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죽계구곡길 걸으며 선비가 되다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 소백산 자락길 1자락 (소수서원-삼가주차장) kjdaily.com

2014년 11월 06일(목) 18:49

소수서원 담 밖 죽계천변 경렴정(景濂亭) 앞 정문을 통해 들어가면 강학당이 자리하고 있다. 강학당 밖에는 백운동, 실내에는 명종의 친필인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충청북도와 경상북도를 가르고 있는 소백산은 남한의 대표적인 두 강의 물줄기를 양분한다. 소백산 능선 남쪽 희방사계곡·금계천·죽계천에서 흘러내린 물은 내성천으로 모아져 영주·예천 땅을 적시고는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북서쪽의 천동계곡·어의계곡 등 크고 작은 냇물은 남한강으로 흘러들어 충주호에 합류한다.

소백산을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은 환경이 사뭇 다르다. 북쪽의 단양과 제천지역이 충주호와 단양팔경 등으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면, 남쪽의 영주 땅은 예로부터 학문이 발달하고 부석사·소수서원과 같은 품격있는 문화유적을 갖춘 전통 있는 고을로 무게를 더해 준다.

오늘은 소백산의 자연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소백산자락길을 걸으려고 소수서원으로 향한다. 소수서원은 풍기군수 주세붕이 중종 37년(1542) 백운동서원을 창건한데서 비롯됐다. 명종 5년(1550)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나라에 건의, 왕으로부터 소수서원이란 사액을 받았다. 이리하여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 됐다.

퇴계 이황 선생이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노래 소리 같다하여 절경마다 취한대, 금성반석, 백자담, 이화동, 목욕담, 청련동애, 용추비폭, 금당반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죽계구곡(竹溪九曲)이라 불렀다.

소수서원에 들어서자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적송 수백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솔숲길을 따라가자 당간지주(보물 제59호)가 서 있다. 당간지주 오른쪽에 죽계천이 흐른다. 죽계천 건너편에는 서원에서 공부하다 지친 선비들이 잠시 쉬며 휴식하던, 이황이 지은 취한대(翠寒臺)라는 정자가 운치 있게 앉아 있다.

소수서원에 들어서기 전, 서원 담 밖 죽계천변에 경렴정(景濂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경렴정 앞 정문을 통해 들어가니 유생들이 강의를 듣던 강학당(보물 제1403호)이 곧바로 나타난다. 정면 4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을 한 강학당은 밖에는 백운동(白雲洞), 실내에는 명종의 친필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서원 가장 뒤편 영정각(影幀閣)에는 안향선생을 비롯해 다섯 명의 초상이 있었다. 이중 안향선생 초상은 국보 제111호, 주세붕선생의 초상은 보물 제717호로 지정돼 있다. 직방재 옆에 장서를 보관하는 장서각이, 장서각 옆으로는 안향선생의 위패를 모신 문성공묘(文成公廟, 보물 제1402호)가 있다. 서원은 보통 앞쪽에 강학공간을 두고 뒤편에 사당공간을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인데, 이곳은 동학서묘(東學西廟)를 하고 있다.

소수서원에서 죽계천을 건너면 선비촌이다. 영주시 일대 12채의 고택을 원형대로 재현해 아담한 선비촌으로 꾸몄다. 선비촌으로 들어서서 골목길을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ㄷ자형’의 김상진가옥, 1875년에 건축된 경북북부지방의 전형적인 가옥구조인 ‘ㅁ자형’ 기와집인 해우당고택을 둘러보고, 선비촌의 중심공간인 두암고택과 인동장씨 종가에 들어서자 선비가옥의 품격이 느껴진다. 선비촌에는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청빈한 삶을 살았던 선비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초가들도 있다.

선비촌 입구로 나가니 근엄한 ‘영주 선비상’이 세워져 있다. 선비상을 뒤로하고 소백산을 바라보며 걷는다. 순흥향교 이정표가 길안내를 한다.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영귀루(詠歸樓)라는 편액이 붙은 누각이 맞이한다. 순흥향교다. 향교는 누각 아래를 통해 들어가게 돼 있다. 영귀루를 지나면 정면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그 뒤편에 제사공간인 대성전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법이다.

