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폭발로 만들어진 일출봉은 제주의 상징이 되고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 제주 올레 1코스 (시흥초등학교-광치기해변) kjdaily.com

2015년 04월 16일(목) 19:25

성산갑문다리에서 바라본 성산 일출봉. 제주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420호이며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 받기도 했다.

자동차를 이용해 명승지를 찾아다니는 제주여행의 패턴이 제주올레가 생기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해변을 천천히 걸으면서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고, 기암괴석을 바라보며 신비로워한다. 마을이나 밭가에 쌓아놓은 돌담길을 걸으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제주도 사람들의 문화를 맛본다. 붕긋붕긋 솟은 오름을 오르면서 제주도의 독특한 생태를 온몸으로 체험한다. 도보여행을 즐기는 나로서는 이런 방식의 올레길 걷기가 더없이 좋다.
시흥초등학교 입구를 출발해 말미오름 아래 밭길을 따라서간다. 밭가에 현무암으로 쌓아놓은 돌담은 제주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 제주올레 안내소를 지나 말미오름으로 올라가는 산길이 시작된다. 산길 초입에서는 소망쉼터라 불리는 사각정자가 올레꾼을 맞이한다.

두산봉으로 불리는 말미오름을 오르는 솔숲길을 따라서 간다. 말미오름은 얕은 바다 속에서의 화산분출활동으로 생겨난 응회환의 수중분화구가 퇴적층을 생성해 성장한 후 육상으로 융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완만하게 흘러내린 말미오름 안자락에 귀여운 새끼 오름이 둔덕같이 부풀어 있는 이중식 화산으로 알오름이 있다.

말미오름에서 내려와 알오름으로 돌아가는 사잇길. 황사 때문에 아름다운 풍광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아쉽다.

말미오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압권인데, 오늘은 황사 때문에 그 아름다운 그림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 아쉽다. 나는 오늘 말미오름에 올라 조각보 같은 밭과 울긋불긋 색상이 돋보이는 시흥리 마을의 지붕들이 어울리고, 그 뒤로 일출봉과 우도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펼쳐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목책을 한 오름의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지척에 새알처럼 둥그렇게 솟아 있는 알오름이 다정한 형제처럼 다가오고, 종달리 뒤편에 솟아 있는 지미오름이 가슴에 안겨온다. 알오름이라는 이름도 새 알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름에서 내려와 다시 밭길을 걷기 시작한다. 벌써 푸릇푸릇해진 풀은 검은색 현무암에도 봄기운을 전달해준다. 노란 유채꽃은 돌담 밑에도, 산자락 밭에도 만발해 제주의 봄을 화사하게 장식해준다. 유채꽃뿐만 아니라 길가에서 스스로 피어난 갖가지 야생화들도 눈을 맞추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종달리 골목길을 걷는데 현무암으로 쌓아놓은 돌담이 정겹다. 골목가에는 올레꾼을 기다리는 카페나 작은 식당도 눈에 띈다. 골목길을 지나 마을 앞에 다다르니 연잎 나기를 기다리는 나목 상태의 퐁낭(팽나무의 제주 방언) 한 그루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마냥 서 있다. 돌담 너머로 민낯의 퐁낭을 유채꽃이 노랗게 채색을 해준다. 팽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한숨을 돌리니 멀리 성산일출봉이 다가온다. 지미오름이 북쪽에서 종달리 마을을 품어준다.

제주의 봄을 알려주는 노란 유채꽃 물결. 유채꽃은 돌담 밑에도, 산자락 밭에서도 만발해 제주의 봄을 화사하게 장식해준다.

우리는 종달리 마을 앞쪽 옛 소금터를 지나 해변으로 향한다. 우리의 발자국 소리에 방죽에서 유영하던 철새들이 푸득푸득 날갯짓을 한다. 이윽고 종달바당에 도착한다. 바당은 바다의 제주도 방언이다. 이제부터는 바당올레를 걷게 된다.

종달바당은 썰물 때라 백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백사장 뒤로 멀리 일출봉도 바라보이고, 바다 건너에는 우도도 가깝다. 바당올레는 해안도로 옆 자전거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도로변에는 해녀상이 자리를 잡고 있고, 뒤돌아보면 지미오름이 듬직하게 서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데 노랗게 핀 유채꽃이 눈부시다. 노란 유채꽃은 푸른 바다와 색상의 대비를 이루면서 더욱 화사해졌다. 나와 아내는 화사한 유채꽃밭에서 벌과 나비가 돼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어린아이가 된 우리의 모습을 일출봉이 지켜보며 흐뭇해한다.

