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은 감기처럼 질병일 뿐이에요” 문/화/난/장 이 현 아동문학가

2014년 05월 01일(목) 19:37

“나가세요, 빨리 나가세요!”“나가요, 나가! 안 팔아요! 나가라니까요, 빨리!”

오래 전, 나를 찾아 어렵게 달려온 손님들을 멋지게 대접하려 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음식 점 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바쁘게 주인들이 소리소리 지르며 야단을 치니 들어 설 수도 없었다. 괜찮다고, 이젠 다 나아 전염성도 없다고, 합병증으로 인해 얼굴이 조금 변한 것뿐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마스크와 모자와 머플러 등을 이용해 얼굴을 가리고서야 겨우, 어두컴컴한 구석자리에 몰래몰래 자리 할 수 있었다. 영화관에 들어 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최대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채 재빨리 입구를 통과해야 했다. 마음 같아 선 근사한 곳에서 음악을 들으며 차도 마시고, 시내 구경도 시켜주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서둘러 녹동 행 버스에 태워 보내며 마음만 아팠다.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위치한 국립 소록도 병원.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섬의 모양이 작은 사슴을 닮았다 해서 명명된 작은 사슴 섬, 소록도는 나의 첫 번째 직장이었다.

간호학을 공부하면서도 마음은 늘 딴 짓을 하며 지내던 어느 날,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 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간호의…….” 촛불을 밝히고 나이팅게일 선서문을 낭송하는데 목안이 울컥, 가슴이 뜨거워졌다. 어렸을 때는 물론, 대학에서 간호학을 공부하면서도 한 번도 꿈꿔보지 않았던 간호사의 길. 타의였던지, 자의였던지를 떠나 이미 시작된 간호사의 길이니만큼 한 번은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소록도였다. 남들이 조금은 꺼리는 곳, 소록도에서의 생활을 견딜 수 있으면 간호사가 되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소록도에서의 생활은 뜻밖이었다.

‘비록 이 몸이 죽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전쟁터에서 부상병들을 간호하며 외쳤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처럼은 아니더라도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마음을 다해 봉사하며 헌신해야겠다는 각오가 부끄러웠다. 가족들과 지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큰 맘 먹고 결정한 소록도행에 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너무 작았다. 아주 작은 일에도 감사에 감사를 더하며 살아가는 그 분들의 삶을 통해 내가 하는 것보다 몇 십 배나 더 많은 것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나 또한 엄청난 편견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한센병 또한 누구나 걸릴 수 있는 하나의 질병이기에 말이다. 나균의 감염으로 인한 만성피부질환으로 유전이 되는 것도 아니고 불치의 병도 아니며 어느 질병과 마찬가지로 조기 치료만 잘하면 합병증도 남지 않는 하나의 질병일 뿐이기에 소록도 행을 앞두고 큰맘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 놓고는 소록도에서 찾아온 손님들을 대접하는 내내 화가 났다.

한센병으로 인해 조금씩 변화된 얼굴색과 얼굴 모양에 눈썹이 빠진 손님들과 함께 길거리를 걷는 동안에 자꾸만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화가 났고, 음식점에서 쫓겨날 때도 화가 났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으로 달아나는 사람들을 향해 한센병도 하나의 질병일 뿐이라고, 감기에 걸려 콧물을 흘리는 거랑 똑 같은 거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싶었다.



지금처럼. 나를 찾아 어렵게 달려온 손님들을 서둘러 녹동 행 버스에 태워 보냈던 그날처럼,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으면서 바락바락 화만 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