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년의 역사 속에 잠들어 있는 중국 천주의 ‘신라촌’ 문병채 박사의 신 해양실크로드 해양실크로드의 출발점 ‘천주’ <3> kjdaily.com

2014년 10월 02일(목) 19:03

①신라촌 전경 ② 복원된 신라 선박 ③ 신라촌 입구에 세워져 있는 교통표지판, 선하(仙河)가 중국어로 ‘신라’로 발음된다. ④ 신라장수를 숭배하고 있는 가정 ⑤ 당나라시대의 고분.

해양실크로드의 출발점 천주(泉州, 취안저우)는 중국 동남부 대만해협에 위치하고 있는 고대도시다. 광주시와 1천200㎞ 정도 떨어져 있다. 그곳에 1천200여년 전 한반도인이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던 ‘신라촌(新羅村)’이 있다. 그 이전부터 해외무역을 위해 다녔던 한반도 상인들이 정착한 곳이다.
현재 천주(泉州) 남안현(南安縣) 하미진(霞美鎭)에 위치해 있다. 남안현의 서북쪽 8㎞ 쯤 떨어져 있다. 마을 이름이 아직도 ‘신라촌’이다. 천주해외교통사박물관 엽은전(葉恩典) 박사에 의해 그 실체가 알려졌다. 1천200여년전의 과거로 돌아가 보기 위해 시간을 내 신라촌을 다녀왔다.

문병채 (주) 국토정보기술단 단장·전남대 지리교육과 겸임교수

문병채 (주) 국토정보기술단 단장·전남대 지리교육과 겸임교수

전주교통사박물관에서 특별히 소개해 준 가이드를 따라 신라촌으로 갔다. 얼마쯤 가자 개발사업이 한창인 곳에 신라촌 교통표지판이 보였다. 교통표지판을 따라 농로로 들어서니 야트막한 산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조그마한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인근에는 천삼고속도로(泉三高速道路)와 남안고속도로(南安高速道路)가 만나는 장갱IC가 개설돼 있었고, 남안강변로와 성공로가 직통하고 있었다. 고속도로 건설에 힘입어 곳곳에 산업단지조성과 주택개발사업이 진행 중이다. 오늘날에도 교통의 요지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신라촌이 조성된 당나라 시대에도 이 곳은 지리적 요충지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당시 천주의 중심지인 봉주진(丰州鎭)과 가깝고, 진강(晉江)에 바로 인접해 있다.

때문에 진강(晉江) 상류에 있는 남안현, 안계현, 영춘현, 덕화현의 특산물, 도자기, 죽제품 등이 강 수로로 이동할 땐 반드시 신라촌을 거쳐야 했다.

모든 물품이 수로를 통해 운반되었던 과거에 신라촌은 교통의 요지였던 것이다.

마을 골목을 걸었다. 이끼 낀 돌담이 영락없이 우리 것이다. 우리 시골 마을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모습이다. 돌을 쌓는 모양, 황토색 흑벽,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말이다. 창문을 통해 이방인을 바라보는 동네 꼬마들 얼굴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옆에 서 있는 주인 아저씨도 이웃집 아저씨같다. 어쩐지 정겹다.

가장 위쪽 높은 곳에 있는 집의 옥상에 올랐다. 비온 뒤 맑은 하늘에 사방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마을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천주의 옛 시가지인 봉주((丰州)와 구일산이 보인다. 가까이 눈을 돌렸다. 토란이 심어진 둠벙(물웅덩이)과 다랭이 벼논의 전원풍경이 마을 앞에 보인다. 참 정감이 간다. 어렸을 때 고향에서 본 흔한 마을 어귀의 풍경이다.



▶신라인(원주민)은 어디로 갔을까.

현재 신라촌에는 1천800여명 살고 있다. 성씨는 왕씨가 많다. 마을 수입원은 화훼와 야채다.

주민들은 마을발전사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는 않다. 대부분 명나라 초기에 입주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라촌의 원주민들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봉주향토지(丰州志)에 그 답이 숨어있다. 재해가 그것이었다. 1353년 7월 진강 하류지역에 하루 사이에 밀물이 3번이나 밀려들었다. 강물이 거의 모든 농경지를 덮쳤다. 천주와 남안현 지역은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이듬해인 1354년에는 남안지역에 큰 가뭄이 들었다. 다시 큰 흉년이 들었다. 사람들은 너무 배가 고파서 사람까지 잡아먹었을 정도였다. 이어 1371년에는 큰 홍수가 들었다.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이러한 자연재해를 겪는 동안, 많은 원주민은 마을을 벗어났다. 재해로 경제환경, 생활질서 등이 대부분 파괴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는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일부 가정에서 신라장수(新羅將軍)를 숭배하고 있는 것이 조사됐고, ‘신라촌’이라는 마을 명칭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은 그를 설명한다.