순흥향교를 나오는데, 수백 년 된 느티나무와 노송이 환송을 해준다. 누렇게 익은 벼와 빨간 사과가 풍요롭다. 죽계구곡의 물줄기가 모아진 순흥저수지에는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과 비로봉에서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이 다가온다.

고려 충숙왕 때 이 고장 출신 안축은 이곳 죽계지방의 아름다운 풍경을 죽계별곡(竹溪別曲)으로 노래했다. 배점리로 들어서자 수령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 거목이 마을을 지키고 있고, 그 곁에 배순정려비가 있는 삼괴정이 있다. 삼괴정은 배순을 마을신으로 모시고 제향하는 곳이다.

눈이 시리도록 맑은 계곡물과 울긋불긋 채색된 단풍숲이 가을산행의 참맛을 제대로 느낄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삼괴정을 지나 죽계구곡으로 들어간다. 배점리에서 초암사에 이르는 계곡을 죽계구곡이라 한다. 옛날 퇴계 이황 선생이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노래 소리 같다하여 절경마다 이름을 지어주며 죽계구곡이라 불렀다. 청아하게 흐르는 죽계구곡에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였다. 9곡 이화동, 8곡 관란대, 6곡 목욕담, 5곡 청련동애, 4곡 용추, 3곡 척수대, 2곡 백운대를 거치면서 죽계구곡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동화된다.

초암사가 죽계구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앉아 있다. 대웅전과 대적광전이 요사채와 함께 푸른 소나무 숲에 감싸여 청정한 기운을 전해준다. 소백산 국망봉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초암사는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세우기 위해 초막을 짓고 잠시 머물던 곳에 지은 절이다. 초암사 위쪽에 1곡인 금당반석이 있다. 1곡은 죽계구곡의 대표적인 절경으로 5m 쯤 되는 와폭이 잔잔한 소로 모아지고, 잠시 머물던 물은 수십m에 이르는 깔끔한 반석 위로 흘러간다.

1곡을 지나고 나면 국망봉 가는 길과 달밭골을 통하여 비로사 가는 길이 갈린다. 완만한 숲길에는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초록과 단풍과 낙엽이 공존하는 숲은 조용히 사색하며 걷기에 그지없이 좋다. 바삭바삭 낙엽 밟는 소리가 산속의 고요함을 깨우고, 계류를 흐르는 물소리는 청아하게 들려온다.

달밭재에 올라서니 대금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온다. 달밭재 너머에는 잣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잣나무 숲에서 대금연주를 하고 있는 두 분을 만난다. 숲속에서 연주되는 대금이 그 어떤 공연장에서보다도 깊은 울림을 준다.

비로사 일주문 앞에 도착했다. 일주문을 통과하자 길게 돌계단이 이어진다. 돌계단 중간에 고풍스러운 당간지주가 서 있다. 비로사로 통하는 50m에 이르는 돌계단은 경사지에 자연스럽게 구불구불 올라가게 되어있어 삭막하지 않고 오히려 걷는 재미가 있다.

당우들은 가파른 경사지에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돌계단을 만들고, 산비탈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건물을 앉혀 자연의 일부가 됐다. 절 앞마당에 서면 멀리서 비로봉이 다가온다. 산속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은 비로사는 청정하고 고요하다. 비로사일주문을 나서자 붉은 단풍이 우아하고 화려하게 길안내를 한다. 삼가주차장으로 가는데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들이 작별인사를 한다.


여행쪽지
▶소백산자락길 1자락은 소수서원-순흥향교-죽계구곡-초암사-달밭골-비로사-삼가주차장까지 12.6㎞에 이르고,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 풍기IC → 931번 지방도로 순흥 방면 → 순흥 → 소수서원(풍기IC에서 15분 소요)
▶삼가주차장 근처에는 식당이 없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풍기읍내로 나가면 식당이 많다. 풍기온천 근처의 오마니손두부(054-636-7849)에서는 직접 만든 두부로 요리한 두부전골, 쇠고기두부전골 등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