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삿갓 빈 배와 같아 비바람 몰아쳐도 근심 없다네” 영월 김삿갓문학길 (외씨버선길 12구간) |
| 2014년 08월 21일(목) 1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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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굴 앞을 지난 남한강은 단양 방향으로 흘러가고, 우리를 태운 버스는 김삿갓면으로 들어선다. 김삿갓면은 하동면으로 불리다가 2009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김삿갓면은 2010년 청정한 자연환경과 우수하게 보존된 문화유적을 바탕으로 느리게 살아가는 주민들의 생활을 높이 평가받아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국제슬로시티로 인증을 받았다.
첩첩산중을 이룬 김삿갓계곡을 따라 한참을 달린 후에야 하늘이 보이고 김삿갓문학관이 등장한다. 삿갓 모양의 지붕을 한 ‘난고 김삿갓문학관’에 들어서니 김삿갓 조각상이 반갑게 맞이한다.
흔히 김삿갓으로 알려져 있는 난고 김병연은 안동김씨 시조인 고려 개국공신 김선평의 후예로, 1809년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인 1811년 홍경래난이 일어났을 당시 선천부사였던 그의 조부 김익순은 홍경래에 투항한 죄로 처형당하고, 부친은 남해로 귀양을 갔다. 김병연은 멸족의 화를 피해 황해도 곡산에서 숨어 살았다.
당대의 권문세가인 그의 집안은 훗날 멸족에서 폐족으로 감형되었으나 세상 사람들의 괄시와 천대가 심하여 가족들은 10승지로 알려진 영월군 김삿갓면 어둔마을에 정착하였다. 김병연은 영월 동헌에서 실시한 백일장에 참가하여 선천 방어사인 조부 김익순을 호되게 비판하는 내용의 시를 지어 장원을 하였다.
그 후 어머니로부터 자신의 집안내력을 듣게 된 김병연은 조상을 욕되게 하였다는 자책감에 빠지게 되어 22세 되던 해 노모와 처자식을 이곳 어둔에 남겨둔 채 방랑의 길을 나섰다. 이때부터 김병연은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하여 삿갓을 쓰고 전국곳곳을 떠돌아다녔다. 그는 방랑시인으로 민중의 한과 설움을 해학적으로 읊었으며, 정형화된 한시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형식의 시세계를 추구하였다.
김삿갓문학관 앞 광장에는 김삿갓 시비와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집을 떠난 이후 세상의 질서에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인으로 살아온 김삿갓의 면모가 조각상과 시비에 그대로 묻어있다.
김삿갓문학관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과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을 가른다. 200m 쯤 내려오니 김삿갓문학공원이 있다. 김삿갓문학공원에도 김삿갓 시비와 김삿갓을 형상화한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김삿갓문학고원 위로 김삿갓 묘지가 있다. 김삿갓은 1863년 54세의 나이로 전남 화순에서 생을 마감하였고, 3년 후 아들 익균이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 지금의 자리로 이장을 하였다. 우리는 김삿갓묘지 앞에 앉아 김삿갓문학공원을 바라보며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살다간 김삿갓의 생애를 음미한다.
정처없이 떠도는 내 삿갓 빈 배와 같아
(浮浮笠等虛舟)
한번 쓰고 난 뒤 사십 평생을 함께하네
(一着平生四十秋)
술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어놓고
(醉來脫掛看花樹)
흥이 나면 손에 들고 누각에 올라 달을 보며 기뻐하네
(興到携登翫月樓)
사람들의 의관은 모두가 겉모습 치장뿐이지만
(俗子衣冠皆外飾)
내 삿갓은 비바람 가득 몰아쳐도 근심이 없다네
(滿天風雨獨無愁)
김삿갓문학길은 김삿갓교를 건너기 전 왼쪽 산길로 들어선다. 푸른 숲과 고요한 물소리를 따라가는 발걸음이 상쾌하다. 계곡은 경사가 급하지 않아 폭포는 없지만 세월이 만들어놓은 깔끔한 바위와 자갈들이 티 없이 맑은 물과 어울려 정갈하다. 계곡가의 가파르지 않는 숲길은 조용히 사색하며 걷기에 그지없이 좋다. 김삿갓의 시적 상상력은 이렇게 청정한 자연환경에서 길러졌을 것이다.
원시성이 물씬 풍기는 숲은 길까지 커다란 넝쿨을 뻗어 내리기도 하고,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자유롭게 자라기도 한다. 김삿갓계곡의 맑은 물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우리는 그 물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묵산미술박물관으로 들어선다. 영월에는 박물관의 고장이라고 할 정도로 박물관이 많다. 동강사진박물관, 단종역사관, 영월곤충박물관, 세계민속악기박물관, 영월종교미술박물관 등 26개에 이르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그것이다.
묵산미술박물관을 지나 우리는 잠시 계곡에서 신발을 벗고 탁족을 한다. 이처럼 아내와 나는 길을 걷다가 마음 닿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쉬었다 가곤 한다. 계곡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답게 다가온다.
그동안의 좁은 골짜기를 벗어나 시야가 트이면서 옥동천이라 불리는 큰 하천을 만난다. 김삿갓계곡은 옥동천에 합류하면서 자기이름도 반납을 한다. 김삿갓계곡을 가로지르는 마지막 다리인 곡동교에서 기암절벽을 이룬 김삿갓계곡의 마지막 모습에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곡동교에서 만난 88번 지방도로는 경상북도 봉화로 이어지고, 또 상동읍을 지나 강원도 태백으로도 연결된다. 오늘 걷기 시작한 후로 처음 논과 마을다운 마을을 만난다. 우리는 옥동천을 아래에 두고 숲길을 걷는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가 나기 전, 주문리나 와석리 사람들이 걸어 다녔던 옛길이다. 산자락은 가파르거나 가끔은 벼랑을 이루고 있지만 길은 산허리를 돌아가게 되어 있어 힘들지 않고 갈 수 있다. 절벽 아래에서는 물놀이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천진난만하게 들려온다.
잠시 산비탈로 올랐다가 내려서니 김삿갓문학길 표지판이 마지막 길안내를 해준다. 김삿갓처럼 소박한 김삿갓면소재지 옥동마을에 도착하니 한적하고 고요하다. 오후에는 단종의 애환이 서린 청령포와 장릉, 관풍헌을 들를 참이다.
여행쪽지
▶김삿갓문학길은 경상북도 청송에서 강원도 영월까지 13개 구간으로 연결된 외씨버선길 열두 번째 구간으로 김삿갓문학관-와석리-김삿갓면사무소까지 12.4km로 4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 만종분기점 → 제천IC → 38번 국도 영월방향 → 영월나들목 → 고씨동굴 → 김삿갓면소재지 → 김삿갓문학관
▶영월버스터미널에서 김삿갓 가는 버스가 06:25, 08:30, 11:30, 14:20, 15:30, 18:40에 있다.
▶김삿갓면소재지(하동)에서 영월읍내로 가는 버스는 하루 14회 있다. 구체적인 시간은 영월교통(033-373-2373)으로 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