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훤의 전설이 서린 광주의 들과 산을 걸으며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 ‘빛고을 산들길 1구간 (용산교-도동고개)’ kjdaily.com

2015년 02월 12일(목) 19:32

용산교를 지나 흐르는 영산강. 용산교 위쪽 담양군 대전면·수북면·봉산면과 광주시 북구 용강동 일대 3㎞에 달하는 하천습지에는 멸종위기종인 매, 천연기념물 황초롱이, 보호야생물인 삵 등 다양한 동물들이 자생한다.

지난 1월 29일 개통된 ‘빛고을 산들길’은 광주 시내를 감싸고 있는 산과 들을 따라 걸으며 광주의 문화와 풍광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길이다. ‘산과 들로 이어지는 길을 산들산들 걷는다’는 의미를 담아 길의 이름을 빛고을 산들길이라 했다.
빛고을 산들길 출발지점인 용산교에 도착하니 영산강을 따라 달려온 바람이 우리를 맞이한다. 담양군 용면 가마골 용소에서 발원한 영산강은 무등산에서 출발해 광주 시내를 관통하며 흘러온 광주천과 합류한 후, 장성에서 내려오는 황룡강과 만나 덩치를 키운다. 광주 땅을 벗어난 영산강은 나주시 남평읍에서 지석천(드들강)과 만난다. 그리고는 나주·함평·무안·영암·목포 땅을 적시면서 크고 작은 물줄기와 합류해 136㎞를 흐른 후 서해로 흘러든다.

담양과 광주를 가르면서 흘러온 영산강은 용산교를 지나면서부터는 온전히 광주 땅을 적신다. 용산교 위쪽 담양군 대전면·수북면·봉산면과 광주시 북구 용강동 일대 3㎞에 달하는 지역에는 하천습지가 형성돼 있다. 이곳에서는 멸종 위기종인 매, 천연기념물 황조롱이, 보호야생종인 삵과 같은 동물과 대나무 숲을 비롯한 다양한 목본류가 자생한다.

이러한 영산강을 담양의 불태산과 병풍산이 근엄하게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병풍산과 불태산을 등지고 산들길을 걷기 시작한다. 영산강은 굽이굽이 흐르면서 주변에 넓은 들판을 형성하였다. 그 들판 가운데에 용전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다.

용전마을에 들어서니 광주전통공예문화학교가 있다. 이곳 전통공예문화학교에서는 도자기·소목·천연염색·탱화·민화 같은 전통공예 강좌가 진행된다. 주변의 넓은 들판을 기반으로 생활해온 용전마을 사람들은 농사의 피로를 덜고 여흥을 즐기기 위해 들노래를 불렀다. 1960년대 말까지도 전승돼오던 용전들노래는 흐지부지 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전문가와 지역민들이 합심하여 2년간의 고증 끝에 1999년 재현해냈다.

빛고을산들길은 죽지봉을 바라보며 농로를 따라서간다. 길가에는 철 지난 갈대가 사각거리고, 텅 빈 들판에는 바람이 주인 행세를 한다. 뒤돌아보면 담양의 불태산과 병풍산이 한재를 가운데 두고 형제처럼 솟아 있다.

용전마을에서 넓은 들판을 지나니 생룡마을이다. 생룡마을에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광주 북촌에 한 부자에게 아리따운 딸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자 매일 밤 자줏빛 옷을 입은 총각이 찾아오곤 했다. 처녀의 아버지는 딸에게 총각의 옷에 실을 연결한 바늘을 꽂아 놓도록 했다. 이튿날 아버지가 실을 따라가봤더니 바늘이 커다란 지렁이의 허리에 꽂혀 있었다. 그 후 처녀가 임신을 해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견훤이라는 것이다. 물론 견훤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광주라는 주장과 경북 상주라는 설로 나뉜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경북 상주로 기록돼 있고,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광주 북촌이라는 설화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서 언급한 광주 북촌은 지금의 생룡마을로 추정된다. 생룡은 용이 태어난 곳을 뜻하고, 용은 왕을 의미하니 바로 견훤왕이 태어난 곳이라는 의미로 생룡마을이라고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삼각산 능선에서 바라본 광주 북구 일곡지구 전경.

