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줄 세우기’가 새 정치인가 박상원 부국장 겸 정치부장

2014년 04월 28일(월) 19:24

온 국민이 세월호 침몰 참사로 트라우마에 빠졌다. 지금도 여전히 패닉상태는 지속되고 있다. 안전불감증의 어처구니 없는 사고와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 구멍 난 국가 재난구조체계는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켜주지 못한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사고 발생은 그렇다 치고 현장에서 재난구조매뉴얼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국가 구조체계의 후진성은 거슬러 올라가면 정치의 후진성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의 후진성은 정치인들의 반복되는 약속 파기와 기득권 지키기, 말로는 개혁하면서도 생색내고 자기 이익을 지키는 데는 염치 불문하는 후안무치한 그들의 행태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민주화의 성지라고 불리는 광주에서 보여준 일부 국회의원들의 행태와 새정치연합 광주시당의 모습은 민심을 우습게 여기는 일당 독점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는 공정성이 최우선 가치이다. 이 가치가 무너지면 그 어느 것도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모든 국민이 슬픔에 잠긴 지난 24일 새정치연합 광주시당에선 몸싸움에 고성이 난무하고 경찰까지 동원되는 볼썽사나운 광경이 연출됐다. 이날 몸싸움은 지난 13일 특정후보를 지지한 강기정, 임내현, 장병완 국회의원이 공천관리위원회의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진입을 막은 당원들은 ‘특정후보를 지지한 만큼 공천관리위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공정성을 의심받는 이들이 경선 심판 자격을 갖는데 대해 불신이 폭발한 것이다.

문제의 원인 제공은 지난 13일 이들 국회의원들의 특정 후보 지지에서 비롯됐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에 집중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이 기초공천 폐지 철회를 지난 10일 선언하자 3일후 광주지역 김동철·강기정·장병완·박혜자·임내현 국회의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회견을 열어 집단으로 특정후보 공개지지를 선언했다. 경선 룰도 정하기 전에 줄 세우기에 앞장선 셈이다. 이는 역대 어느 지방선거에서도 볼 수 없는 초유의 일이고 중대사건이다.

이들 5인의 국회의원들은 그 명분으로 새 정치를 내세웠다. “새정치를 위해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선거에서는 이길 후보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치 있는 후보에게 지지를 던질 때가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시점이 문제다.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작심하고 무리를 지어 특정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한 행동이다. 이런 정치적 담합의 행태는 그들의 위치를 감안할 때 지역민에게 사실상 지지를 강요하는 참정권 제한 행위다. 이는 그들이 내세운 새 정치에도 반하는 행태이다.

광주지역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공천은 당선으로 통한다. 암울한 시절 일당 독점 구도에서 지역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어떤 결정을 내리면 지역민은 대부분 거수기에 지나지 않았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그동안의 관행을 그들은 여전히 믿고 있는 듯하다. 이들 국회의원들이 앞장서 특정후보 지지에 나선 이유는 뭘까. 선출직 공직자의 최대 관심은 다음선거에서의 당선이다. 이들은 2년 후 총선을 위해 공천이라는 보증수표를 미리 받아놓을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더욱이 특정후보 공개지지를 선언한 5명의 국회의원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이 지방선거 경선에 나선 예비후보들의 심사를 맡는 광주시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에 위원으로 참여해 심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더해 이들의 측근인 보좌관과 비서관들을 광역·기초의원 후보 심사를 하는 실사단에 참여시켜 실사를 했다는 사실이다. 이들 보좌관과 비서관들이 국회의원들의 지시에 의해 자기사람 밀어주기 등 공정성를 해치는 행위를 했을 가능성은 미뤄 짐작하고도 남는다.

당초 기초선거 무공천은 국회의원들의 공천에 따른 부작용이 너무 심각해 기득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지난해 대선 후보들이 국민 앞에 공약했던 사항이다. 이는 정당공천제가 사실상 중앙정치 실력자와 국회의원들의 자기사람 심기로 전락하고, 공천 장사가 횡행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부터 타락하게 한 것이 국민들의 공분을 산 때문이다. 이 같은 폐해를 없애기 위해 기초공천 폐지를 내세웠는데 결국 여야 모두 없던 일로 약속을 저버렸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이 자숙하며 그 취지라도 살려 공정하게 개혁공천을 실현해야 한다.

개혁공천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경쟁력 있는 후보를 선정하는 것이 생명이다. 광주지역 국회의원들의 개혁공천의 진정성은 개혁적인 공심위 구성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었다. 중앙당 지도부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야권 신당의 텃밭인 광주에서 모범적인 경선이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까지 경선 룰도 정하지 않고 미적미적하고 있다. 자기사람 심기를 위한 전략적인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시민에게 선택권을 빼앗는 공천은 새 정치가 아니다. 줄 세우기 공천은 구태정치의 전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