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된 나무, 세월이 가져다 준 무게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 담양 수목길 (죽녹원-담양리조트) kjdaily.com

2014년 12월 04일(목) 19:25

2003년 5월에 조성된 죽녹원. 2.4㎞에 이르는 산책로에는 운수대통 길·죽마고우 길·철학자의 길 등 8개의 이름을 붙여 놓았다.

저물어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담양으로 길을 떠난다. 죽녹원에 들어서니 잡목 하나 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왕대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대숲은 미로처럼 구불구불 나 있고 햇볕이 스며드는 것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숲길을 걸으며 푸른 대나무가 내뿜는 청신한 기운을 마음껏 들이마신다. 가족단위로, 연인끼리 천천히 대숲길을 걷는 모습이 한없이 정겹다.

2003년 5월에 조성한 죽녹원은 면적이 31만㎡에 달한다. 2.4㎞에 이르는 산책로에는 운수대통 길·죽마고우 길·철학자의 길 등 8개의 이름을 붙여놓았다. 동산을 이루고 있는 대나무숲의 정점에 있는 죽녹원 전망대에 서니 관방제림과 메타세콰이아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죽녹원의 청량한 대숲에 마음을 씻고 나서 본격적으로 수목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죽녹원 앞 도로에서 담양천 위에 놓인 향교교를 건너니 담양읍내다. 향교교를 건너면 오른쪽 제방에 국수거리가 있다.

하늘을 가린 가로수길은 조용히 걷기에 더없이 좋다. 초록에 지쳐 갈색으로 단풍이 든 메타세콰이아 가로수에 햇빛이 비취니 우아한 샹들리에 불빛을 보는 것 같다.

국수가 나오기 전에 멸치국물에 삶은 계란을 까먹다보면 주문한 멸치국물국수나 열무비빔국수가 나온다. 여기에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면 심신의 피로가 확 가신다. 싼 가격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국수는 담양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음식 중 하나다.

국수거리 맞은편으로 관방제림이 길게 이어진다. 입구에 도착하니 관방제림(官防提林)이라 쓰인 커다란 표지석이 길손을 맞이한다. 조선 인조 26년(1648) 해마다 홍수로 많은 가옥이 피해를 당하자 당시 담양부사였던 성이성이 처음으로 둑을 쌓고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철종 5년(1854)에는 담양부사 황종림이 대대적인 제방공사를 벌이고 나무를 심었다. 관방제림(官防堤林)은 관에서 홍수나 바람을 막기 위해 만든 제방 숲이란 뜻이다.

관방제림은 담양천을 따라 무려 6㎞나 되는 긴 숲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2㎞ 정도만 남았다. 과거 700그루였던 가로수도 대폭 줄어 느티나무·푸조나무·팽나무·벚나무 등 약 320여그루만 남았다. 400-500년 수령을 자랑하는 관방제림은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돼있다.

성인 두세 사람이 손을 뻗어야 줄기를 감쌀 수 있을 거목은 신비롭고 숭엄하다. 이런 나무들 사이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히려 왜소해 보일 정도다. 거목을 이룬 가로수길을 걸으며 우리는 묵묵히 자기자리를 지켜온 나무들과 대화를 하고, 숭엄한 기운을 전해주는 세월과도 교감을 한다. 세월의 무게감이 스며있는 나무들과의 대화는 사람과 사람간의 대화로 이어진다. 나란히 걸으며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이토록 잘 가꾸어진 숲은 인간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관방제에서 국도를 건너면 곧바로 메타세콰이아길이다. 나는 메타세콰이아길을 수차례 걸어봤지만 늦가을 단풍이 들었을 때 가장 운치가 있었다. 아름다운 메타세콰이아길은 한때 통째로 없어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2000년 담양-순창간 국도를 확장하면서 메타세콰이아나무를 베어버리려 했기 때문이다. 주민들과 시민단체의 반대운동으로 이 길은 살아남을 수 있었고, 결국 기존 도로에서 약간 떨어진 담양천변에 4차선 도로를 신설하는 쪽으로 계획이 수정됐다.

이렇게 어렵사리 살아남을 수 있었던 메타세콰이아길은 한동안 메타세콰이아 가로수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만이 찾는 알려지지 않은 명소였다. 금방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고, 이렇게 되자 담양군에서는 차량 통행을 못하게 하고 아스팔트를 걷어내어 걷는 길로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은 2002년에는 산림청과 (사)생명의숲으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선정됐고, 2006년에는 건설교통부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메타세콰이아나무는 길 양쪽으로 가로수를 이루며 물이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늘을 가린 가로수길은 조용히 걷기에 더없이 좋다. 초록에 지쳐 갈색으로 단풍이 든 메타세콰이아 가로수에 햇빛이 비취니 우아한 샹들리에 불빛을 보는 것 같다. 우아한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을 천천히 걷는 사람들도 어느새 우아해졌다.

담양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은 2002년 산림청과 (사)생명의숲으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선정됐고, 2006년에는 건설교통부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메타세콰이아길을 뒤로 하고 담양천 위에 놓인 금월교를 건넌다. 담양천은 양산강 최상류에 해당된다. 영산강은 담양군 용면 가마골 용소에서 발원해 담양과 광주·나주·함평·무안·영암·목포 땅을 적시면서 서해로 흘러든다. 136㎞에 이르는 영산강은 전남 서부지역의 젖줄로 호남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강이다.

금월교를 건너 담양천 제방을 따라 걷는다. 24번 국도를 장식하고 있는 메타세콰이아 가로수 뒤로 추월산이 큰바위얼굴처럼 듬직하게 서 있다. 금성산성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온다. 맨살을 드러낸 들판과 갈색 메타세콰이아 가로수와 금성산성의 산줄기를 바라보며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담양댐이 점점 가까워지고, 담양댐 뒤에서 다가오는 추월산의 암벽이 장중하다. 산줄기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금성산성의 성곽도 확연하게 모습을 드러내준다. 갈대 사각거리는 늦가을의 하천길을 걷다보니 나도 모르게 쓸쓸해진다. 쓸쓸함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신경림의 시 ‘갈대’가 떠오른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몰랐다.



어느덧 우리는 하천을 건너 담양댐 아래 담양리조트에 도착해 있다.


여행 쪽지

▶담양 수목길은 죽녹원에서 관방제림, 메타세콰이아길, 담양경비행장을 거쳐 담양리조트까지 8.1㎞ 거리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죽녹원 대숲길을 포함해서 걷는다면 30분 정도를 추가해야 한다. 죽녹원 대숲길과 수목길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려면 죽녹원 후문격인 뒤편 죽향문화체험마을에서 시작해 죽녹원 전망대로 올랐다가 대밭길을 걷고 난 후 정문으로 나가는 것이 좋다.
▶담양의 음식으로는 떡갈비, 대통밥, 국수가 유명하다. 담양리조트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인 금성면소재지에 있는 유진정(061-381-8500)의 청둥오리 전골(한 마리 4만원, 반 마리 2만3천원)도 널리 알려진 담양의 인기 있는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