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역사속 한 개인의 깊은 고뇌 홍인화 전 광주시의원 광주시립극단 연극 ‘정율성’을 보고나서…

2015년 04월 16일(목) 19:24

문/화/난/장
지난 토요일 광주 1백년사 시리즈 두 번째이야기 ‘연극 정율성’을 관람했다. 정율성은 광주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에 건너갔고 작곡이라는 방식으로 항일운동에 투신했던 인물이다. ‘팔로군 행진곡’, ‘연안송’, ‘팔로군 군가’등 중국에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곡을 만든 그는 2009년 중국정부에 의해 ‘신중국 건국에 공헌한 영웅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시의원시절 중국광저우시를 방문했을 때 광주에서 왔다고 하니 광저우시의 한 구청장이 갑자기 일어나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손을 흔들며 부른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중국 공산혁명에 참여했고 북한에 머무른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랜 시간 조명 받지 못했다. 이러한 인물을 연극을 통해 재조명하는 것은, 광주의 가치를 발굴하고 역사를 되짚는 ‘광주 1백년사 시리즈’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콘텐츠가 아닌가 한다.

연극 ‘정율성’은 단지 광주의 인물을 시민과 함께 되짚는 것을 넘어서 한 인물의 파란만장한 삶의 행적 가운데 나타난 인간적 고뇌와 삶의 고비들을 오롯이 담아내며 호소력 있는 감동을 던져줬다. 실제로 정율성은 항일 신분을 감추기 위해 8개 가량의 이름을 사용했다고 전해지는데, 세 가지 이름의 그가 다른 배우들을 통해 표현된다. 외삼촌인 최홍종 목사 어깨 너머로 찬송가를 듣고 자라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고 형이 선물해 준 만돌린의 선율을 사랑했던 소년 ‘정보은’은 중국에서 만난 크리노아로부터 음악을 배우며 재능을 인정받는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에 유학을 제안받지만, 결국 혁명의 현장에 남기로 선택하고 ‘황청해’라는 가명을 쓰는 인물로 나타난다. 중국과의 연합 항일운동이 조국을 위한 것이라 믿으며 늘 헌신했던 그는, 간첩사건에 부당하게 연루되며 자신의 신념이 진정 옳은 것인지 회의하기 시작한다. 그의 내적 방황은, 황청해와 정보은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 이는 예술, 음악, 순수로 표현될 수 있는 ‘정보은’과 혁명, 투쟁, 현실로 표현될 수 있는 황청해가 모두 정율성 안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평생을 중국을 도와 항일운동에 투신했던 그이지만, 문화대혁명 시기에 예술가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고 사상을 검증받는다. 이러한 과정들이 무대 위에서 드라마틱하게 연출되며 정율성의 삶 속에서 끈질기게 펼쳐진 질문들을 부각시킨다. 한편 중국 국적의 아내로 인해 그가 겪어야 했던 조국과 대의, 사랑과 가정 사이의 갈등들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그려진다.

연극은 역사의 질곡 속에 던져진 한 개인의 여러 선택들을 변호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은 채 오로지 설명과 묘사만을 보여줌으로써, ‘가치판단’의 영역은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시간이 흘러 노인이 된 또 다른 ‘정율성’은 작은 산골에서 소수민족들과 함께 남은 생을 보낸다. 평생을 경계인과 이방인으로 살다 끝내는 고향 광주 땅을 밟지 못하고 세상을 마감한 그의 삶은 마음 한켠을 아리게 하지만, 동시에 깊은 감동을 준다. ‘그래도 살아가야 해’ 라고 읊조린 마지막 대사는 그 삶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이유다.

세련된 라이브 연주는 노래극을 더욱 풍성하게 엮어줬고, 독특한 조명과 드라이 아이스등의 효과가 적재적소에 배치돼 연극의 수준을 높였다. 다만, 배우들의 노래가 좀더 명확하고 또렷하게 표현되지 못했다는 개인적 아쉬움과 함께, 문화대혁명이라는 격동의 시기가 그의 사상에 끼쳤을 다양한 변화를 좀 더 부각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광주에는 감춰진 보화같은 이야기들이 참 많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우뚝 설 광주가 ‘연극 정율성’과 같이 숨겨진 콘텐츠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이를 광주시민, 나아가 아시아 지역민들과도 함께 공유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