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화합의 정신이 옛 정취에 깃들다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 전주 ‘아름다운 순례길’ kjdaily.com

2015년 01월 01일(목) 18:49

보물 제 308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성문인 풍남문은 전주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옛 전주읍성의 남쪽대문이다. 처음 지어졌던 옛 남문은 임진왜란때 파괴되었는데 그것을 영조 대에 다시 짓게 되면서 풍남문이라 이름 지어지게 됐다.

지금이야 호남을 대표하는 도시는 광주이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제주도를 포함한 곡창 호남을 다스리는 전라도의 수부는 전주였다. 오늘은 전주와 주변의 농촌을 한 바퀴 도는 아름다운순례길을 걸을 참이다. 아름다운순례길이 시작되는 풍남문 앞에 선다. 차량이 통행하는 로터리 한 가운데에 풍남문이 옛 정취를 풍기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풍남문은 옛 전주성의 남문이다. 전주성은 고려시대 축성되었으나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것을 영조 44년(1768) 관찰사 홍낙인이 복구했다.

조선시대부터 전주를 지켜온 풍남문은 오늘날 전주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한쪽에는 풍남문(豊南門), 다른 쪽에는 호남제일성(湖南第一城)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다. 풍남문은 가운데에 홍예문을 낸 높직한 화강암 기단부 위에 2층의 누각을 올렸고, 양쪽으로 종각과 포루가풍남문 기단과 같은 높이로 세워져 있어 무게감과 안정감을 더해준다.

전주 한옥마을 여행길에서 제일 먼저 들리는 곳 전동성당.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로 1908년 착공돼 1931년 완공까지 28년이 걸렸다고 한다.

풍남문은 동학농민전쟁의 현장이기도 하다. 1894년 1월 고부관아 점령을 시작으로 봉기한 농민군은 4월 7일 황토현에서 관군을 격파하고 정읍, 태인, 금구를 거쳐 4월 27일 전주성까지 손쉽게 함락했다. 동학농민전쟁 가운데 최대의 승리를 이룬 것이다.

풍남문 옆 광장 사거리에서 대각선 방향에 유서 깊은 전동성당이 있다. 1908년부터 7년에 거쳐 지어진 전동성당은 호남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건축물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성당은 건물의 외형이 아름답고 고풍스럽다. 전동성당은 명동성당, 대구 계산성당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성당의 하나다. 성당 외부도 외부지만 내부는 더 아름답다. 전면 중앙을 중심으로 삼등분해 좁게 보이게 함으로써 앞부분 제단으로 시선이 집중되도록 했다. 천정을 둥글게 아치형으로 마감하여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더해준다.

전동성당 건너편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이 있고, 그 사이 도로를 따라 양쪽으로 한옥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다. 경기전 정문을 통과하자 홍살문 뒤로 외삼문, 내삼문, 정전이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정문에서 정전까지 일직선으로 인도가 깔려있고, 양쪽으로 건물과 심지어 담까지도 대칭을 이룬다. 이런 구조가 우리에게 왕실의 권위를 느끼게 해주고, 보는 이로 하여금 엄숙한 자세를 갖게 한다.

내삼문을 통해 들어가니 어진을 봉안한 정전이 자리하고 있다. 회랑 복도를 통하여 정전에 다가가니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봉안돼 있다. 경기전에서는 전동성당의 모습도 보이는데, 경기전의 한옥들과 돌담 너머로 다가오는 전동성당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경기전을 나와 한옥마을길을 걷는다. 전주 한옥마을이 들어선 것은 1930년을 전후하여 전주시 풍남동, 교동 일대에 한옥촌이 들어서면서부터다. 한옥마을을 관통하는 태조로와 은행로에는 한옥건물에 공예품판매점이나 식당들이 들어서 있고, 작은 골목에는 전라북도 곳곳에서 옮겨온 고택들이 들어서 있다.

완주 송광사 대웅전 앞. 마당 중앙에 자리한 아(亞)자형 종각. 이 종각은 십자각으로 보물 제 1244호로 지정되 있다.

