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만든 풍경화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 매물도 해품길 (한려해상 바다백리길 5구간) kjdaily.com

2014년 10월 23일(목) 19:00

바다를 붉게 물든 노을. 함박만한 태양이 욕지도 뒤로 슬그머니 숨으면 다시 바다는 고요에 잠긴다.

거제도 저구항을 떠난 배는 푸른 바다를 헤쳐 나간다. 저구항은 점점 멀어지고 장사도와 죽도·추봉도가 가까워진다. 비진도·용초도·한산도 같은 섬들도 파도와 함께 흔들린다. 억겁의 세월을 거쳐 오면서 파도가 정교하게 조각을 해놓은 해변의 기암괴석들은 이미 푸른 바다와 단짝이 됐다. 동쪽으로 바라보이는 거제도 최남단 홍포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들은 베트남 하롱베이의 아름다운 바위섬 군상을 연상케 한다. 가왕도를 지나자 매물도 서쪽에 곧게 솟은 5-6개의 바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선원에게 물어보니 가익도인데, 물때에 따라 다섯 개로 보였다가 여섯 개로도 보여 오륙도라고도 한단다.
당금마을 선착장에 도착하니 미리 예약한 민박집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다. 해변 산자락 경사지에 계단식으로 집을 지은 당금마을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민박집에 짐을 풀어놓고 점심을 해결한 후 해품길 걷기에 나선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멀리 어유도, 가왕도, 소덕도, 죽도, 비진도 등 푸른 바다에 점점이 박힌 보석들이 명품 그대로다.

해품길은 경사진 당금마을 골목을 따라 올라간다. 마을 뒤편에는 폐교가 된 한산초등학교 매물분교가 있다. 매물분교는 매물도 당금마을과 대항마을 아이들이 꿈을 키웠던 학교로 지금은 폐교돼 옛 건물과 아이들이 뛰어놀던 운동장만이 쓸쓸함을 달래고 있다. 매물분교 동쪽 아래로 가파른 길을 내려서면 조그마한 몽돌해수욕장이 있다. 바닷물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고 푸르다. 몽돌해수욕장은 아기자기한 기암괴석들이 감싸고 있어 운치가 있다.

해변의 산비탈을 돌아가는 길은 포근한 흙길이라 걷기에도 편하다. 길을 걷다가 시선을 바다 쪽으로 향하면 기암괴석으로 장식된 해변의 모습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등 뒤로 펼쳐지는 매물도 주변의 작은 섬들이 푸른 바다와 어울린 모습은 어떤 화가도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운 풍경화다.

파고라 형태의 당금마을 전망대에서는 모두가 쉽게 발을 떼지 못한다. 어유도와 가왕도·장사도·소덕도·대덕도·죽도·비진도를 비롯해 한산도와 미륵도까지 담겨진 풍경 앞에서는 우리는 넋을 잃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눈을 살짝 가왕도 동쪽으로 돌리면 거제도의 가라산·망산, 소병대도·대병대도와 주변의 작은 섬들, 그리고 멀리 거제도 해금강까지도 조망이 된다.

당금마을 전경.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능선을 걷다보니 내 마음도 거침이 없어진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명품이다. 바다 명품길이라는 의미로 해품길이라 했다는 사연을 이해할 수 있겠다. 게발처럼 길게 삐져나와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는 지게자리는 천하절경이다. 마치 거북이가 목을 빼고 바다로 기어들어가는 형상이다.

소매물도 남쪽의 홍도가 보이는 홍도전망대에 서니 장군봉(210m)이 눈앞에 뾰족하게 솟아있고, 장군봉 동쪽자락에는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거센 파도에 씻기고 폭풍우를 견딘 뒤라야 저 아름다운 형상이 만들어졌을까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렇듯이 사람도 모진 시련을 극복하면서 성숙한다.

