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靑羊)의 해, 리더십 부활을 꿈꾸며

박상원
부국장·정치부장

2014년 12월 29일(월) 20:23

2014년 갑오년 청마의 해가 저문다. 올 한해는 그 어느 해보다 수많은 생명이 사라진 끔찍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부터 세모녀 자살까지…. 어이없는 죽음의 행렬이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는 무너진 대한민국 구조체계의 민낯을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안전 불감증의 망령에서 대한민국은 헤어나지 못했고 ‘죽음’의 두려움이 오래도록 온 국민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죽음의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남겨진 사람들은 고통의 해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잇단 비리사건에 특권층의 비행도 연말까지 계속됐다. 원전비리에 방산비리. 청와대 문건 유출, 포스코 라면, 재벌의 야구방망이 폭행, 서울대 교수 성추행,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등 대한민국의 윤리의식도 여지없이 침몰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와 ‘땅콩 회항’은 시민사회가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들어 놓은 원칙(규칙과 법)을 짓밟았다. 원칙을 지켜내야 할 리더십은 처절하게 내팽개쳐졌다. 선장도 기장도 부사장도 정부도 리더십의 부재를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는 무리한 출항과 평형수·컨테이너 고박 문제 등이 겹친 예견된 인재였다. 침몰 상황은 언론을 통해 생중계됐고 정부의 구조체계는 단 한명도 구하지 못하는 총체적 부실을 입증하는데 그쳤다. 사고 발생 후 벌어진 선장의 도망에서부터 속수무책인 구조대의 활동,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 미숙 등 총체적 리더십의 부재는 희생자 양산을 만들어내는 재앙이었다. 국가가 더 이상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확인시켜 주었다. 진상규명 특별법 도입을 놓고 벌인 정치권의 공방, 언론의 어처구니없는 참사 오보는 유족에게 두 번 죽이는 슬픔을 안겨줬다.

연말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땅콩 회항’도 원인을 들여다보면 특권층의 비행에 앞서 원칙을 무너뜨린 리더십의 문제다.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장이 법(원칙)을 무시하고 땅콩 ‘마카다미아’ 문제로 흥분한 부사장의 지시에 비행기를 돌린 것은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범죄행위다. 승객의 불안과 안전은 안중에도 없고 부사장의 지시가 법보다 우선하는 행위는 리더의 역할이 아니다. 물론 대한항공의 슈퍼 갑질로 볼 때 기장이 지시를 불이행했다면 그는 해고당했을지도 모른다. 원칙을 지켜 해고당했다면 그게 오히려 명예가 아닐까. 만약 사고가 났다면 끔찍한 재난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두려움이 엄습한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 세계 역사에 등장하는 대형 해난사고 기록에서 선장이 먼저 도망간 경우는 매우 드물다. 2012년 32명 희생자를 낸 이탈리아 코스타콩코르디아호 같은 걸 빼고 나면 선장이 먼저 배를 버린 경우는 없었다. 선장이 먼저 도망치고, 구조대는 우왕좌왕 뭘 하는지 가라앉는 배에 접근도 못하고, 정부의 미숙한 지휘체계 등 총체적 부실을 보여준 경우는 세월호가 유일하다고 한다. 세계 100대 해난사고의 기록에는 선장이 죽었든 살았든 제1차적인 구조작업에 선장이 자리하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승객을 대피시키고 배와 함께 사라지는 선장을 볼 수 있다. 그게 바다 사나이들의 명예요, 전통처럼 간직 해 온 자존심이고 리더십이다.

대통령은 참사 후 눈물까지 흘리며 ‘국가대개조’를 약속했지만 규제 완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약속은 빛이 바랬다. 세월호 참사와 규제완화의 바탕에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를 계기로 도입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도사리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지난 20년 동안 국가의 역할과 공동체 개념들을 모두 해체해버렸다. 이윤을 얻기 위해 국가나 자본이 공격적으로 나오면서 인간의 최소한의 안전장치나 공동체적 삶이 위협받는 상황이 돼버렸다. 세월호 참사는 공동체적 삶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대한민국 리더십의 붕괴를 보여준 사건이다. 최소한 사람이 대접받는 삶이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세월호와 땅콩회항의 문제는 리더가 원칙과 기본을 무시해 발생한 사례다. 세월호 참사와 맞물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한 섬김의 리더십, 영화 ‘명량’에서 보여준 ‘충(忠)은 백성에 대한 의리’라고 말한 이순신의 리더십은 충격에 빠진 국민에게 ‘리더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리더는 위기에서도 원칙과 기본을 지키고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이며 조직원을 보호하고 행동하게 한다. 2014년 대한민국은 리더십의 부재 속에서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았다. 다가오는 2015년, 복을 기원한다는 청양(靑羊)의 해는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 솔선수범의 리더십이 살아나 희망찬 한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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