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역’에서 경전선 열차를 기다린다

박준수
경영사업국장 겸 이사

민초들의 애환이 짙게 서린 철길 영·호남 잇는 열차 가교역할 계속해야

2014년 12월 08일(월) 20:24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 도입부)

80년대 초 암울한 시대적 분위기를 남도의 서정으로 내면화시킨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의 배경이 된 곳은 경전선이 지나는 남평역이다.

경전선은 광주 송정역에서 순천-마산-삼랑진에 이르는 총연장 315.2㎞ 철길로 1905년 일제가 수탈의 목적으로 착공해 1936년 광주선(송정리-여수)이 개통함으로써 동서를 잇는 실크로드가 완성되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경전선은 ‘비내리는 호남선’ 만큼이나 근현대사의 굴곡진 궤적을 간직한 채 민초들의 애환이 짙게 서린 철길이다.

육로가 원활하지 못하던 60-70년대에 경전선은 농어촌 주민들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교통로였다. 필자가 소년시절 외갓집을 가려면 광주역에서 경전선 열차를 타고 이양 도림역에서 내려서 굽이진 산길을 시오리나 걸어가야 했다.

광주 도심을 지나는 기찻길은 궁핍한 서민들의 속살을 비춰보는 내시경과 같은 것이었다. 차창밖으로 펼쳐진 주변 풍경은 수선스럽고 남루했다. 굴딱지처럼 엉겨붙은 키작은 집들에는 아이들이 수두룩했고 창너머로 가난한 세간이 삐져나와 연민을 자아냈다.

남광주시장이 번성한 것도 남광주역 덕분이다. 화순, 보성, 고흥 주민들이 새벽기차에 곡식, 과일, 채소와 해산물을 가득 싣고 올라와 역주변에 난전을 펼친 것이 오늘날 남광주시장의 원형이다.

도심철도 이설로 광주역에서 효천역에 이르는 구간이 폐선돼 푸른길로 탈바꿈했지만 광주천에 남아있는 남광주 철교는 경전선의 추억을 기적소리처럼 환기시킨다.

남광주역은 사실상의 중앙역으로서 승객 대부분이 이곳을 이용했으며 특히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막차시간이 다가오면 역 플랫폼은 교복입은 학생들로 가득했다.

곡창지대인 남해안 일대를 횡단하는 경전선은 일제의 수탈의 통로가 되기도 했다. 특히 고흥 벌교역은 일제시대 곡물방출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 낙안군 고읍면에 속한 변두리에 불과했던 벌교는 일제강점기 보성과 고흥일대 물산을 배로 실어내가는 창구가 되면서 급성장했다.

한 기록에 따르면 당시 벌교에는 일본인들이 무려 135가구 515명이나 살았으며, 보성읍보다 4년 빠른 1937년 읍으로 승격됐다. 광주, 목포, 여수와 더불어 ‘호남의 4대 상업도시’로 발달했던 것도 경전선으로 인해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한 결과이다.

이런 맥락에서 벌교는 다른 곳에 비해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지역이 되었고 근현대사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깊은 상처를 안게 되었다.

산업화의 물결이 일렁이던 시대에는 농촌 처녀 총각을 화려한 도시로 유혹하는 바람을 몰고 왔다.

초등학교 졸업 후 보따리 하나를 들고 밤기차를 탔던 영자가 몇 년 후 세련된 모습으로 금의환향하는 것을 본 10대 아이들은 하나 둘 경전선에 몸을 싣고 농촌을 떠났다.

오늘날 경전선은 동서간 경제적 격차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2015년이면 부산에서 순천까지 경전선 동부권 노선이 완전 복선화되는데 반해 목포-순천간 서부권은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2007년 이후 공사가 중단된 상태이다.

또 최근 코레일이 이용승객의 감소로 경전선 무궁화 열차의 목포-순천 운행을 오는 24일부터 중단할 방침이었으나 해당 지역의 반발로 국토부가 보류를 결정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전남도와 목포시는 서부권과 동부권을 잇는 주요노선을 지역민과의 협의나 여론수렴 없이 경제논리만 가지고 폐지하겠다는 코레일측의 태도에 발끈, 폐지 철회운동을 펼쳤다.

이미 경제성을 이유로 목포-부산간 항공노선이 끊긴 데 이어 철길마저 없어지면 교통편은 버스만 남게 된다. 경전선은 호남과 영남을 연결하는 간선교통로로 지역간 교류를 원활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남부지방의 산업·경제·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경전선 무궁화호 열차운행은 경제논리보다 영·호남 화합과 국가의 균형발전, 국민의 이동권 보장 등 거시적 관점에서 존속되어야 한다.

지난 80여년간 한반도 남해안을 횡단하며 동서간 교류의 매개역할을 충실히 해온 경전선 무궁화호가 돈벌이가 안된다는 이유만으로 추억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여전히 많은 전라도인들은 ‘사평역’에서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올 무궁화호를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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