홍도전망대를 출발해 장군봉을 바라보며 걷는다. 걷다보면 동백군락지의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기도 한다. 산줄기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 때는 대항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장군봉에 도착하기 직전, 북쪽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또 다시 감상한다. 우리는 이렇게 조물주가 빚어놓은 형상 앞에서 한없는 행복을 만끽한다.

역광으로 비친 소매물도의 풍경. 신비로운 자태를 뽐낸다.

이런 풍경을 가슴에 담고 장군봉 전망대로 올라선다. 예로부터 매물도는 군마(軍馬)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전해져 왔다. 매물도 최고봉인 장군봉(210m)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장군봉에 올라서니 소매물도와 등대섬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소매물도의 전경이 처음으로 펼쳐진 것이다. 소매물도 뒤에서는 작은 바위섬인 홍도와 대구을비도, 소구을비도가 드넓은 바다에 점처럼 떠 있다. 연화도와 욕지도를 비롯해 주변의 섬들도 아기자기하게 다가온다. 장군봉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소매물도를 바라보며 걷는다. 역광으로 비췬 소매물도의 모습은 신비롭다. 갈수록 소매물도는 점점 가까워져 금방이라도 소매물도에 닿을 것 같다. 동백나무와 소나무가 풀밭과 어울려있어 목장길을 걷는 기분이다. 소매물도를 바라보고 걷다가 길의 방향이 바뀔 때면 가익도와 소지섬이 가슴에 안겨오기도 한다.

곳곳에서 억새가 은빛으로 나부낀다. 푸른 바다와 작은 섬들을 은빛 억새너머로 바라보니 풍경은 더욱 우아해진다. 억새에 비췬 소매물도에서도 가을향기가 물씬 배어나온다. 매물도는 동백꽃 피는 봄철도 좋지만 억새 하늘거리고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가을철이 오히려 매력적이다.

소매물도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등대섬전망대에 선다. 소매물도는 동쪽에 물이 들고 나는 70m 거리의 열목개 자갈길이 열렸다 닫아졌다 하면서 건너편 등대섬을 드나들 수 있다.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등대섬은 형제바위·용바위·촛대바위·부처바위 등 조각전시장 같은 기암괴석이 비경을 이룬다.

산자락으로 난 길을 따라 대항마을로 향한다. 파도소리와 새소리가 화음을 맞춘다. 미치도록 푸른 하늘과 바다가 우리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기존의 대항마을은 돌담과 집터, 빈집만 남아 있고, 지금은 대항포구 근처 새로 지은 깨끗한 펜션 형태의 집들로 옮겨졌다.

당금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도 가익도와 소지도·연화도·욕지도·비진도 같은 섬들이 손짓하고, 어유도는 점점 가까워져 손에 잡힐 듯하다. 당금마을의 주황색 지붕과 기암괴석이 만든 매섬과 어유도, 긴 방파제와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우리는 당금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앉아서 세상 누구도 부러울 것 없는 호사를 누린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함박만한 태양이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면서 욕지도에 걸려 있다. 욕지도 뒤로 숨기 직전 태양은 그 불빛을 소지도와 가억도로 길게 드리운다. 바다를 붉게 적신 저녁노을이 황홀하다. 해는 어느덧 바다 속으로 스며들어가버리고 바다는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하루 일과를 마친 섬은 어느새 고요해진다.



여행쪽지
▶매물도 해품길은 당금마을-매물분교-대항마을 갈림길-장군봉-등대섬전망대-대항마을까지 5.2㎞이지만 대항마을에서 당금마을까지 1㎞ 정도를 연장할 수 있다. 3시간 소요.
▶매물도 가는 배는 통영항(055-645-3717, 1시간 30분 소요)과 거제도 저구항(055-633-0051, 30분 소요)에서 각각 출항한다.
▶매물도에 식당은 없지만 몇 군데 민박집에서 매물도 해상에서 나는 자연산 해초나 생선으로 만든 ‘어부밥상’을 차린다. 어부밥상을 이용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