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풍경속 文香의 길을 따라 광주매일신문·광주평화방송·사랑방신문 공동기획 남도 힐링 명소를 찾아서(23)장흥 문학 기행 이경수 기자 kspen@kjdaily.com

2014년 08월 19일(화) 19:49

먼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나간 남편을 위해 호롱불을 켜놓고 그 불빛을 보고 무사귀환을 빌었다하여 이름 지어진 소등섬. 영화 ‘축제’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곳 낙조의 그 장엄한 아름다움은 평생 추억으로 남을 잊지 못할 풍경이다.

여름 휴가철이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다. 아직도 휴가를 떠나지 못했다면, 이번 주말엔 잠시라도 짬을 내어 일상에 지친 심신을 달래보자. 이럴 때 책 한권 들고 천천히 사색하며 돌아볼 수 있는 곳이 없을까. 안성맞춤이 있다. 바로 문림(文林)의 고향, 장흥이다. 이번엔 장흥으로 ‘문학기행’을 떠나보자.

천관산 기슭의 자연숲을 활용해 자연석에 메시지를 음각하고 약력을 동판에 새겨넣은 것으로 50여개의 문학비를 건립하여 조성한 문학전문공원인 장흥의 명소 천관산문학공원.

요 몇 년사이 전남에서 가장 ‘핫’하게 뜬 동네로 장흥을 빼 놓을 수 없다.

서울 광화문에서 봤을 때 정남쪽에 자리한다 하여 정남진(正南津)으로 불리는 장흥은 전국최고의 전통시장으로 자리잡은 토요시장을 비롯 요즘 힐링명소로 각광받는 우드랜드 등 관광자원이 사랑받으면서 여행자들의 발길이 미어터지고 있다.

이들로 인해 전국 최고의 관광지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이 곳은 또한 전국에서 빠지지 않은 문림의 고장이다. 현대만 하더라도, 한국문학의 거장 이청준을 비롯해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 등 문인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덕분에 장흥군은 지난 2008년에 국내 최초로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장흥군 회진면 진목마을의 이청준 생가. 그곳에는 작가가 생전에 사용했던 필기구, 작품들과 지내온 사진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작가의 작품 ‘눈길’에서 집을 판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묘사될 정도로 생가에 대한 애틋함이 그의 소설속에서 잘 나타나 있다.

장흥 문학기행의 첫 발걸음은 장흥이 자랑하는 천관산 기슭에 위치한 천관산문학관이다.

이곳에서는 기봉 백광홍(1522-1556)을 비롯, 한국 문학사에 획을 그은 작가들을 시공을 초월해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는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인물이다.

천관문학관에서는 백광홍을 선두로 지금 장흥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을 총 망라해 놓았다. 현재 장흥 출신으로 문단에 등단한 작가는 100여명에 이른다. 문림(文林)이 결코 허언이 아니다.



문학관에서 장흥 문학의 과거와 현주소를 확인했다면, 이제 본격적인 문학의 향기를 따라 길을 나서 보자.

첫 목적지는 안양면 율산마을에 자리한 작가 한승원의 집필실 ‘해산토굴(海山土窟)’.

아담한 한옥인 해산토굴은 득량만의 여다지해변이 한눈에 들어오는 마을 뒷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해산토굴에서 종려나무 가로수길을 달려 여다지해변에 닿으면 한승원 시비 30여개가 세워진 한승원문학산책로가 여행자의 발길을 반긴다.

지금도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한승원은 ‘내 소설의 9할은 고향 바닷가 마을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회진면 신상리에서 태어난 한승원은 반농반어인 고향마을과 앞바다를 배경으로 ‘목선’, ‘앞산도 첩첩하고’, ‘그 바다 끓며 넘치며’, ‘불의 딸’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한승원 생가에서 작고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바닷가로 가다보면 작은 언덕이 나온다.

언덕에 올라서면 천관산과 고흥반도가 한눈에 보이고 그 아래로 주민들이 세운 ‘해산 한승원 문학현장비’가 반긴다.

다음은, 이제는 고인이 됐지만, 장흥의 천재문인 이청준을 만나러 가자.

그의 생가는 회진면 진목마을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의 글을 읽은 독자라면 진목마을은 바로 눈앞에 그려질 만큼 익숙하다.

숱한 소설의 무대로 등장한 탓에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마을처럼 느껴진다.

장흥군 안양면 율산마을에 자리한 해산 한승원 작가의 집필공간인 ‘해산토굴’. 근처 여닫이 바닷가 해변에는 600m 산책로에 20m 간격으로 작가의 작품을 기리는 30여개의 시비가 조성된 ‘한승원 문학 산책로’가 있다.

진목마을에서 대덕삼거리까지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단편 ‘눈길’의 무대다. 광주행 버스를 타기 위해 어린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눈 내린 새벽에 걷던 산길로 노모의 사랑을 애써 외면하던 주인공이 뒤늦게 그 사랑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지금도 애잔한 감흥으로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장흥 곳곳은 이청준 소설의 무대이다. ‘선학동 나그네’의 주무대인 회진면 선학동은 학이 날아오르는 듯한 형상의 관음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봄에는 유채꽃이, 가을에는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선학동 중턱에서 보면 물 빠진 회진포구가 드넓게 펼쳐진다.

포구에는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하는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세트장 양철지붕이 시간이 흐르며 녹슬어가고 있다.

용산면 남포마을은 1995년 소설가 이청준과 영화감독 임권택이 ‘축제’라는 제목으로 소설 창작과 영화 촬영을 동시작업으로 진행한 마을이다.

당시의 이장 집을 비롯한 마을 전체가 영화의 배경이 된 곳으로 소박한 포구의 해안선과 고즈넉하게 펼쳐진 득량만의 바다, 그리고 마을 앞바다에 떠있는 소등섬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이청준과 한승원을 만나는 것 만으로도 장흥 문학기행은 뿌듯하다. 장흥 문학기행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났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여정으로 마무리된다. /이경수 기자 kspen@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