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 에나 진주길 kjdaily.com

2014년 12월 18일(목) 19:09

진주 남강변 벼랑 위에 우뚝 서 있는 촉석루는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고려 고종 28년(1241년)에 창건됐다. 임진왜란 당시 논개가 적장을 촉석루 아래 의암으로 유인해 왜장을 껴안고 강물에 몸을 던져 산화한 곳으로 유명하다.

남해고속도로를 벗어나 진주시내로 접어들자 남강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진주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택시기사 한 분이 “중산리 가지 않느냐”고 물어온다. 배낭을 짊어지고 있으니 틀림없이 지리산을 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지리산 등산이 아니라 ‘에나 진주길’을 걷기 위해 진주에 왔다. ‘에나’는 경상도 진주사투리로 ‘참’ ‘진짜’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에나 진주길은 진주의 진면목을 탐방할 수 있는 길이다. 진주성 등 진주시가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맛볼 수 있고, 진주의 자연을 이루고 있는 산과 강을 직접 둘러볼 수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다.

진주강씨 시조인 고구려병마대원수 강이식 장군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봉산사에부터 걷기 시작한다.

입구에는 비봉산·선학산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이 길은 진주시민들의 산책로이기도 하다. 숲길 나무 사이로 진주시내의 건물들이 다가온다.

비봉산 등산로에 위치한 안내 표지판.

비봉산(138m)은 높이가 높지 않아 어렵지 않게 올랐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진주 시내가 정답다. 북동쪽으로는 지리산이 웅장하고, 지리산의 품안에 산청의 여러 산들이 안겨있다.

에나 진주길은 임도를 따라 이어진다. 비봉산에서 선학산(134m)으로 뻗어가는 산줄기는 낮지만 진주를 감싸고 있고, 앞으로는 남강이 유유하게 흘러간다. 이처럼 진주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을 하고 있다.

말티고개를 지나자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봉황교에서 선학산으로 가는 길은 비봉산 쪽의 임도와는 달리 그윽한 오솔길이다. 걷는 데는 넓은 길보다는 좁은 길이 좋다는 점을 사람들의 발걸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선학산 전망대에 오르니 아름다운 진주의 풍경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진주의 매력은 역시 남강에 있다. 남강이 태극모양으로 흘러가고, 주거지는 강변 퇴적지에 형성돼 있다. 그리고 강과 주거지를 낮은 산들이 감싸고 있다. 진주는 35만명 수준의 중소도시라 혼잡하지도 않아 자연과 어울려 살기 좋은 도시로서 손색이 없다. 게다가 남강변에 진주성이 자리를 잡아 품격있는 도시가 됐다.

진주 남강변 언덕을 따라 단아하게 자리한 진주성벽.

진주를 멀리서 감싸주고 있는 산들도 사방에서 듬직하게 다가온다. 지리산과 산청의 둔철산, 하동 금오산, 사천 와룡산 등이 그것이다. 아련하게 다가오는 지리산 천왕봉에는 하얗게 눈이 쌓여 있다.

이인로가 ‘파한집’에서 언급한 “진양의 시내와 산의 훌륭한 경치가 영남에서 제일이다”라고 한 글귀가 실감이 난다. 여기에서 진양의 시내는 남강을 일컫는다. 선학산 전망대에 서서 아름다운 진주의 모습을 바라보며 넋을 잃는다.

에나 진주길은 남강초등학교로 내려가 진주시청 앞을 거쳐 남강 위에 가로놓인 진양교를 건넌다. 지금까지 품격 있는 진주의 모습을 위에서 내려봤다면 이제부터는 진주를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어준 남강을 따라 걷게 된다. 남강에서 바라보니 푸른 강물위로 진주의 건물들이 떠 있는 것 같다.

진주시에서는 진양교에서 천수교까지 2.9㎞에 이르는 남강변을 역사·문화·예술도시인 진주의 전통과 독특한 문화적 개성을 살려 남가람문화거리로 지정했다. 1992년부터 조성된 남가람문화거리에는 야외공연장, 경남문화예술회관과 기념비·조형물·휴식공간·천년광장 등 을 조성해 놓아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진주관찰부의 관문 역할을 했던 영남포정사 문루.

진주교를 지나자 강 건너편으로 진주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진주에 올 때면 항상 이곳에서 촉석루와 진주성을 바라보곤 했었다.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남강을 굽어보며 벼랑 위에서 서 있는 촉석루가 당당하다. 촉석루 양쪽으로는 강변 언덕을 따라 단아한 모습의 진주성이 곡선을 그린다.

임진왜란 때는 한산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을 이곳 진주성에서 이룩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10월, 왜군 2만여명이 침공해 올 때 진주목사 김시민이 지휘한 3천800여명의 군사와 주민들이 힘을 합쳐 왜군을 크게 무찔렀던 전투가 진주대첩이다.

그러나 8개월 뒤인 1593년 6월, 크게 패했던 왜군 10여명이 재차 침입하여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였다. 이때 기생이었던 논개가 적장을 촉석루 아래 의암으로 유인해 왜장을 껴안고 강물에 몸을 던졌다.

진주성은 진주 사람들에게는 정신적인 지주나 다름없다. 그리고 진주성은 진주시내 중심부에 자리를 잡아 드넓은 녹지와 공원을 이루면서 진주의 허파역할도 한다.

나는 단아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진주성을 건너에서 바라보며 걷는 행복을 누린다.

진주성 아래 남강에서는 매년 10월 남강유등축제가 열린다. 남강유등축제는 유등을 남강에서 띄우는 놀이로 임진왜란의 진주성 전투에서 비롯됐다. 유등은 진주대첩 당시 김시민 장군의 군사신호로,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의 도하작전을 저지하는 전술로,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두루 쓰였다.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패해 진주성이 적의 손에 들어가고 7만여명이 희생된 뒤로 의로운 넋을 기리는 행사로 등불을 밝혀 온 것이 지금의 진주남강유등축제로 발전됐다.

천수교를 건너면 진주성 서문 입구다. 서문 앞을 지나 도로를 건너니 인사동골동품거리가 나온다. 골동품거리를 지나면 진주성 정문격인 공북문에 닿는다. 공북문(拱北門)은 진주성의 북쪽 문으로 북쪽에 계시는 임금님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공경의 뜻을 표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진주성 동문인 촉석문 앞을 지나 촉석루로 향한다. 남강 건너편에서 기암절벽 위에 의젓하게 서 있던 촉석루에 들어서니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을 한 촉석루가 멀리서 볼 때보다도 더욱 위풍당당하다.

촉석루는 고려 고종 28년(1214)에 김지대가 창건한 후 여러 차례 고쳐졌다. 촉석루는 전시에는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던 장소였다. 과거를 치르던 고사장으로도 쓰였다. 촉석루는 남원 광한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 중의 하나다.

촉석루에서 남강으로 내려가보니 절벽 아래에 임진왜란 때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해 순국했다는 의암(義巖)이 있다. 의암 아래로는 남강이 역사의 애환을 싣고 유유히 흘러간다.

진주성을 한 바퀴 돌고 진주관찰부의 관문 역할을 했던 영남포정사 문루를 통과하여 내려오니 처음 출발했던 공북문이다. 진주성을 나서는데 하늘은 푸르고 흰 구름이 자유롭다. 장구한 세월이 가져다준 무게감이 매서운 추위를 녹여준다.


여행쪽지
▶에나 진주길은 진주의 진면목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길로 15㎞ 거리에 5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남해고속도로 진주IC→진주교→진주성 공북문
▶진주에는 칠보화반(七寶花盤)이라고 불리는 비빕밥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