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관제(spoils system)를 다시 생각한다 박상원 부국장겸 정치부장

2014년 08월 25일(월) 20:42

민선 6기가 시작된 지 2개월이 가까워 오지만 시민을 바라보고, 시민을 위한 윤장현 시장의 광주시정 운항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조직 개편안이 두 번의 부결 끝에 통과되고, 최근 불거진 비엔날레 20년 특별전 프로젝트 ‘세월오월’ 전시를 놓고 일어난 파행사태, 도시철도 2호선 TF 위원 추가 선임 논란, 산하기관 공기업 임원의 장기 공백 등 시민들을 다소 불안하게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산하기관 공기업 인사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앙정부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자 시절 임명됐던 인사 문제로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지난 18일 윤 시장은 공사·공단, 출자·출연기관 임원들이 참석한 확대간부회의에서 “민선 6기 시정을 함께할 수 있는 인적진용이 맞춰져야 한다. 민선 6기 철학과 비전에 스스로 자신 있게 동참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언급, 민선 5기 때 임명된 임원들의 거취를 스스로 결정할 것을 통보했다. 당선자 시절부터 그동안 몇 차례 임원들의 용퇴를 바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또 이날 일부 산하기관의 비위를 적발한 감사내용이 공개돼 임원들의 거취 문제에 더욱 드라이브를 거는 것 아니냐는 예상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보다 민주주의 역사가 오랜 미국 정치사에 엽관제(spoils system)의 전통이 있고 지금도 시행되고 있다. 일명 정실인사의 개념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와 철학과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이나 선거과정에서 도움을 줬던 인사들을 주요 공직의 대상자로 발탁한 정치제도 중 하나다. 당선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생각을 잘 이해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사람이나, 힘들고 어려운 정치역정에서 동고동락한 정치적 동지를 임명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엄격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승자 독식은 아니라는 점이다.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자리는 물론 그다지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는 자리도 공정한 룰이 적용돼야 한다. 임명과정, 임명기간, 퇴임 후에도 투명성과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청렴성과 도덕성을 갖춰야 함은 기본이다. 그동안 공공기관의 경영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입지나 경력을 다지는 계기로 삼는 경우가 허다했다. 해당분야에 대한 단순한 이해조차 없는 사람이 정치적으로 임명되는 ‘낙하산’이 많았다. 현재 지방공기업법 및 관련 시행령은 각 기관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추천기준으로 전문성을 갖춘 기관장이나 임원이 선임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선진국의 경우 기관별 특성에 따라 임원의 전문역량에 대한 상세한 자격요건 가이드라인을 계량화하고, 기업지배구조와 재무 및 관련 분야의 전문성을 기준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사회는 엽관제와 관련된 정실인사, 관치인사 등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확인한 바 있다. 이른바 ‘관피아’로 관료를 퇴직하고 관련 있는 기업에 들어가 바람막이 역할을 하는 이들이다. 지난해 현황을 보면 현 정부 들어 대형 공기업의 주무부처에서 내려온 ‘관피아’ 비중이 더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공기업 기관장의 52%, 임원의 35%가 관료 출신으로 채워졌고 이중 직속 감독 부처의 ‘낙하산’ 비중은 기관장 80%, 임원 49%로 이명박 정부 시절보다 큰 폭 상승했다. 광주시 산하기관 공기업도 그동안 광주시의 퇴직관료들이 대부분 차지해 왔다. 이제는 우수인재들이 수 십 여년 전문성과 조직의 비전을 공유해 온 조직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공사·공단, 출자·출연기관 임원들의 물갈이 논란은 기본적으로 인사권을 가진 단체장과의 임기 불일치에서 나온다. 표면적으로 임원 물갈이의 원칙은 민선 6기 철학과 비전, 전문성 등이 거론되지만 명쾌한 잣대를 제시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따라 임기 조정이 거론되지만 합리적인 방법은 아닌 듯 하다. 법이나 제도보다는 사회적 합의로 풀어가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더 좋은 방법은 공기업법 부칙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이 임명권을 갖는 산하기관 공사·공단, 출자·출연기관 임원은 단체장의 임기가 끝나면 잔여임기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직에서 물러난다’는 조항을 넣는 게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선거에서 이기면 새 지방정부가 임명할 수 있는 기관장 등의 목록(정무직)을 미리 만들어 놓고 명료하게 인사권을 행하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든다. 공모제나 추천제의 요식절차를 굳이 내세워 피할 수 있는 논란을 반복하는 소모전을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공직자는 대통령이 퇴임하면 함께 물러난다. 임기 말이 되면 직무대행체제로 운영하고 후임자를 지명하지 않는다. 공기업 임원도 임기 말에 정치적으로 충원하는 사례는 없다. 당연히 낙하산 관련 시비도 없다.

선거가 끝나면 당선자의 주변에는 선거과정에서 도움을 줬던 인사들에 대한 논공행상이 벌어진다. 무릇 모든 제도의 가치와 유용성은 그를 운용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모든 공직자를 공정한 게임 룰을 준수하며 선발하는 게 중요하다. 직업윤리마저 망각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을 선발해서는 곤란하다. 언론인도 예외는 아니다. 시민의, 시민의 의한, 시민을 위한 시장은 이전의 잘못된 관행을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시민의 가치와 철학이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