지금도 이 마을에는 ‘신라’란 이름을 붙이는 ‘신라초등학교(新羅初等學校)’, ‘신라노인활동센터(新羅老人活動中心)’ 등의 명칭이 있다.



▶ 정신적 안식처였던 ‘신라사’

신라촌 구경을 마치고 신라사(新羅寺)로 향했다. 신라사는 신라인들의 정신적 안식처였던 불교사찰이다. 문헌에 의하면 현(縣)의 서북쪽 이십리쯤에 있는 용광산(龍光山) 밑자락에 신라사가 있었다고 한다(南安縣志 권2 疆域志). 신라사가 자리했던 곳은 울창한 정글로 덮여 있다. 정글 속에 위치한 폐사지, 마치 절 뒷길을 생각하듯 숲길을 걸었다.

건물은 허물어졌지만, 흔적은 시대를 알려주고 있었다. 과거에는 화려했을 공간이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폐허로 변해 있다.

바위 돌이 군데군데 있다. 여기저기 흩어진 돌멩이들이 건물의 파편처럼 뒹굴고 있다. 열대 햇살 아래 검은색으로 변색돼 있다. 마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듯 했다. 절도 사람도 없어진 산골의 고즈넉한 분위가 원지 쓸쓸함이 느껴진다.

신라사에 대한 기록은 여러 문헌에 나오고 있다. 팔민통지(八閔通志)와 남안현지(南安縣志)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용광산 밑자락에 보은원(報恩院)과 신라원(新羅院)이 함께 있었다고 한다. 신라사(新羅寺)는 신라원(新羅院) 혹은 자수선원(資壽禪院)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남송 후기에 가사(柯使)란 사람이 건립했다고 한다. 그리고 원나라 때 불타버렸고, 명나라 홍무(洪武18년) 때 재건했으나, 현재는 폐사된 상황이라고 기록에 남아 있다.

신라사를 건립한 가사(柯使)란 사람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그가 신라인이었을 것이고, 또한 절을 지을 정도로 집안이 넉넉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분명히 신라촌에 상당한 토지자원을 가지고 있었던 지주였을 것이다.

원나라 말기 화재로 모든 자료가 소실된 것이 안타깝다. 건축구조나 문물만이라도 남아있으면 신라인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당나라 때 신라촌과 신라사

당나라 때 중국 해안지역에는 신라인이 사는 마을들이 있었다.
일명 신라촌(新羅村)이나 신라방(新羅坊) 이었다. 일본 옌닌(圓仁)승님의 ‘입당구법순예행기’에 이러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산동대(山東大) 진상승(陳尙勝) 교수가 쓴 ‘중한교류삼천년(中韓交流三千年)’에 따르면 신라촌은 주요 등주(登州) 모평현(牟平縣)과 문등현(文登縣), 내주(萊州) 즉묵현(卽墨縣), 밀주(密州) 제성현(諸城縣), 해주(海州) 동해현(東海縣), 수주(泅州) 연수현(漣水縣) 등에 있었다. 신라방(新羅坊)은 초주(楚州), 양주(揚州) 등지에 있다.
신라촌 사람들은 농업에 종사하였고, 신라방 사람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했다.
또한 청주(靑州), 등주(登州), 치주(淄州) 등에는 불교사찰인 신라원(新羅院)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신라촌과 신라방은 장보고 같은 무역상인의 중요한 기지 역할을 했다.
따라서 천주 남안현에 위치한 신라촌은 산동반도 등에 있었던 신라촌과 다를 바 없다. 같은 기능과 역사를 갖고 있다.


신라의 사신 파견

당나라 말부터 5호16국 시대에 민국(?國, 복건성의 옛 국가)은 신라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민왕창(?王昶)과 민왕희(?王羲) 두 임금이 등극하고 나서, 신라에서 두 번이나 대사(大使)가 파견되고, 민왕에게 보검(寶劍)을 받쳤다는 기록이 있다.
양국 외교 관계가 매우 깊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해상 교통로가 매우 편리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더불어 당나라 때부터 천주에는 신라인들이 많이 왕래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복건(福建)에 생산되는 여지(荔枝, 과일의 일종))가 수출되는 나라로 ‘신라’가 기록에 남아 있기도 하다(北宋시기 1056년과 1058년 때 泉州의 知州 蔡襄은 荔枝譜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