성산갑문다리를 건너는데, 안쪽의 넓은 내수면 위에 성산일출봉이 떠 있다. 성산일출봉으로 이어지는 언덕을 오른다. 거칠고 무뚝뚝한 일출봉 기암절벽에 노란 유채꽃들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아름다운 제주도에서도 최고의 절경으로 손꼽히는 일출봉은 천연기념물 제420호이며, 유네스코로부터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받았다. 일출봉은 약 10만 년 전 제주도의 수많은 분화구 중에서도 드물게 바다 속에서 수중폭발한 수성화산체다. 뜨거운 용암이 물과 섞일 때 일어나는 폭발로 용암이 고운 화산재로 부서져 분화구 둘레에 원뿔형으로 쌓여 있다.

일출봉의 외벽을 이루고 있는 수십미터의 기암절벽은 화산이 폭발한 후 장구한 세월을 지나는 동안 거친 파도와 비바람에 씻겨서 오늘의 모양이 됐다. 위엄있게 솟아 있는 일출봉의 모습은 아름답고 신비하다. 일출봉의 동·남·북쪽은 외벽을 깎아내린 듯한 절벽이 바다와 맞닿아 있는데, 서쪽만은 급경사 아래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일출봉 북쪽에서 보는 우도는 소가 일출봉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모습이다. 서쪽 잔디밭을 지나 일출봉으로 오르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잔디밭 아래로는 상가와 민가가 자리를 잡았다. 일출봉으로 오르는 길 주변에는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돌기둥과 기암이 우뚝우뚝 솟아 있다. 일출봉 정상(182m)에는 거대한 접시 모양의 분화구가 있으며, 분화구 둘레에는 고만고만한 99개의 봉우리가 빙 둘러 서 있어 마치 성벽처럼 보인다.

이제 우리는 광치기로 이어지는 해변으로 내려선다. 검은 모래가 길게 펼쳐지는 해변 양쪽으로는 일출봉이 우뚝하고 섭지코지가 나지막하다. 일출봉은 원래 바다 위에 떠 있는 화산섬이었는데, 1만년 전 신양리 쪽 땅과 섬 사이에 모래와 자갈이 쌓이면서 육지와 연결됐다. 일출봉이 신양리와 가장 가늘게 연결이 된 부분이 터진목이다.

터진목은 1948년 4·3항쟁 당시 수백명의 양민이 학살당했던 뼈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성산읍을 비롯해 인근의 구좌읍, 표선면, 심지어는 남원읍에 사는 주민들까지 이곳으로 끌려와 무참히 학살을 당했던 것이다.

광치기해변을 걷는다. 썰물이 되어 물이 빠지니 모래사장 바깥쪽에 넓게 깔린 암반에 파랗게 낀 이끼가 드러난다. 초록색 이끼와 쪽빛 바다는 뒤편의 일출봉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화 한 폭을 만들었다. 이는 유채꽃과 어울린 일출봉 풍경과 함께 제주도를 찾은 사진작가들이 즐겨 찍는 풍경이다.

광치기해변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는 4·3항쟁의 아픔이, 어부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바다에 묻혀있는 슬픔과 한이 너울을 통해서 전해진다. 광치기해변의 이끼 낀 암반에는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고, 우뚝 선 일출봉은 오늘도 말이 없다.



※여행쪽지

▶제주올레 1코스는 시흥초등학교에서 시작하여 말미오름-알오름-종달초등학교-종달리 옛 소금밭-시흥 해녀의집-성산갑문-광치기해변까지 15㎞로 5시간 정도 걸린다.
▶1코스 중간지점에서 식사할 수 있는 곳으로는 시흥해녀의 집(064-782-9230, 전복죽)과 바다의 집(064-784-8882, 전복죽·성게비빔밥·갈치조림)이 있다. 일출봉 아래 성산포에는 식당들이 수없이 많지만 한라흑돼지(064-782-1196)의 흑돼지구이가 먹을 만하다.