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전략공천, 광주시민은 졸(卒)인가 박상원 부국장·정치부장

2014년 07월 14일(월) 20:47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지난 6·4 지방선거 광주시장을 전략공천한데 이어 또다시 광주 광산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전략공천했다. 일당 독점구도의 정치지형에서 공천은 곧바로 당선인 곳에서, 특정인을 배제하기 위한 의혹까지 사면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당초 지지 우세지역에 발표됐던 경선 원칙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시민의 민주적 선택권은 박탈됐다. 후보등록에 면접까지 치르고 나서 ‘없던 일로’ 무시하고, 원칙과 기준이 없는 두 공동대표의 입맛에 맞는 낙하산 공천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선거 때만 되면 새정치(구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지지를 호소하던 행태를 생각하면, 이처럼 시민의 선택권을 송두리째 박탈하는 것은 광주시민을 졸(卒)로 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후안무치한 행동이다. 지난 광주시장선거에서도 사전에 시민과 교감을 가지지 못한데 대해 사과했는데 또다시 했다는 것은 새정치의 오만함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전략공천은 말 그대로 전략적인 선택이 돼야 하는데 그 전략은 무엇인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광주는 텃밭이니까 마음대로 해도 선택지가 없으니 동조할 것이다’는 그런 오만함에 지금 광주시민은 분개하고 있다.

공천 받은 권 후보는 지난 10일 광주에서 가진 출마 기자회견에서 “진실은 반드시 진실로써 보상받아야 하는 것이고, 그 길이 정의의 길이라는 저의 뜻을 분명히 행동으로 보여드리겠다. 진정성은 진실에 의해 담보될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진정성은 경찰을 지난달 30일 사직하면서 밝혔던 재보선 불출마 입장을 불과 9일 만에 번복하고, 공천이 당선인 지역에서의 전략공천으로 많은 부분을 이미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스스로도 충분히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정략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국회에 입성할 경우 특정인의 소방수 역할에 머무는 일회용 카드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여당에서 ‘보은 공천’이라며 정치 쟁점화 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단서도 되고 있다.

또 다른 진성성 확보의 아쉬움은 권 후보가 국정원 댓글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광주가 아닌 중앙에서 국민의 선택과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줬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국정원 대선개입의 수사 방해를 폭로한 순수성의 가치가 희석되고 있다. 경찰의 딸로 불리어야 하는데 광주의 딸로 국한됨으로써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왜곡하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현재 관련 소송에 대한 1, 2심의 무죄에 이어 대법원의 판단만 남아있는 점도 진정성의 의미를 퇴색 시키고 있다. 전략공천에 의해 국민의 대표가 되면 그 순수성이 그만큼 의심받게 된다. 새정치 내부에서도 ‘진실을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대법원 상고심에 만전을 기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권 전 과장의 공천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은 그가 국회의원에 합당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경찰 조직을 떠난 직후 곧바로 정치권에 뛰어든 시점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도 ‘임명직 국회의원’이나 다름없는 광주지역 전략공천이다. 정치란 혼자 진리 탐구를 하는 영역이 아니다. 때론 나 자신의 믿음보다 다른 사람의 인식과 상황을 살펴야 한다. 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진정성은 나 자신의 믿음을 넘어 다른 사람이 판단하는 것이다. 국정원 댓글사건 폭로의 순수성이 훼손되면 진실의 진정성도 훼손될 수 있다.

이와 함께 권 전 과장의 전략공천으로 당내 거센 후폭풍이 불고 있다. 전략공천의 부정적 여론이 수도권 등 다른 지역 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세월호 참사와 총리 참사 등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따른 민심 이반을 전략공천의 잡음으로 좋은 기회를 날려버리고 있다. 원칙도 기준도 없는 제멋대로 공천으로 국민들 앞에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고, 수도권에서는 야당 후보 난립으로 이기기 쉽지 않은 판으로 변했다. 개혁공천에 개혁은 없고 전략공천에 전략이 없다. 이번 광주지역 전략공천의 명분은 무엇인가. 지금 광주민심은 무기력에 빠진 호남정치의 회복을 주문하고 있다. 호남정치 회복은 새정치가 내세우는 정권교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수권정당이라면 정치개혁을 선도할 수 있는 인물을 내세웠어야 한다. 특정인물을 위해 공천기준과 방식을 달리하는 것은 새정치가 아니다.

정당의 공천은 당선되기 위한, 선거에 승리하기 위한 원칙도 중요하지만 민주적 절차와 지역민심의 반영도 핵심 원칙이다. 새정치가 일당 독점인 광주지역은 당선되기 위한 원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적용하지 않는 게 이치에 맞다. 지역주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고 나아가 호남 정치력 회복, 대한민국 정치개혁을 주도할 인물 공천이 원칙이 되어야 한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공천은 끝났다. 정치는 현실이다. 아쉽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누구를 위한 전략공천이었는지 지역민심은 곱씹어 볼 것이다. 아무튼 권 후보가 당선되면 광주의 딸이 아닌 경찰의 딸로, 호남을 넘어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당당하게 활동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