神愛)는 신을 놓을 수 없다. 햇빛 한 조각에도 서려있는 신의 눈길 앞에 기꺼이 자신을 노출하며 신의 사랑을 전파하던 그녀였다. 그러나 이제 ‘비밀스런(密) 햇빛(陽)’은 빠져나갈 길 없는 촘촘한 그물망인 것만 같다. 신애는 신의 눈빛에 맞서서 신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신애는 ‘훔치지 말라’, ‘신을 모욕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신의 계율을 의도적으로 위반한다. 바타유(G. Bataille)의 말처럼 우리의 의식은 위반을 위해 금기를 지속시키는 것일까? 신애가 여전히 신의 존재와 규범을 인정하는 것은 그것을 위반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급기야 신애는 에덴의 이브처럼 사과를 깎아 먹고 그 칼로 손목을 긋는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율을 위반한 것이다. 자살은 미수로 그쳤고 그녀는 정신병원으로 실려 간다.
신과 인간, 천륜과 인륜, 이상과 현실, 운명과 의지, 이들의 모순에서 삶의 비극은 계속된다. 안티고네는 천륜을 따른다. 신애는 어떤가? 그녀는 퇴원하는 날 미용실에 간다. 그런데 그녀의 머리를 자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살인자의 딸이다. 화가 난 신애는 미용실을 뛰쳐나와 집으로 가서 수도승처럼 제 머리를 자른다. 속세의 번뇌는 누가 대신 없애줄 수 없다. 설령 신이라도 마찬가지다. 비극을 극복하는 길은 용서에 있으며 그것은 온전히 자기의 몫이다. /최송아·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최송아·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