한옥마을을 전체적으로 내려다보기 위해 오목대로 오른다. 오목대에서 본 한옥마을은 우리의 전통 한옥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비상할 듯 살짝 추켜올려진 처마의 추임새며, 나란히 골을 이루고 있는 지붕의 기와가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우리 조상들의 생활양식이 한옥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전주천변을 걷다가 전주향교로 들어선다. 외삼문 형태의 일월문을 통과하자 넓은 마당 뒤로 문묘인 대성전이 앉아있다. 대성전 뒤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처럼 전주향교는 문묘가 앞쪽에 있고 교육공간이 뒤쪽에 배치되는 전형적인 전묘후학(前廟後學)의 형태를 띠고 있다.

전주향교를 나와 다시 전주천변을 걷는다. 전주천은 한벽당 앞에서 방향이 90도로 꺾인다. 한벽당(寒碧堂)은 승암산 자락의 바위를 깎아 만든 누각으로 굽이쳐 흐르는 전주천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옥처럼 맑고 시리도록 찬 물이 바위에 부딪쳐 흐르는 정경이 벽옥한루(碧玉寒漏)와 같다고 하여 한벽루라 했다고 한다.

전주천변을 걷다가 치명자산 천주교성지로 향한다. 산비탈을 따라 올라 가다보니 몇 십 미터 간격으로 십자가를 설치해 놓아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걷도록 해놓았다. 14곳의 십자가가 우리를 십자가의 길로 인도한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힘들게 올라가니 9부 능선쯤에 조그마한 성당이 있다. 산위에서 성당을 만나니 신선하고 경건하다. 산위의 성당 위쪽에 정조 8년(1784)년 호남에서 처음 복음을 전하다가 국사범으로 처형된 유항검을 포함해 그의 가족 7명이 하나의 묘지에 모셔져 있다.

가로수가 인도하는 자전거길을 따라 순례자가 되어 걷고 또 걷는다. 아름다운순례길을 상징하는 달팽이 이정표도 곳곳에서 순례자들의 길안내를 해준다. 들길을 지나고, 마을 앞을 지나기도 하지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말이 없다. 오직 가슴 속의 나와 대화를 할 뿐이다.

정여립선생의 출생지인 월암마을을 지난다. 조선중기 문신이자 개혁가인 정여립선생은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동계라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조정에서 역모를 꾀한다는 죄목으로 체포를 하려고 하자 진안군 죽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여립선생이 월암마을과 죽도를 오가면서 걸었던 길을 오늘은 우리가 걷는다. 월암마을을 지나 곧바로 산길로 접어든다. 정여립선생은 이 길을 걸으며 백성이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나목 사이로 군청색을 띤 상관저수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상관저수지 뒤로는 만덕산과 주변의 산들이 첩첩하다.

아름다운순례길 1코스는 하루에 걷기에는 무리가 있는 거리라 우리는 상관저수지에서 걷기를 멈추고 송광사까지 차량으로 이동한다. 완주 송광사는 순천 송광사의 유명세에 가려있지만 전주 근교에선 유서 깊고 큰 사찰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절이 산지사찰인데 비하여 완주 송광사는 넓은 평지에 자리를 잡은 평지사찰이다.

4m가 넘는 거대한 사천왕상의 허락을 받고 천왕문을 통과하니 종남산 봉우리 아래에 자리잡은 대웅전이 우람하다. 나는 대웅전 앞에서 합장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전동성당의 예수상 아래서와 마찬가지로 대웅전 부처님 앞에서 부끄럽게 살아온 내 자신을 참회한다. 대웅전 앞마당에 하늘높이 서 있는 잣나무 한 그루가 속세로 나가는 나그네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여행쪽지

▶아름다운순례길은 전주 풍남문에서 시작하여 완주·김제·익산을 잇는 총 9개 코스 240㎞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은 성당·교회·사찰·교당 같은 종교시설을 이어주면서 종교간 화합과 상생을 추구하는 길이다.
▶아름다운순례길 1코스는 풍남문-전동성당-한옥마을-전주향교-치명자산성지-상관저수지-화심마을-송광사까지 26.1㎞ 거리로 7시간 이상 걸린다.
▶전주에는 비빕밥과 콩나물국밥이 유명하다. 콩나물국밥은 남부시장 안에 있는 우정식당(063-282-3491)이 맛있다. 송광사 근처에는 화심두부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