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과 노예를 넘어서 해와인문기획 시네필로 ‘마스터’와 초자아 최송아 (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
| 2014년 05월 07일(수) 1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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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도는 사라졌지만 삶은 여전히 노예적이다. 삶의 주인이 되라고 가르치는 이들조차 노예처럼 사는 경우가 태반이다. 더구나 지젝(S. Sizek)이 지적했듯이 현대의 초자아는 ‘참아라!’고 다그치기보다 ‘즐겨라!’고 부추긴다. 내면을 파고드는 초자아의 달콤한 속삭임에 무릎 꿇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 ‘마스터’는 2차 세계대전의 승리와 함께 군수산업으로 경제 호황을 누리는 미국사회의 심리적 외상을 찾아 내시경을 삽입한다. 정신과 의사의 내시경은 백화점에서 란제리와 모피를 고르는 사람들 틈에서 곧 터질 것 같은 종양을 찾아낸다. 참전용사지만 정신 외상에 시달리는 주인공 프레디. 그는 모래로 만든 여성상으로 성욕을 채울 만큼 성도착증에 빠져있다. 게다가 신나, 약품, 세제를 뒤섞어 자신이 주조한 술에 중독된 환자다.
어느 날 사람을 죽였다는 의심을 받고 도망치던 프레디는 한 유람선에 숨어들고, ‘코즈(Cause)’라는 종교 단체의 마스터 랭커스터를 만난다. ‘코즈’의 일원이 된 프레디는 랭커스터의 지도에 따라 자아를 찾아가는 상담을 받는다. 상담과정에서 프레디는 자신을 괴롭히는 기억들과 대면한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고, 어머니는 정신병으로 병원에 감금됐으며, 고모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기도 했던 프레디는 전쟁에 참가하느라 사랑하는 여자와 이별했다.
프레디에겐 전쟁의 상처보다 그 상처를 어루만져줄 가족과 사랑의 부재가 고통의 뿌리다. 전쟁이 끝나고 잠깐 사진사 일을 하지만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며 결핍감이 커진 그는 난동을 부리다 쫓겨난다. 다시 농장에서 일을 하며 만난 노인에게 자기가 만든 술을 대접하고 아버지처럼 대하지만 그조차 죽고 만다. 프레디에겐 마음속 아버지인 초자아가 없다. 그가 동물적 쾌락만을 쫓는 이유다. 그 때문에 그는 사회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계속 추방된다. 프레디는 이제 ‘코즈’를 가족으로, 랭커스터를 초자아의 대리인 아버지로 삼는다.
‘코즈’는 신을 부정하고 과학으로 참된 자아를 찾으려는 종교다. 그들은 동물적 본능을 제어하는 훈련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성취하고자 한다. 랭커스터의 카리스마에 현혹된 신봉자는 늘어나지만 정작 가족을 포함한 핵심 신도들은 ‘코즈’의 교리가 허술하다는 것을 알고 딴죽을 건다. 더구나 랭커스터 자신도 누군가의 초자아의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나 속된 인사다. 그는 “인간은 짐승이 아니며 감정에 지배받지 않는다”고 설교하지만 여신도들의 나체를 상상하는가 하면 수음에 빠져있기도 하다.
랭커스터는 문화적 기억과 규범을 나르는 엄격한 초자아의 겉모습을 보이지만 속으론 잃어버린 동물성에 대한 갈망을 품은 지배자다. 때로 짐승처럼 구는 프레디를 곁에 두는 것도 상실한 야만성을 회복하려는 의지인 셈이다. 어쩌면 랭커스터는 우리 모두의 모습일지 모른다. 도저히 길들일 수 없다며 프레디를 내치려는 랭커스터의 가족들도 자신들이 숨기고 있는 야만성이 들통 나는 것을 두려워한 것은 아닐까?
‘마스터’의 포스터는 데칼코마니 형상을 띄고 있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를 나타내는 바다의 수평선 위에서 랭커스터와 그의 부인 페기, 그리고 프레디가 하트인지 닻인지 모를 형상으로 배열된 채 죽음의 스페이드를 품고 있다. 랭커스터와 페기가 이성과 본능으로 분열된 현대인의 초상이라면, 프레디는 두 극단을 하나로 통일한 진정한 마스터 모습을 하고 있다. 초자아라는 이름을 가진 진짜 주인은 과학적 이성의 통솔자 랭커스터가 아니라 그의 속내에 감춰진 야만성 프레디인 것이다. ‘코즈’를 떠나는 프레디에게 랭커스터가 속삭인다. “마스터를 두지 않고 사는 방법을 발견하거든 말해주게. 역사상 최초의 인물이니까” 이제 새로운 마스터를 찾아갈지, 스스로 마스터가 될지, 아니면 마스터 없는 삶을 살지는 프레디가, 그리고 우리가 선택할 문제다.
/최송아 (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최송아 (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