생룡마을 뒷편에는 금성범씨의 재실인 용호재(龍湖齋)가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용호재는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에서 순국한 범기생, 범기봉 두 분을 배향하던 복룡사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그 자리에 1914년 후손들이 재건했다. 생룡마을은 금성범씨 집성촌이다.

시멘트 농로를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광주의 대표적인 어린이 놀이동산인 광주패밀리랜드가 바라보인다. 산들길은 광주패밀리랜드 주차장과 자동차극장이 있는 도로 가까이 왔다가 산 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그리고 산길로 접어든다. 낮고 평범한 야산에는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하얀 눈을 뚫고 푸른 잎을 내밀고 있는 춘란이 추위를 견디며 봄을 재촉한다.

빛고을산들길 이정표가 길안내를 해준다.

능선으로 올라서자 광주 일곡동의 아파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야산들이 무뚝뚝한 건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 삼각산을 지나 도동고개로 이어지는 이 능선을 걷다보면 오른쪽으로는 광주 시내가 자리를 잡고, 왼쪽은 산봉우리들이 첩첩하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능선길은 아내와 함께 담소를 나누며 걷기에 그지없이 좋다. 문흥지구나 일곡지구에 사는 주민들이 이용하는 산책로라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삼각산으로 오르는 길은 길지는 않지만 제법 가파르다. 그윽한 솔향기의 안내를 받으며 오르다보니 광주 시내가 바라보이는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무등산은 보이지 않지만 서구의 금당산, 광산구의 어등산·용진산 같은 산들이 광주 시내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의자에 앉아 광주 시내를 바라보고 있으니 아등바등 살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이렇게 산과 길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생룡마을 뒷편에 자리잡은 금성범씨의 재실 용호재(龍湖齊).

삼각산 정상(276m)에는 삼각점이 설치돼 있다. 삼각산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다. 옛날 삼각산 자락의 절에서 뿔이 세 개 달린 소를 키우고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은 소를 몰고 시주를 나가 등이 휠 정도로 많은 시주 물품을 싣고서 사찰로 돌아와 문을 두드렸으나 웬일인지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 사이 무게를 이기지 못한 소가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이리하여 산 이름을 삼각산(三角山)이라 했다. 한편으로는 산줄기가 세 곳으로 뻗어있다고 해 삼각산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삼각산에서 도동고개로 가는 길은 고즈넉하다. 이 능선은 도동고개를 넘어 무등산까지 이어진다. 길을 걷다보면 나무 사이로 무등산이 듬직하게 다가온다. 왼쪽으로는 담양군 고서면·창평면의 들판과 산들이 포근하게 펼쳐진다. 따스한 햇살과 하얀 눈이 작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대비되는 모습을 보니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듯하다.

도동고개로 이어지는 능선은 호남고속도로가 지나면서 길이 끊겨 돌아서 가야 한다. 잠시 메타세콰이아 숲길을 지나고, 삼각제라 불리는 작은 저수지를 지나서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통과한다. 장등동 시내버스 종점에서 오늘 구간이 마무리된다. 도로 건너편에 2구간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여행쪽지
▶광주 시내를 감싸고 있는 산과 들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빛고을산들길은 크고 작은 산과 호수·들녘·자연부락을 걸으며 광주의 문화와 풍광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길로, 6개 구간 81.5㎞로 구성되어 있다.
▶빛고을산들길 1구간은 용산교-용전마을-생룡마을-삼각산-도동고개로 이어지는 길로 9.8㎞에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출발지점인 북구 용산교는 광주패밀리랜드에서 담양 대치 가는 길로 가다가 만나는 영산강 위에 놓인 다리이다. 용산교를 지나는 시내버스는 95번, 180번, 184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