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 자식을 무겁게 업고 사는 여성 문/화/난/장 |
| 2014년 05월 29일(목) 1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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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빨리 밥 줘.” 피곳 씨는 아침마다 외쳤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중요한 회사로 휑하니 가 버렸습니다. “엄마, 빨리 밥 줘요.” 사이먼과 패트릭도 외쳤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중요한 학교로 휑하니 가버렸습니다. 피곳 씨와 아이들이 떠나고 나면, 피곳 부인은 설거지를 모두 하고, 침대를 모두 정리하고, 바닥을 모두 청소하고, 그러고 나서 일을 하러 갔습니다.
전 세계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앤서니 브라운 작가의 그림책들은 독특하고 뛰어난 작품들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소 무거운 주제와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한 초현실주의적인 기법으로 재미있게 표현해내고 있다.
아주 중요한 회사에 다니는 피곳씨와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니는 사이먼과 패트릭이 등장하는 ‘돼지책’도 마찬가지다. 가족의 의미와 가족이라는 명칭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엄마들의 가사노동에 대한 문제점들을 과하지 않으면서도 통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제목부터 눈길이 가는 ‘돼지책’은 돼지가 아니라 사람이 주인공이다.
멋진 집에 살며, 멋진 정원에 멋진 차고 안에는 멋진 차도 있는 피곳 씨네 가족이야기다. 책의 표지 그림도 흥미롭다.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자신보다 덩치가 큰 남편과 아이들까지, 남자 셋을 한꺼번에 업고 있는데 그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엄마의 등에 업혀 해 맑게 웃고 있는 남자들에 반해 엄마의 지쳐있는 무표정에서 우리네 엄마들의 버거운 삶의 무게를 엿볼 수 있다. 피곳 씨네 아침 식사 모습도 마찬가지다. “여보 빨리 밥 줘!, 엄마 빨리 밥 줘요!” 입만 벌려 요구하는 아이들과 식탁에 앉아서도 신문을 보느라 얼굴도 보이지 않는 피곳 씨의 모습에서도 우리네 삶을 통째로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난다.
얼마 전, “내가 생각하는 가족, 가족들이 생각하는 나.”라는 주제로 진행한 그림책 수업시간. ‘돼지책’를 활용한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엄마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만 소리쳐 요구하는 모습이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말 한마디 없이 소파에 축 늘어져 텔레비전만 보고 있는 그림책 속 남편과 아이들의 모습에 쌓인 앙금을 털어내듯 열변을 토했다.
“너희들은 돼지야!”라는 쪽지 한 장만 달랑 남기고 집을 나가버린 그림책 속 엄마를 향해서도 응원을 보냈다. 하지만, 엄마가 사라져버린 피곳 씨의 집이 어느 새 더러운 옷과 쓰레기들이 가득한 돼지우리가 되어가고, 남편과 아이들의 얼굴도 돼지로 변해버린 모습에서는 말들을 잃었다. 며칠 뒤 엄마가 돌아오고, 가족 모두가 함께 설거지를 하고 다림질을 하고 침대를 정리하며 모두가 함박 웃는 모습에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엄마가 꼭 가출을 했어야 했을까요?”어느 새 남편과 아이들의 편에 서서 반문을 했다. 물론, 남편이 요리에 빨래에 다림질까지 모두다 뚝딱! 해결해준다는 엄마들도 있었지만.
다사다난 했던 가족의 달 오월도 며칠 남지 않은 지금, 가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서로가 바쁘다는 핑계로 한 상에 둘러 앉아 밥 한 번 먹기도 힘이 드는 만큼,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남이 되어가는 있다는 가족. 깨끗이 빨래 된 옷이 필요하고, 음식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 할 때만 찾는다는 엄마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오월이 가기 전에,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남편과 아이들, 아내와 엄마들이 되길 소원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힘의 원천이 되는 아주아주 중요한 가족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