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를 기다리며 김유미의 커튼콜 김유미 (시립무용단 예술감독) kjdaily.com

2014년 10월 23일(목) 19:00

문학에서 말하는 인물의 유형 중에 ‘평면적 인물’과 ‘원형적 인물’이 있다.

평면적 인물이란 작품 전체를 통해 일정한 성격을 유지하는 정적인 인물로, 그의 생각과 행동의 결과는 쉽사리 예측이 가능하다. 반면에 원형적 인물은 한 작품 속에서 그 성격이 예측불가할 정도로 발전하고 변화하는 인물을 말한다. 평면적 인물의 대표로는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의 소설 ‘돈키호테’의 주인공인 돈키호테가 있고, 원형적 인물의 대표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의 주인공 햄릿이 있다.

아버지를 독살하고 어머니와 재혼한 숙부 클로디어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엄청난 고민을 하며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를 읊은 햄릿은 우유부단하면서도 신중한 성격 탓으로 사색적이고 회의적이며 결단과 실행력이 약한 인물이다. 결국 복수의 기회도 미루다 모두가 다 죽게 되는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반대로 중세의 기사 이야기에 매료돼 자신이 기사가 된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어느날 갑자기 낡은 갑옷을 입고 창을 들어 ‘로시난테’라고 이름을 붙인 애마를 타고 ‘산초’라는 어리숙한 하인을 데리고 모험의 세계로 뛰어드는 돈키호테는 자신이 빠져있는 환상을 현실로 착각하고서 좌충우돌 사고만 치고 다니는 문제적 인물로 묘사된다. 이러한 인물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루는 많은 인물들에게서도 그 전형을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가끔 사람들은 “저 사람은 생각이 너무 많은 햄릿형 인간,” “저 사람은 앞 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뛰어드는 돈키호테 형 인간”이라고 주변 사람들을 평가하기도 한다.

‘짝사랑’이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러시아의 소설가 이반 뚜르게네프(Ivan Trugenev)는 돈키호테와 햄릿이라는 두 유형의 인간은 우리 인간의 본성에 내재돼 있는 두 가지의 근본적인 대립적 특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돈키호테가 비록 엉뚱한 결말로 자기 자신뿐 아니라 자기가 돕고자 하는 사람들을 곤경에 처하게 하는 미친 사람으로 취급되고 있지만, 그의 정의는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런 이유로 그는 겁을 모르고 참을성이 많으며 형편없는 음식과 허름한 옷차림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겸허한 마음과 위대한 영혼을 지닌 용감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반면에 햄릿의 경우는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이기주의자이며, 회의론자인 그의 머릿속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문제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결국 햄릿은 과장될 정도로 자신을 힐책하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감시하고 자기 내부를 주시하는 것을 큰 만족으로 여긴다고 주장한다.

뚜르게네프는 돈키호테 형 인물들이 다른 사람들의 박해도, 욕설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들이 던지는 조소조차 잘 감당해 내지만, 언제나 자기 자신만의 일로써 머리가 꽉 차 있는 햄릿 형의 인간은 늘 고립돼 있어서 인류에 대해 아무런 공헌도 할 수 없다고 말하며 그의 말을 마무리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돈키호테에 대한 뚜르게네프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는 동양의 가르침도 있지 않던가.

아무튼, 오는 11월 6일과 7일에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그 ‘돈키호테’가 무대 위에 오른다. 러시아 페름 발레단의 주역들을 초청해 실시하는 이번 ‘돈키호테’의 공연에서 관객들은 작품의 주인공들인 ‘키트리와 바질(Kitri and Basil)’의 사랑 이야기에 무모하게 끼어든 돈키호테의 활약을 웃음과 감동 속에서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김유미 (시립무용단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